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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자 욥의 축복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2-14 (금) 06:58 조회 : 40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욥1:1-5

참된 예배자 욥의 축복(욥1:1-5)


예배가 사라지거나 변형되는 심각한 영적공황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예전처럼 교회를 핍박하는 부당한 공권력으로 인한 예배의 폐지가 아닌, 교회들 스스로가 전통적인 예배의 시간들을 점차 없애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지으시되 예배를 통해 최고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신데, 인간 스스로 예배를 폐함으로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고자 하는 온전한 축복들을 쉬 놓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배가 최고의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통로를 스스로 폐쇄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참된 예배자로서 하나님앞에 큰 복을 누리는 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의 핵심적인 단어가 다른 부가적인 설명들을 해석하고 보완하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도 욥을 소개하는 말들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핵심단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예배한다’는 뜻을 포함하는 단어로서 사람앞에는 쓸 수 없는 종교적 언어입니다. 사람앞에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김일성 처럼 인간이 예배를 받는 우상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쓸 수 있는 용어입니다. 결국, 이 단어를 통해 욥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였으며, 이 예배가 복의 샘물 근원이 되어 그에게 다른 많은 축복들이 주어졌음을 알게 합니다.


I. 땅이 복을 받음

1절 초두에 우스땅에 사는 욥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그 땅이 복된 땅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3절 말씀에 ‘동방사람중에 가장 큰 자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할 때, 우스땅은 동방의 큰자요, 유력한 자요, 하늘의 큰 복을 받은 사람이 사는 축복된 땅임을 알게 합니다. 한국의 풍수지리 사상은 쉽게 말해, ‘사람은 개판이라도, 땅만 좋으면 복을 받는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스리고 정복할 땅이 오히려 인생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향은 ‘사람이 좋으면, 땅도 좋아지고, 하나님의 복도 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 받는 자가 되면 그 땅이 복 받는다. 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하나님의 방향인 것입니다.
 
똑같이 흉년이 들어도, 어떻게 이삭은 100배의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까? 이삭이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이기에, 그 땅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의 열왕의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들의 때에 온 나라가 복을 받고, 악한 왕의 때에 흉년과 기근이 반복해서 나타났음을 보게 됩니다. 왜 똑같이 사업을 해도, 한사람은 성공하는데 다른 사람은 망하는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삶의 현장에서 성공한 것이 없고, 당한 것 밖에 없다면.. 왜 안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문제시 할 수 있는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교회에서 우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그 사람의 삶의 현장에 임박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함으로, 여러분의 사는 땅이 하늘의 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II. 성품과 인격의 변화

욥을 설명하는 두 번째 말은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욥의 타고난 성품이 좋다는 의미 뿐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자로서 성품의 온전한 변화를 이루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간혹, ‘저 권사님은 신앙은 좋은 데, 성질이 괴팍해’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는데, 실제로 주어와 술어가 일치할 수 없는 말입니다. 신앙이 좋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성품과 인격의 변화를 놓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밥먹다가 설거지 때문에 마음 상하고 버럭하거나, 예배를 드린 후에 돌아서서 회의하다가 쑥대밭이 되는 경우를 봅니다. 참된 예배의 축복을 받지 못함의 증거입니다.

 예배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성령의 열매가 맺혀짐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는 이 땅위의 구체적인 실체가 아닌, 아홉가지 열매 전부가 성품과 인격에 해당되는 내용인 것을 봅니다. 결국, 참된 예배자-성령충만한 예배자는, 그 예배를 통해 근본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로서 성품과 인격의 온전한 변화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III. 악에서 떠나는 복

욥을 소개하는 또다른 말씀은, 그가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성품의 변화 뿐 아니라, 내적인 심령의 변화가 행위의 열매까지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곳입니다. 하수구의 물과 같이 가만히 두면 퍼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작은 막대기로 한번 젖기만 해도, 생선뼈다귀부터 별 괴상한 오물이 다 떠오르는 정말 부패한 곳입니다. 그런 마음이 어떻게 해야 온전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참된 예배를 통해 가능합니다. 온전하게 예배드리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에게 등쳐먹을 수는 없습니다. 예배에서 진실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거짓말 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기치거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의 은혜가 우리 삶에 아름다운 행위의 열매를 맺는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IV. 자녀의 복

욥은 10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전통에 가득한 화살처럼, 많은 자식을 둔 것 자체도 욥에게는 큰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또한, 4절과 5절에서 욥이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에게 예배중심의 삶을 살도록 가르친것을 볼 때, 그는 복을 받을 줄도 알지만 관리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자식농사를 실패하면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 아무리 명예가 높고 재물이 많다 하여도,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고 헤매이고 있다면 그것만큼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아이를 하나씩 밖에 낳지를 않으니까, 자식이 부모에게 우상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자식이 우상이 되면, 언젠가 부모는 자식앞에 무릎꿇고 절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복없는 가정의 단면입니다. 부모세대가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에, 열심히 돈을 벌어 자식의 원하는 대로 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참으로 복없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식이 죄짓는 일을 하거나, 죄짓는 일 속에서 돌아온다 하여도 그렇게 잃어버린 세월을 계산한다면 그 부모는 엉터리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뒷돈 대주는 사람, 사고처리해주는 보험사 직원 같은 역할이 아니라, 성경의 원칙과 기준을 말하고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불순종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들만 합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욥처럼 하지 않는 부모 그 자신의 책임입니다. 본문의 욥을 보십시오. 그는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자녀를 돌보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예배하는 것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이 부모에게 허락하신 권위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 둘이 아니라, 십남매를 키우면서도 항상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입니까? 부모로서 먼저 하나님의 권위앞에 무릎을 꿇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부모에게 권위를 주시고, 그 권위앞에 하나님앞에 하듯이 자식들이 순종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자식이 우상이 되지 않는 길이 무엇입니까? 부모가 먼저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떤 자녀라도 순종할 만한 권위를 주시고, 그 가정에 자식의 복이 머물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V. 물질의 복.   

3절에 욥이 받는 물질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물의 숫자가 구체적으로 있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은 대충 두루뭉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아주 명쾌하게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임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욥의 받은 물질의 복이 무조건 많으니까 이건 무조건 좋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단순히 많은 물질이 복이라면 그것은 기복사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재물 많음이 고급스런 죄를 짓는 통로가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욥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이것이 축복이 되는 것 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1절에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받은 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에게 영혼의 강건함과 잘됨을 주십니다. 그리고 범사에 형통함과 강건함의 은혜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의 소유물들의 중심에 제사의 제물이 되는 소와 양이 많음을 볼 때, 인생에게 최고의 물질의 축복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도 또한  많은 것임을 알게 합니다.


맺음말

말씀을 맺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살아있는 사람이요,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에게 최고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참된 예배자를 통해서 이웃과 가문과 교회와 그 땅이 복을 받습니다. 성품과 인격이 변화됩니다. 많은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자식의 복을 받으며, 주님께 드릴 제물도 풍성한 물질의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축복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한결같이 참 좋은 예배자였음을 기억하시고, 그와 같은 귀한 복들을 사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