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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1-16 (금) 08:17 조회 : 37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삼상13:8-15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삼상13:8-15)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들은‘아, 저렇게 살면 망하는구나. 아, 저렇게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사람이 되는구나. 아하, 안될 상황에서도 되는구나. 그러면 나는 죽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야지.’성경을 보면서 좋은 일이 있는 가운데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시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보니까 그 이유는 그 밭이 돌밭이었기 때문입니다. 돌맹이가 있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사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잘게 부수고 부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을 때부터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온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그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를 끝까지 기다려 주셨고 사랑하셨어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돌이 가득차서 말씀을 받아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요.

여호사밧 왕 때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각기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속에 거짓 영이 들어와서 자기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진짜 선지자의 뺨을 때립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언제 하나님의 영이 너에게 가서 그런 말을 하더냐?’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인 것으로 착각하면 진짜는 뺨을 맞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을 보면,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과 삶의 현장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간섭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면서 방향을 끊임없이 하나님 쪽으로 맞추어 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성공되어지면 방향이 명확해 집니다. 회개는 방향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돌아서라는 사인입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속도를 내는 것은 죽음이요, 방황을 의미합니다. 빌게이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었던 시대였으나, 지금은 속도 빠른 것이 속도 느린 것을 잡아 먹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어요.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방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황을 하다가도 예수님을 만난 순간부터 방황은 끝입니다. 그 길로 들어서면 진리를 만나고 생명까지 만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울의 망령된 예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한 가문 가운데서 또 약한 사울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을 보면, 겉 사람은 멋진 왕감인데, 중심이 삐딱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방향이 자기 중심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중심과 사상으로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날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에 나가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가도록 하나님이 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기다려고 오지 않습니다. 지금 적군이 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서 숨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왕의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오기로 한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 집니다. 말하자면, 두 세 시간을 기다리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사울은 자기 스스로 짐승을 잡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한 것입니다.

그 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변명하기 시작했습니다.‘적군은 쳐 들어오고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데로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입니다. 그 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13,14절).’말했습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다 예배를 인도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을 우리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 기초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이 들어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아래 있을 때 가장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아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하셨으면 그렇게 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법을 기초로 해서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법이 없으면 우리가 지옥으로 가는 기준도 천국으로 가는 기준도 없어요. 그러나 그 법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법아래 있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줍니다. 여러분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어떻게 알아요? 법입니다. 그 법이 기준이 되어서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법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지, 법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너무 많아요. 자기 소견대로 해도 구원 받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사울이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일주일 안에 온다.‘ 했으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기다림이 믿음입니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음을 말합니다. 믿을 수 없는데 누가 기다립니까? 믿음이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힘을 써서 제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거짓되고 자기 중심적인 예배드린 후부터 사울은 오히려 더욱더 거짓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권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현상적으로는 그가 여전히 왕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이미 폐하셨습니다. 우리가 늦어 보일찌라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빠른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불순종이라는 것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게 됩니다.

불순종이라는 것이 단순히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다양합니다. 그러니 이 사울이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지금 전쟁을 하려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우선되어져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우선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실제 내용을 보면 그는 언제나 자기 생각이 우선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울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매우 부정적인 것을 보지만, 우리가 긍정으로 보려면, 실제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몇 가지로 정리를 해서 우리 생각을 고정시켜 보아야 합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이 없고 환경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감정과 상황에 따라서 바뀌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한 길이라는 것이 뭐에요? 하나님이 이미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안나 선지자도 남편이 죽은 후에 팔십 평생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 이미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어제 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부터 하나님은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정하신 그 길로만 가면 우리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한 길을 보여주신 것은 성경입니다. 예수님 밖에 없어요. 이 정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로 이것을 막으려 하고 변개 시킬려고 해서는 큰일 납니다.

법과 기준이 없는 사람

법과 기준이 없는 사람은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하나님 밖에 없어요. 왜요? 그분은 변하지 않아요. 정해져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다 변합니다. 내 남편도 변하고, 아내도 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관리하고 좋은 것을 먹어도 우리 몸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다 소멸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 소멸되고 변합니다. 믿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계를 믿을 수 있다고요? 다 변합니다. 그러나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주님, 말씀 밖에는 없어요. 말씀은 변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가 사회적 개념으로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신뢰를 해 보려고 하는 말일 뿐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말을 우리가 답답 해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것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무엘이 칠일 만에 오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으면 오실 것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주님은 분명히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것을 사울은 지켰어야 했어요. '왜 지금 오지 않지?'하면서 속도를 냈다고 해서 자기 속도를 냈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급한 일일수록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급하고 중대한 일일 수록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한 시간까지.

우리의 기준은 주님의 기준으로 옮겨져야 함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의 생각의 기준은 주님의 생각의 기준으로 옮겨져야 됩니다. 우리의 기준이 없어지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의 기준을 지금도 세우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관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하지 않은 것과 같아요. 기준이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정한 것입니다. 칠일 째 온다고 했으면 '아침부터 와 줘야지, 아니면 해지기 전에 와 줘야 하는데' 했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달라요. 언제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어요. 결국은 자기 생각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 망합니다.

예배를 형식화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은 형식입니다. 그 중심을 빼고 나면 그것은 하나의 예식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 만약에 그 안이 텅텅 비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배 승리자는 언제나 내 영혼이 거듭나서 말씀이 육신되어진 상태로 나를 유지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보면, 우리도 말씀에 붙들린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게 붙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내 입에서 나가는 것이 나의 소원과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소원이 내 입에서 나가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될 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심을 항상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나가지 않으면, 모든 제사는 형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형식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형식에 붙들려 버리면 그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테스트하시고 흔들어 보십니다. 순간마다 내가 하나님이 동행하고 있는지를 한번씩 건드려 주시는 간섭을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시험이 올 때, 마귀의 역사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듣는 시간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실력가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축복 옆에는 마귀도 붙어 있어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여러분의 신앙이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자꾸만 여쭈어 보시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때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예배가 살아나게 되어 있어요. 예배가 너무 좋아져요. 왜냐하면 주님을 보는 것처럼 말씀이 들려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느끼게 되어 있어요. 보셔야 합니다. 느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신앙생활은 힘이 없고 신앙생활이 너무 지루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한번만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중간에 시험에 빠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이렇게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형식의 신앙이 중요하지만, 그 형식을 취할 때 그 내용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에 예배를 형식화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다 드리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예물이 신앙의 자기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한 과부가 성전에서 자기가 가진 전부인 몇 달라 밖에 되지 않는 헌금을 정성 스럽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동시에 상당한 부자가 많은 헌금을 성전 헌금 통에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많은 헌금을 한 부자보다도 가난한 가운데 자기 소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전부를 드렸다.'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보면, 그 사람의 예배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 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예배 성공의 결과로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게 복을 주실 것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내 신앙의 범주 안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것 속에 나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물을 보면서 내 마음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바르게 준비되어져 있으면 눈으로 보이는 드림도 잘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상을 보면서 본질을 보는 것은 조금 불완전합니다.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 풍성할 수밖에 없어요. '헌금 하지 않는 사람들은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헌금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주님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면 주님이 좋아지면,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어 있어요.

주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첫째는 주님을 미안하게 섬겨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든지 하세요. 또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돌보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수넴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집에 필요한 것이 뭐냐?' '일 년 뒤에 아이를 안으리라.' 일 년 뒤에 아이를 낳았어요. 왜 그렇게 되었어요? 너무 미안하니까. 처음에는 밥 한 그릇만 주더니, 국을 주고, 방을 내어 주고, 침대를 넣어주고 책상, 등을 달아주고 방을 하나 내어 주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쉬어 가라고 하면서 별채를 지어 주었어요. 그 마음이 너무 진실해서 미안해요.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미안하게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미안하게 하는 사람들은 보면 예배가 살아 있어요. 이것은 너무도 정확해요.

한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의 가장 귀한 향유가 담긴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옥합의 가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여인이 하는 행위 자체가 주님을 감동시켜 버립니다. 주님이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을 어찌 모른다 하시겠습니까? 예배가 살아나고 교회가 좋아지면 뭐라도 드리고 싶어져요. 이것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못합니다. 정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과 그의 예배를 자세히 보십시오. 그는 자기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이 예배 가운데 수많은 예물과 짐승을 드렸으나, 하나님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도 하나님께 제물을 많이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예배를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시간에, 자기 생각대로 예배 드린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제 예배를 막 끝낸 사울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사무엘이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해야 될 일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아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분 스스로가 예배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은 심각합니다. 여러분 혼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보고 묵상을 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을 예배하고 대처해서는 안됩니다. 혼자 앉아서 예배 드릴 수 있으면 뭐하러 말씀을 전하는 자, 가르치는 자가 있게 하셨어요? 뭐하러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셨고, 왜 오셨어요? 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님의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까? 어떻게 자기 혼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스스로 예배가 무너져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자기 마음에 들어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열 번 중에 한 번 틀리면 여러분은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도 잘못된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이 사상이 되어서 진리를 막게 되어 있습니다. 큐티를 예배라고 해서는 큰 일입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런 것들이 만연되어져 있어요. ‘목사님이 축복이 있을찌어다.’라고 선포할 때 여러분이 그것을 믿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제가 축도를 하고 축복합니까? 이것이 성경의 비밀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면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 질찌어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성공되어지면 여러분이 이 자리를 일어서서 나갈 때 마음 속에 큰 기쁨이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실패한다면 여러분은 우울해 집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느낄 때 이렇게 기도하고 자리를 일어서십니다. '주님 제가 오늘 예배 실패한 것 같아요.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예배 성공자가 되기를 원합니다.'그렇게 해 보십시오. 그렇게 고백하고 일어설 수 있는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은 절대로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귀에게 붙들릴 이유가 없어요. 언제나 예배 끝나는 순간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나는 정말 오늘 예배를 성공했느냐?' 예배가 성공되었다고 생각하면 확신을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예배와 삶은 성공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래서 항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했던 말을 물어 보십시오.

불안한 환경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지금 성도들이 흩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은 문제가 생기고 자녀들에게는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때 사울은 자기에게 지금 닥치고 있는 환경과 자원이 흩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조급해 집니다. 사울은 지금 자기에게 몰려오면서 목을 조이는 적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이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아무도 남지 않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앞에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 물 위를 걷다가도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불레셋이 아니고 약속의 말씀입니다. 너무 안되는 사람만 계속 바라보고 신경쓰면 내 마음도 상하고 지쳐 버리고 말아요. 되는 사람, 잘 따라오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힘을 얻어서 잘 안 되고 말 안듣는 사람을 포용하고 가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힘과 능력이는 것은 내 삶을 잘 돌볼 뿐 아니라, 에너니가 남아서 이웃에게 까지 영향을 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사람이 진짜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은혜 받는 사람만 보면 저도 힘이 납니다. 안되는 것을 쳐다 보고 있으니 얼마나 불안합니까? 사무엘은 오지 않습니다. 얼마나 불안해요? 그것은 변명일 뿐이지, 주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지금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목사님, 너무 어려워서 기도도 안되요.' 그런 분을 위해서 정답을 드리면, '어려운 일을 보지 마십시오.' 보지 말고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셔야 합니다. 차라리 돌아 서야 합니다. 그래야 이깁니다. 힘을 좀 다른 곳에서 얻으십시오. 힘을 얻으신 후에 끌어안고 가십시오. 예배 회복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이 책임을 지시고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불안한 것을 바라보지 않는 분이 될 때 예배 회복이 됩니다.

왕권을 회복하십시오.

결국 사울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끊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결국 사울은 왕권을 잃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한 번의 실수로 그를 왕위에서 폐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끊임없이 회개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왕권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하나님이 주신 왕권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는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권세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왕권을 빼앗기면 세상에서 지고 마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우리가 왜 세상에게 집니까? 그것은 왕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어요. 그것은 엄청난 영권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영적인 권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바울은 선포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배에서 내리면 안됩니다. 이 배는 안전하게 도착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지난 밤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지 않던가요? 이것이 교만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왕권입니다. 그래서 왕권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시면서 그 대신에 다른 왕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잃어버리면, 왕권을 잃어버리면 여러분도 세상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되어 버리고 말아요. 저도 그렇고,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어요. 한 마디도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도 못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는 A형 이기 때문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주신 왕 같은 권세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예배 회복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회복이 됩니다. 병도 떠나갑니다. 그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기도하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