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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2-18 (화) 07:21 조회 : 74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히11:1-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11:1-7)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 붙여지는 별명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때,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의심하는 믿음은 작은 믿음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이 무리들과 함께 계시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배에서 잠을 주무셨어요. 그 때 광풍이 몰려와서 배가 파선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무서워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고 하시면서 믿음의 부피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에 어찌 크고 작은 것이 있겠습니까? 믿음의 크고 작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작다는 것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뭐에요? 두 가지를 놓고 어떤 것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를 놓고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갖고 있지 못하고 확신이 없을 때, 의심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시험을 이김

마가복음 4장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두렵고 떨리고 무섭게 느낄 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12년 동안이나 혈루 병에 걸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자기의 재산을 모두 탕진할 때까지 의원을 찾아다녔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낫지 않아요.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놀라운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여인과 같은 위기의 세월을 12년 동안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찾아옵니다. 이렇게 답답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 대답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 책망 속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게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 받을 수 있는 큰 믿음의 사람을 보면, 그렇게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생의 문제를 치유하고 회복함

마태복음 9장을 보면,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딸이 완전히 마귀에게 잡혔어요. 그 때, 어머니가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 딸을 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면 자기 딸이 고쳐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 방법이외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결과는 치유됩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심각한 중풍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 그 주인인 백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있는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시는데, 그 백부장은 말하기를, "나는 당신에 내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고쳐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의 믿음으로 네 하인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풍 병에 걸린 하인은 그 현장에 없었어요. 그런데 주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 집에 있는 하인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인생 문제는 믿음으로 치유해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중요합니다.

실상과 증거 그리고 믿음의 관계

오늘 히브리서 말씀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는 실상이요, 하나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실상과 증거가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믿음이고, 둘째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로구나. 내가 바라는 것이 실상이구나. 그것이 믿음이구나. 내가 바라고 있는 것, 이것에 대한 사실적으로 나타난 것이 믿음이구나.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내가 앞으로 이렇게 될 사람이라는 실체가 눈앞에 있는데, 현재는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에 대한 것을 보면, 학문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히브리서 말씀은 실상과 증거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미래의 소망이 실상이 되게 하는 것

실상에 대해서 정리해 봅니다. 실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번역하면,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바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바라는 것과 실상이 더해진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허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허상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신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확신되는 것이 소망이요, 소망이 믿음을 끌고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것이 실체로 나타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소망이라는 것이 나를 끌고 가서, 실체라는 것이 나타나도록 나를 끌고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소망이 있고, 그는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좌절이 없습니다. '못한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소망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 가는 힘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소망이 끊어졌다는 것은 내가 믿음이 없다는 말과 똑같아요. 내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과 같아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나타날 것이요,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실상이라고 합니다. 이 실상을 가진 사람들, '나는 그렇게 될 것이야.'라는 사람은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절대로 그 사람은 오늘에 묶여 있지 않아요, 성경을 보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는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아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갑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 날짜는 우리들의 생각이요, 소망이지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시간에 제한되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공간이 매우 큰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놓는 순간부터 늙어짐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놓쳐 버리면 신앙생활의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계산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은 믿음이 아닙니다. '반드시 내가 나가면, 하나님이 실체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역동적인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때는 다른 잡스럽고 부수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로켓이 발사될 때, 추진 로켓이 밀어 줄때, 목적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가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믿음이 한 방향을 향해서 질주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사회 활동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가요. 그래서 믿음이 있는 교회는 잡스러운 일들이 없어요.

믿음의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25년을 해왔다고 해도, 절대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교회가 젊어지고 어린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교회가 늙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에 늙은 교회입니다. 늙은 교회는 소망이 없어요. 나이가 들었어도 나이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는 젊어요. 그렇기에 나는 이 나이가 되었으니, 은퇴하다가 적당히 보내겠다는 것은 안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질 때, 빨리 늙어집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지 않아요. 믿음을 잃어버리면, 빨리 늙어요. 그 동안 팽팽한 것도 잃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망을 잃었다는 증거고, 우리의 실체를 놓쳐 버린 모습이 됩니다. 이정도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늙어갑니다. 늙어갈수록 교회에 더 나와서 찬송도 열심히 하고, 힘써서 달려가십시오. 어떤 분은 나이 육십에도 춤을 추고 다니는데, 나이 사십이 된 사람이 한 숨을 쉬면서 뒤로 쳐져서 팔자로 걷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은 것으로 끝내면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일 수가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 최선의 것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는 믿음

아벨이 양 새끼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어떻게 양을 드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실 것을 알았을까? 단순히 그 사람이 양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드렸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가인은 농사를 지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는 아벨과는 달랐습니다. 가인은 '이정도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라고 하는 자기중심과 자기 의로움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적인 일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육적인 일인지, 성령의 일인지 구분이 없어요. 아벨은 믿음으로 나간 것입니다. 이미 실체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미래를 미리 준비함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누가 알아요? 노아 시대에 노아만 빼놓고 모두가 썩었습니다. 그 말은 믿음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노아의 자세를 세상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가 말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사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믿음의 세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들의 눈에는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확실하게 증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실로 나타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결국은 가족들을 그 방주에 모두 태울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의 방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이 먹을 양식까지 그 방주에 다 채웠습니다. 이미 그는 그들이 모두 방주에 탈 것과 이 땅에 얼마 동안 물위에 있을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지 않는 남편의 이름으로도 헌금을 합니다. 내 남편의 이름으로 내가 지금, 예물을 드리는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은, 내 남편이 지금 예수 믿을 것이라는 증거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가 아니라면, 목사가 돈 이야기를 한다고 몰아갑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 믿음의 세계를 알기 때문에 반드시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구원 받습니다.

노아가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아가 어쩌다가 방주 안의 방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믿음으로 받았어요. 그것을 가지고 그것을 증거 삼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가족들이 모두 탔어요. 배에서 얼마나 살았습니까? 1년을 살았어요. 얼마나 먹을 양식을 준비했겠어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그것을 어떻게 계산을 합니까? 말, 코끼리가 먹을 것들을...........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보았어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면, 세상에 그렇게 확신이 생길 수가 없어요. 보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시험에 넘어지지 않는 믿음이 실상을 취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합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430년 동안 그들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본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모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200만 명의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본적이 없었는데,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믿고, 그 말을 증거로 삼고 길을 나선 것입니다.

그 믿음은 대단한 믿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분명히 그 땅이 아름다운 땅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이 뭐에요? 그들이 봐야 될 것은 뭐에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임을 보고만 했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은 분명한데, 그들이 볼 때,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애굽으로 다시 가겠다고 합니다. 다시 가면 뭐해요? 가면 죽어요. 그런데 화가 난 김에 하는 말이, 다시 가겠다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명만 믿음으로 들어갔고,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그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두 명만 들어갔어요. 두 명, 그 두 명이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40년을 통과하는 동안 그들의 믿음은 여전히 동일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믿음 있는 사람이 영적인 장자

모세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믿고 백성들을 이끌고 전진할 때, 믿는 사람이 모세 밖에 없었습니다. 아론조차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을 이끌고 갑니다. 교회는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이끄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 믿음. 그 집안에 영적인 장자를 통해서 그 가정을 이끌어 가십니다. 누가 진짜입니까? 여호수아 같은 막내가 우리 집을 밥 먹고 살게 만들어요. 일은 누가 합니까? 밥 먹고 살게 된 이유는 그 아이 때문에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집에 믿음의 장자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구원을 향한 세계를 향하여 질주하는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일을 향해서 나아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음에 대한 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에 관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환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믿음은 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실입니다. 믿음은 '가상, 가설'이 아니라, 실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각에서 인간을 평가해보면, 인간은 무엇인가? 믿음이 이끄는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믿음이 없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믿음이 내가 믿고 있는 곳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나를 이끌어 간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믿음이 나를 끌고 갑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곳에 나를 데려 갑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망할거야.' 그러더니, 망했어요. 그가 망할 거라는 믿음이 그를 망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나는 잘 거야'라고 한다면, 그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의 고백이 여러분을 잘되게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나를 이끌어 간다. 인간은 믿음에 의해서 이끌어 가는 피조물임을 알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게 되면, 우리가 창조된 피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실패를 오천번 했어도, 상관이 없어요. 실패를 오만 번 했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가능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마지막 순간에 삼손이 역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마지막 힘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는 틀림이 없습니다. 비록 육신적으로 큰 잘못을 했지만, 그는 믿음에 대해서는 확고했어요. 그는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믿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이 내게 힘을 주시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하면서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삼손을 보십시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죄 한 번 짓고, '나는 죽일 놈입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과거에도 바른 믿음을 소유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시는 그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일어서면 됩니다. "돈도 없고, 실력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해 줄 수 없는 죄가 어디 있습니까? 인간적인 부모도 자식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그의 죄를 덮어주지 않던가요? 믿음이 이끄는 곳으로 끌려가십시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 하십시오. 믿음은 가설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믿음을 힘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그 자체가 도덕을 초월합니다. 그 말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다윗을 단순히 도덕적인 눈으로 보면,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를 지었을 때,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악한 죄를 지었어요? 자기 욕심을 위해서 한 여인의 남편을 최전방에서 죽게 한 후에, 그 사람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어떻게 주님의 모형이요, 왕 중의 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습니까? 아무리 회개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를 도덕적인 가치로만 따지고 들어가면, 아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연결하는 힘입니다. 믿음이 힘이 되는 이유는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죽기 살기로 사랑한다고 하다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끊어지고 사랑이 끊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끊어지고, 끝납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단 한가지입니다. 믿음의 도구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되어지면 우리는 그 때부터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훈련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소개할 때, '믿음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관계 속에 투자하십시오. 내 인생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서 다시 회복해서 나간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쫓아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지 마십시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라고 할 때, 그 사이에는 반드시 믿음이라고 하는 연결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여러분의 미래가 연결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연결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디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이것이 예배가 회복되어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내 자신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간절합니다. 이 말이 너무 간절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을 수 있게 말해야 하고, 믿도록 해야 하는데..........자식들에게, 성도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번번이 약해지고 떨어집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울 수밖에 없어요.

믿음은 결단입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말씀을 듣고 결단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토론 문화에 젖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토론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토론으로 끌고 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교만입니다. 성경에서 변화는 되지 않으면서 예수님과 토론 하고 논쟁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사두개파 사람들,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언제나 토론을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언제나 씨름을 했어요. 그러니 그들이 성경에 보면, '본 나라의 사람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했어요. 토론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유부단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결단하고 돌아섭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한 약속에 대해서는 결단이 빨라요. 그렇기에 믿음은 언제나 결단하게 만들어요. 믿음은 토론이 아니라,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가 되면, 토론이나 논쟁이 아니라,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결단은 자꾸 해야 합니다. 오만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조금 뒤에 지키지 못할망정 결단하십시오. 자꾸 결단하다보면 어느 날 더러운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것이 멋집니다. 열 번을 잘못해도 용서하고, 결단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나쁜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유구무언'하는 놈은 결박해서 밖으로 던져 놓으라고 합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예수님을 죽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들어와서 열 번 잘못했다고 하는 자식이 이쁜 녀석입니다. 복음은 열 번, 백번이라도 결단만 하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면 연결됩니다. 그러할 때마다 용서해 주고, 덮어주면 진짜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귀입니다. 한쪽에서는 덮어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하는데, 용서해 주지 않으면 마귀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마리 양을 찾아 놓고, 잔치를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집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그 증거가 말씀의 손에 있고, 소망이 있을 때, 그 믿음이 여러분을 끌어서 거기에 가져다 놓을 것입니다.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