contle_07_01.gif
총 게시물 23건, 최근 0 건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03-13 (수) 12:23 조회 : 394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룻기2:14-23

오늘 본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얼마나 교회론적이고 은혜로운지 모르겠습니다. 베들레헴 지역의 유력자인 보아스가 추수밭에서 우연히 만난 이방여인 룻에게 은혜롭고도 다정한 음성으로 말합니다. 14절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이리로 와라. 떡을 먹으라 는 말에서 얼마나 은혜가 느껴지십니까? 힘들고 고된 일과를 마칠 무렵 식사시간에 추수 밭의 주인이 자기 하녀도 아닌, 단지 떨어진 이삭줍기로 허락받은 이방여인에게 식탁을 같이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식사자리에 초대한 것은 어떤의미가 있을까요?
 
      한 상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가족이상으로 대등하게 대우해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그만큼 관심을 가져준다는 의미도 있고요, 주인의 은혜가 있습니다. 식탁은 교제 기업이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정에서는 가족이 같이 식사를 같이 해야 하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식탁교제의 자리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식탁에서의 교제가 없으면, 결국 자기 밥그릇밖에는 없게됩니다. 우리성도들이 주안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예배 후 친교시간에 빠지지 말고 꼭 함께 식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성경에서 식탁을 같이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삼하 9;7 이하에 보면 ‘왕이 된 다윗이 친구 요나단과의 약속을 잊지않고 요나단의 아들을 찾다가 두 다리가 절름발이된채 숨어 지내는 므비보셋을 불러 왕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엄청난 내용이 숨어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지만 다윗의 경쟁자였던 사울왕가의 후손이기에 죽을 수 도 있지만 살려주고(생명기업의 회복), 왕의 식탁에서 왕자처럼 대하도록 해 줌(교제기업의 회복), 원래의 재산을 되찾게 해줌(토지기업의 회복)으로 완전한 회복을 맛보는 겁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이 베푸신 유월절 최후의 만찬 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식탁 나눔은 베드로 장모의 집, 문둥이 시몬의 집, 삭개오, 나사로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볼 수 있지요.
 
식탁에 초대받음으로서 이삭 줍던 룻의 신분이 격상됩니다.
 
    보아스의 하녀들과 같이 앉으니 그들과 같은 자리에 앉게되었고, 더 이상 이삭 줍는자의 신분이 아니라 그 집안의 일군 중 하나처럼 된 것입니다. 연속되는 앞 설교에서 살펴보았듯이 보아스를 주님으로 보고 그 소년 소녀들은 마지막 날 추수하는 천사로 본다면 이방여인 룻은 천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지요. 이 일은 모두가 시어머니를  잘 섬기기 위해 이삭주우러 왔다가 일어난 결론입니다.. 앞에서 계속 설명했던 교회로 상징되는 나오미를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여러분들도 교회를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를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14절 말씀이 아름답습니다.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4절과 15절 아래로 이어지는 보아스와 소년들의 대화와 순종하는 모습을 잘 살펴 보십시다. 천국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먼저 보아스의 행동을 봅니다. 보아스가 베푼 식탁은 이방여인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습니다. 얼마나 풍족하게 베풀었을가요? 기왕에 남을 식탁에 초청하고 베푼다면 우리도 역시 먹고도 남길 정도로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는 보아스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공급하려면 하나님처럼 공급하라! ”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면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하늘나라, 천국시민의 품성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보아스가 가진 품성을 주님의 품성으로 조명하면서 다음 비유를 읽어보십시다. 천국 비유 중에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 20장에는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이 나가서 일군을 불러 포도원에 들여 보냈습니다. 그리고 9시, 12시, 3시에도 일군을 부릅니다. 오후 5시에도 나가보니 서 있는 일군을 불렀습니다. 포도원에서 일 시키기 위해 사람을 구했다면 이른 새벽에 인력시장에서 그 날 필요한 일군을 한번에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인은 일자리가 없어서 하루를 공치고 빈손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나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비유하는 이 포도원 주인은 자기 포도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자기 포도원에 일하러 오는 일군에게 품삯을 주기 위해 포도원 경영하는 주인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성도는 회사를 위해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직원들에게 월급주기 위해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그곳에 천국의 마음이 있습니다. 보아스의 소년들의 심성이나 마음가짐을 또 하늘나라의 시민들로 조명하면서 읽어 보십시다.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나중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아가자 자기들은 더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막상 그렇지 않자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합니다. 늦게 온 자와 같은 수당 받았다. 배 아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당연하게 생각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온 사람이 자기 친구이거나 자기 아들이었다면 그때도 그렇게 불평을 했을까 생각해 보십시다. 오히려 인정 많은 주인으로 칭송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내 아들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한 시간 일 하고도 똑같이 받아도 배 아프지 않고 오히려 주인에게 감사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교회에서 ‘복’을 이야기할 때 “땀 흘려서 댓가를 받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담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이지요. 오히려 인간이 노력하고 땀 흘린 것 이상으로 덤으로 받는 것” 이 복(福)입니다. 자기 손으로 일한 것에 대한 보상 그 배후에 덤 이라는 것이 있어야 복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명기 6장 10절-11절을 꼭 기억하면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15절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는 룻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 꾸짖지 마라. 조금씩 뽑아 두라---’ 
 
    식사 후에 룻이 모르게 보아스가 추수하는 그 소년들에게 명령합니다. 구 소년들은 온전히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드는 천사들처럼 순종합니다.
 
    앞에서 나누던 포도원 일군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보아스의 하인인 그 소년들은 얼마던지 모르는 사람이 대우를 받고 자기들 이상으로 혜택을 받을 때에 인간인지라 속상하고 기분 나쁠 수 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이들은 ‘보아스의 충직한 소년들’이기에 보아스의 이 명령에 대해서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 되는 것에 전혀 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천국시민의 품성을 지닌 소년들입니다.
천사에 비유를 해도 조금도 모자라지도 않고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14-15절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가 이 보아스처럼 풍성하게 먹고 남도록 베푸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아스의 소년들처럼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되 남이 잘 되는 일에 전혀 개의치않고 오히려 복을 빌어주는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주인입니다. 그런데 복된 주인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좋은 청지기들을 늘 곁에 두고 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보아스처럼 곁에서 완전 명령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늘 이런 충직한 소년들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5-16절에서 베푸는 보아스의 마음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실까를 생각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인이 하루 먹을 양식을 위해 이삭을 주우러 나간 여인에게 약 36리터 정도되는 한 에바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혼자 들고 가기에는 너무도 벅찬 무게입니다. 40킬로라고 생각하면 하루 먹을 양식을 구한 사람에게 2달 정도는 먹을 양식을 구하게 하셨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먹고 살다가 죽는 인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하는데, 룻의 이삭줍기와 나중에 베풀어진 많은 양의 탈곡한 보리의 양을 볼 때,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려주시고, 부어주시는 그런 축복의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16절은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17-19절을 읽습니다. 하룻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시시콜콜 시모에게 전해드리는 룻의 모습을 보십니까?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부모님들이 계시나요? 대답을 잘 하던가요? 아마도 대부분 건성으로 대충 말하던지 아주 귀찮아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라도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지요?

    특히나 부모 자식간에 일어난 일은 더 더욱 사생활이 아니잖습니까? 하루 종일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봉사활동을 다녀왔으면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 부모인데 아이들은 답을 잘 않을려고 합니다. 잘못 된 일입니다. 자녀들이 말을 않아도 부모님들은 대충 알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시종일관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기를 원하고 그렇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돈독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꼭 문제가 일어난 뒤에 너 왜 그렇게 했니 라고 물어야 한다면, 왜 내게 소설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가고 통곡하고 묻는다면  비극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야 교회를 찾고 목사님을 찾는다면 대화가 끊어진 관계 아닐까요? 무관심해서 그런 것일까요? 금방 보고도 또 보고 싶어지는 것이 성도들과 목사의 관계인 줄은 아십니까? 늘 곁에 두고 같이 살고 싶은 것이 이러한 관계인 것을 생각하십니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말씀을 성도들과 밤을 새가며 나누고 싶은 것이 목회자의 마음인 줄은 아십니까?
 
    하루 동안, 한 주일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 교회에, 목사님에게 알려드리는 분이 계시나요? 왜 이야기를 않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교회에 알리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께 일어난 일들을 잘 알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정도 받고 시정도 하고 코칭도 받아서 영적으로 더 깊이 발전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이사가고 전근간다고 이야기 한다면 서로가 깜짝 놀라겠지요? 그 동안의 관계란 무엇이었나 할 정도가 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에서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알아서 하라고만 한다면  그 교회의 하늘과 땅의 통일성을 놓치는 것이 되며, 그 목사님은 스스로 영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룻이 하루 일과 후에 얻은 많은 보리수확을 들고서 시모님께 드리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특합니까? 종일 집에서 기다리면서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햇볕아래서 이런저런 수모당하며 일할 며느리를 생각하는 늙은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기다리던 며느리가 돌아왔는데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의 많은 곡식을 가지고 오고,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 해줄 때 그 시모 나오미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며느리에게서 풍기는 정이, 얼마나 자신의 딸보다 더 한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기쁘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룻이 시모에게 드리는 그 드림 속에서 교회는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게 되어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 교회에 드린다. 목사님께 드린다 다 같은 의미입니다. 남은 것을 가져왔다는 것은 자기가 먹다가 남은 찌꺼기를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먹기 전에 미리 구분/구별해서 시모에게 드릴 것을 남기는 그 내어드림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식탁에서 같이 먹게 된 것들을 구별해 놓고 자신은 덜먹고 남겨왔다는 것은 성경전체의 선한 사람의 윤리성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윤리는 내 것 덜먹고 남 섬김이지 자기가 먹다가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내 몫을 덜 먹고 안 먹고 모은 것들을 교회에 드리고 남에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풍성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9절-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 어디서 일하였느냐.’ 
 
    시모 나오미가 얼마나 궁금해 합니까? 룻의 대답을 다 들은 나오미는 룻을 돌아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흥분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나오미가 보통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성도들에게는 축복권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룻에게 잘해준 그 사람에게 하늘의 복이 있을지어다.  교회의 축복권이고, 강단의 축복권입니다. 교회에 선하게 행한 사람들에게 대한 보상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저주하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나십니까?우리 성도들을, 교회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은 하늘의 원리입니다. 이유는 하늘과 땅의 통일성이 이 땅에서 위에서는 교회에 있기에 그렇습니다..(엡 1;10)
 
“너를 살펴본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 ”
 
    교회의 축복권. 교회가 축복하면 복을 받게 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꼭 축도할 때면 나가는 분이 계십니다.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주한미군들은 자기들 예배시간이 지났음에도 다른 한국교회에 축도를 받기 위해 늦게라도 교회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룻이 시모에게 알게 하였습니다. 20절에 나오미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아마도 연극을 한다면 클라이막스, 절정입니다.  시모 나오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기 가족의 기업을 되물려 줄 사람을 꼽아보니  보아스도 한 사람인데 순서가 좀 있기도 하여 망설이던 가운데 오늘 자기 며느리를 돌봐준 그 사람이 바로 보아스, 그가 바로 그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이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교회가 하나님을 축복하는 모습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을 극존칭으로 찬양 하는 모습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베풀기를 거치지 아니하도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설명하는 대목이지요?
사도신경을 기억하시나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1-2장의 본문에서 회복의 역사가 계속되어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모든 내용을 다 정리하여 나누어 보면 회복의 수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1.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 있는 곳으로 가고
2. 어머니-교회에 들어붙어서 같이가고 
3. 어머니-교회가 죽는 곳이라면 우리도 같이죽고……
               
    나오미가 ‘생존한 자와 사망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의미하는 내용을 설명하고, 보아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근족(近族)이니’—이제 그들의 생명과 잃어버렸던 토지와 교제할 수 있는 기업 모두를 회복되게하는 회복자를 만남을 비밀로 이야기 합니다. 이전 까지는 보아스를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모르던 나오미가 이제는 그를 구체적으로 축복했으니 얼마나 복됩니까? 그래서 교회는 죽어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아멘
 
    21절: 그가  내게 또 이런 말을 하더이다.’ ‘추수가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하여라.’두 여인이 하루를 연명할 이삭을 주우러 갔다가 한 에바 즉 약 36-40킬로의 보리를 양식으로 가지고 왔는데, 몇 달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보리추수도 마칠 때까지, 밀 추수도 마칠 때 까지 풀 타임으로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넓은 밭을 가진 유력자 보아스의 추수기간이 일주일 이고  밀 추수 기간이 일주일이라면 룻은 보아스를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에바를 거두겠습니까?  간단히 계산해서 두 여인이 하루 먹을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40킬로 정도의 보리를 얻었으니 두 여인이 두 달을 먹을 수 있다면, 하루 먹을 것 구하러 갔다가 두 달치 먹을 것 받아온 것으로 보면 지나칩니까? 그렇게 계산하면 보리, 밀 추수기간을 두 주간으로 잡으면 도대체 몇 년 연봉을 얻어러 가는 것일까요? 14*60일 이지요? 28개월치 먹을 것. 2년 6개월 치 먹을 것을 두 주 일하고 얻는다는 단순 계산입니다.
 
    시간당 계산해서 일당 받고 두 주만에 페이 체크받는 인생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번 받아서 일년 사는 인생도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리로 회복시키시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간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룻은 단지 어머니를, 교회를 사랑했고, 어머니, 교회에 모든 것을 드렸고, 어머니, 교회를 찬양했더니 그 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되었을 뿐인데 하나님은 룻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준비하시며 인생을 회복해 가신다는 것 입니다.
 
    이 성경을 읽으면서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도 없는 일들로 우리 인생을 풀어가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뭔지는 몰라도 우리 인생을 풀어가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2-23절에서 ‘내 딸아’라고 부릅니다. 룻에 대한 시모 나오미의 말이 상황에 따라서 점점 변화되는 것이 보이십니까? 점점 더 관계가 밀접해 지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자식처럼 대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성도들을 자식처럼 보고 대할 줄 아는 영권있는 분들이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알고 나는 내 양의 음성을 듣는도다’고 하셨지요? 늘 양때들에게 눈을 돌리는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정부 아파트, 영세민 촌같은 곳이 있습니다. 주로 흑인들, 아프리카 난민들이 많이 삽니다. 특징은 16세 되기 전에 남자아이들은 많은 숫자가 감옥에 가 있고, 가정에 아버지가 없는 집이 80%가 넘는다는 것이지요. 가정에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무너진 가정이지요? 흑인들의 대부분의 삶이 이렇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동네 아이들은 아버지 날이 가장 곤혹스럽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기에 그렇지요.
 
    나라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무너진다고 합니다. 교회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징조는 반드시 목사님을 공격하고 험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존경하고 보호하는 분위기가 간절해지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에 전해지는 각종 유격전쟁에서 그 부대 중대장을 목숨으로 보호하려는 대원들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만큼 지도자는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해 드려야 하는 존재가 교회의 목사님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그 목사님은 성도 한 사람의 고통을 듣고 마치 자기가 회개해야 하는 사람처럼 간절히 눈물어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런 존재입니다.
 
    힘없는 시모 나오미가 며느리 룻의 공경을 받고 살면서도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여 이젠 자신의 딸 이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딸을 이제는 안전한 곳으로 시집 보내겠다고 마음을 털어 놓는 부분이 3장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며느리를 시집보내려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성도들을 향한 목사님의 마음이 이러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위기의 기도하는 교회로 만들어 가시기를 다짐하기 바랍니다. 30년 전만해도 교회 목사님을 당연히 아버지처럼 모시던 것이 사실 아니었습니까?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룻이 나오미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시모의 말씀에 이 물질이 전혀 끼어있지 않습니다. 마치 천사처럼, 보아스의 소녀,소년과 같은 모습입니다. 자기 생각이 전혀없는 모습입니다.왜냐하면 ‘평소 어머니의 말씀은 모두 다 나를 위한 것 이었더라’는 이유때문이지요. 교회에서 너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왠만하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따름 다음에라도 얼마던지 자기 생각을 표시할 수 가 있습니다.  너무 자기의 생각을 앞세우는 그런 삶은 대로는 엄청난 어리석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께 복종시키는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야장창 교회만을 생각하는 목사님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흘러넘치는 은혜의 물결이 각 가정으로 전파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아나고 나라와 가정이 살게된다’는 모토로 예배회복운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영적싸움 입니다.

    마귀가 장난치기를 ‘목회자를 못 믿을 사람으로 만드는 작전을 합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사상을 전개합니다. 말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역할과 직분에서는 차이가 있음을 잘 알아야 하며, 나라가 망하게 될 때, 아버지를 먼저 넘어 뜨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걸고 넘어지고 결국은 욕하게 될 때, 결론은 그 교회는 은혜가 없어지고 박살이 나버리게 됩니다.
 
    ‘다른 밭에 가지 마라’ 는 것은 교회의 자신감으로 이해 하십시오. 교회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도 교회는 있지만 여기에 우리 교회가 있고 우리교회가 제일 좋다는 자신감으로 보시면 됩니다.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추수가 마쳐지는 그날까지,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교회와 함께 동행하는 룻의 모습에서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끝까지 마치시기를 소원하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