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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발걸음이 모든 축복의 시작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2-14 (금) 06:50 조회 : 63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룻 1:6, 16-17

회복의 발걸음이 모든 축복의 시작 (룻 1:6, 16-17)


1. 참된 축복은 미래의 회복을 향해 나아감

룻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은 미래의 소망과 약속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지향하는 바가 뚜렷합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는 곳에서 교회가 있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생명과 축복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영원한 만족과 안식이 있는 곳으로 지향하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룻은 모압으로 이민 온 이스라엘 사람 엘리멜렉 가정에 시집온 모압여인 입니다. 그의 시댁 엘리멜렉 집안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싫어서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과 함께 도망치듯 이민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흉년을 피해서 왔다고 단순하게 기록하지만, 실제 그들이 살던 시대가 사사시대였으며 이민의 직접적인 원인이 흉년이었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징계라는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흉년은 국지적이지 않습니다. 저들이 살던 곳 베들레헴과 모압은 그렇게 먼 곳이 아님에도 이스라엘은 흉년이 들고 모압은 양식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베들레헴이란 마을의 이름 뜻은 ‘떡집’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곳에 흉년이 들어도 마지막 최후의 보루가 베들레헴은 흉년들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최악의 흉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웃한 모압나라에는 양식이 있었다는 것을 볼 때, 흉년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분명한 징계와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때에 피하지 말라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앞에서는 꼼짝달싹하지 말고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결코 도망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앞에서 도망가는 순간 완전한 절망밖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실제로 엘리멜렉이 집안이 그 표준이 됩니다. 엘리멜렉 자신도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젊어서 자식도 없이 죽어버리고, 이제는 두 이방 여인 며느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철저하게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철저하게 망하면서 손가락질 받기 딱 좋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 나오미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의 징계가운데 들 때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나아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서 피할 방도를 구하지만, 도리가 없음을 봅니다. 하나님앞에 나아오지 못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겠다고 나서는 만큼 더 세상앞에서 손가락질 받고 더 완벽하게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함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거나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무형의 교회는 영원할지 몰라도, 지상교회를 완전하게 보고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과 가르침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붙어있지 아니하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것을 알 때, 함부로 교회안에서 자기 목소리로 떠들지를 않게 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앞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르고, 교회를 어머니의 품과 같이 기쁘게 대할 때, 영원한 생명력이 교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은 ‘싹’을 잘라놓으시는 분이십니다. 1장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땅을 떠날 때, 자식을 둘 수 도 없고, 둔다고 한들 ‘소망’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룻1:11-12). 이것은 계대결혼을 염두고 두고 한 말입니다. 계대결혼 시킬 자식하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가 택한 백성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실 인간적인 제도와 수단과 통용되는 모든 방법까지 아예 ‘싹’을 잘라놓고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타락하여 하나님 앞을 떠났을 때, 하나님앞에 두 손 두 발들고 나아오는 것 외에는 교회의 회복을 위한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자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

반대로 하나님은 당신의 집에 머무는 자, 당신의 음성에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의 삶은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오미의 집안과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심판의 수단으로 국지적일 수 없는 흉년을 사용하여서 심판하시듯, 하나님은 구약의 가정교회인 이삭의 집안을 축복하시는 방편으로도 흉년을 사용하신 예가 있습니다.

 이삭의 가정 교회는 순종과 형통의 모범이 되는 교회입니다. 이삭은 전공이 농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시절 아버지 아브라함의 아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는 순종과 그 결과를 보면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 이후 이삭의 별명은 하나님앞에서 형통과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이삭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주변은 다 흉년들었음에도 유독 이삭의 가정은 백배의 결실을 맺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모두가 흉년들고 어려워도 당신에게 꼭 붙어있는 당신의 교회와 백성들 만큼은 풍년의 축복을 허락하실 수 있는 분이시면서, 또한 반대로 모압과 같이 가까운 이웃 나라가 풍년이 들어도 징계 아래 흉년으로 끝장을 보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 뿐 아니라, 축복과 심판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인생은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당장 심판과 징계의 어려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의 교회를 붙들고 늘어지는 삶을 살아갑니다. 축복받는 교회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사나 죽으나 주님 앞에 꼭 붙어있는 교회가 결국에는 세상이 다 망한다 해도 승리하고 이기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4. 회복의 시작은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

영육간에 실패하고 초라해진 늙은 시모 나오미에게 유대땅에 양식있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집나간 자녀와 타락한 교회를 세우고자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 복음인 것입니다. 이에 늙은 나오미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몸을 돌이킵니다. 나오미의 이름의 뜻이 희락과 기쁨임에 반해, 스스로의 이름을 ‘마라’로 부를 정도로 쓴 맛이 나는 괴로운 인생의 형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다른 사람의 어떤 위로도 통하지를 않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이켰을 때에, 10년 만에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그를 ‘나오미’라는 이름으로 맞이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그가 어느 정도 유력한 집안이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마라’라는 쓴 맛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이미 마음이 무너진 것을 말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영적으로 초라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는 순간 회복의 역사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형편임을 아는 두 자부에게 돌아가기를 권합니다. 나오미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길이었기에, 두 며느리는 살길을 가도록 합니다. 결국, 동서 오르바는 돌아가지만, 자부 룻은 시모 나오미에게 받았던 말씀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따르는 신앙의 결단을 하면서 나오미의 치맛자락을 바짝 붙잡고 굳게 결심함으로 어머니를 쫓아갑니다.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완전히 알거나 이해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인 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조금은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배웠던 것입니다. 룻은 희미해 보이지만, 바로 영혼을 살리는 그 부스러기 같은 말씀을 붙들었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교회인 어머니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 분명한 회복의 길

룻이 가보지 않은 베들레헴을 갈 이유가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인 어머니가 들려준 말씀이 좋고, 그 교회가 말씀을 따라 살려는 것을 볼 때, 자신도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 안에서 갈길을 밝히 보여준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좋은 것이라고 믿고 결정해서 가면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냥 가는 정도가 아니고, 자신도 거기에 생명을 걸고 니오미처럼 쫓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축복이 있으며, 예비된 하나님의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앎일지라도 결단하고 결심하고 단 마음으로 순종하며 쫓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단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구체적인 자비하심의 은혜와 축복의 문이 서서히 열려지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단의 돌이키는 마음과 순종의 팔다리를 움직임으로 하늘 문이 비로소 열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가운데, 연말이 되면 신년부터는 사역을 멈추겠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교사로 가르쳐 보니까, 찬양단으로 봉사해 보니까,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좀 더 배운 뒤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든 것을 깨우치고 안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는 것은 교만일 따름입니다. 어떤 면에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작정하는 순간 실제 하나님의 무궁한 능력은 그 사람의 지식에 갇혀 버리고 제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지식이 부족하고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교회가 원한다고 할 때 겸손히 순종하는 삶의 자세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룻은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룻에게 교회인 어머니를 통해서 배우고 들은 말씀을 따라, 거기에 생명을 걸었을 때에 상상치 못한 기적같은 일들이 룻앞에 예비되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잘 몰라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앞에 순종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마음껏 받아누리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