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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하나 들 힘만 있어도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1-14 (수) 06:07 조회 : 69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히 11:21

지팡이 하나 들 힘만 있어도 (히 11:21)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매우 경쟁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붉은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죽 냄새가 온 집에 진동을 하고 있을 그때에 그의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들에서 사냥하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래서 에서가 '그 죽 한 그릇만 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야곱이 그것을 그냥 퍼서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때, 야곱이 형에게 말하기를, '형이 가지고 있는 장자 권과 죽 한 그릇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서 자기의 장자 권을 동생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냥 별 볼일 없는 약속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그 말을 할 때 무슨 서로 간에 계약서를 썼겠습니까? 증인이 있습니까? 그냥,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에서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약속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자 권 싸움이 얼마 후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나이 들어서 앞을 볼 수 없는 때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 이삭은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아내 '리브가'는 두 아들이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둘 째 아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어머니 리브가의 믿음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믿음은 잘 기억하는 것

믿음은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열매를 맺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하고 과거에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 할 수 있으면 될텐데, 도적놈처럼 그 장자 권을 가로채려고 하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너무도 조급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어서 둘 째 아들인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했어요. 그때 야곱이 그것을 거부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른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볼 때, 야곱은 부모님의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에서의 눈치를 살펴보니까, 동생 야곱에게 언젠가 큰 해를 가할 것을 알았습니다. 큰 아들 에서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았던 리브가가 야곱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 오빠 집으로 야곱을 보냅니다. 그 때부터 야곱의 삶은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야곱이 고생했던 이유는 그의 마음이 언제나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가 삼촌 집에 가서 삼촌의 딸, 라헬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얻기 위해서 오랜 세월 동안을 힘을 써서 삼촌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첫 날 밤을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라헬의 언니인 '레아'하고 잠을 잔 것입니다. 야곱이 삼촌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기 당한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는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일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또 다시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사랑하는 그 여인과 결혼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식을 낳지 못해요. 라헬이 자식을 낳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자기 몸종을 야곱에게 내어 주면서 자식을 낳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언니 레아는 아이를 잘 낳았어요. 그러면서 아이 낳이 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그것을 거부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전혀 거부하지 않고 선택을 합니다.

야곱은 자기생각으로 가득찬 사람

야곱이라는 사람이 왜, 고통이 심한가를 보십시오. 그가 열 두 아들과 딸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은 언제나 복잡했어요.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형제들끼리 싸우고 아내들끼리 싸워요. 야곱의 젊은 시절은 연애하고 일하고 아이들 낳고 그 사이에서 복잡하게 살다가 젊음의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러면서 나중에 삼촌을 떠나기 전에 자기는 삼촌 때문에 재산을 모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야곱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일했지, 삼촌을 위해서 봉사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일꾼을 고용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직원을 고용하면서 주급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을 하면서 보니, 일이 너무 잘되어서 주인이 부요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주인을 찾아가서 자기 때문에 일이 잘 되고 있는데, 왜? 내게 더 많은 돈을 주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처음에는 일이라도 시켜주면 감사하겠다고 해 놓고 마음이 바뀝니다. 야곱이 삼촌에게 그러한 태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야곱이 이제는 삼촌으로부터 도망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형, 에서가 이십년 만에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날 밤에 야곱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강 건너로 넘겨 버리고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자기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매 순간의 위기를 넘기면 언제나 세속적인 것들을 추구했어요.

야곱이 얍복강을 건넌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야곱이 지난 20년 전에 하나님과 했던 약속의 성취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에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까지 바꿔 주셨습니다. 그 다음날 그렇게 두려워 하던 형 에서와의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야곱은 바로,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런데 야곱이 형에게 말하기를, '형님, 조금 내가 이 곳에 머물다가 뒤 따라 갈테니, 먼저 가십시오.' 그렇게 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십 여년을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디나'가 그 도시를 놀러갔다가 그 곳 추장의 아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말았어요. 그 일로 인해서 야곱의 아들들은 큰 살인극을 벌이게 되었어요. 그로 인해서 야곱은 이전과는 다른 가장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고난이 끝나지 않음

나이가 들면서 고난의 세월을 통해서 사람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고난을 통과하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더 강해지고 더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거지같고 악질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깊은 예배를 통과한 다음부터 그는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께 엎드려 지게 됩니다. 자기의 잘못된 방향을 바꾸려고 애를 써요. 어려움이 찾아오면 서 있다가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져요. 야곱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세상을 버릴 수 없어요. 갈등을 하면서 세상이 좋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모습으로 야곱이 계속 살았어요. 이러한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그러다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립니다. 피가 뭍은 요셉의 옷을 붙들고 오랜 세월을 정신없이 살아갔어요. 그 고난과 환난 속에서 야곱은 자기의 죄악 된 속성을 발견해 가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미쳐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보는데, 야곱은 요셉을 잃고 난 후에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는 점점 눈에 보이는 행복의 조건을 찾았던 삶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룩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이니라.'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고난이 끝나지를 않아요. 불과 같은 시험이 찾아오는 이유가 뭐에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거룩한 흰 옷을 입혀 주시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거룩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을 하고 싶어 합니다. 자식이 보는 앞에서도 거지같은 짓을 하면서도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왜요? 이미 거지같은 생각이 그의 생각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거지같이 살아갑니다. 진짜 돈을 벌려면 예수 믿지 마십시오. 믿지 마시고, 정말 땀을 흘려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십시오. 세상에서도 심는 대로 거둡니다. 세상에서도 그만큼 노력하고 애쓰면 거두어 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을 돈이나 건강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제한적인 행복임을 몰라요. 여러분이 건강을 쫓아가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죽음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자기 몸뚱이만 바라보고, 늙은 몸을 보면서 속상해 합니다. 여자들이 거울 앞에 앉아서 얼굴에 주름이 하나 늘어난 것을 보는 날은 남자들이 코피 터지는 날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병들어요. 그리고 병을 바라보면 죽어요. 돈의 끝이 뭐에요?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돈만 바라보고 자기 자신만 바라보면 악질로 변합니다. 그리고 돈이 많아도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이 없어요. 돈 떨어지면 다 떠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면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조금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인생들이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져 달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해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거룩해 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면, 한 마디로 행복해 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기록된 것이 없어요. 우리의 목표는 거룩에 있습니다. 거룩!!! 주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직전에 세마포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세마포는 '거룩'입니다. 쾌락이 여러분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더 큰 갈증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돈이 많고 건강이 좋아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없어도 우리 속에 부요가 있기 때문에 날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서도 거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불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으나 돈이 부족하고 건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나이가 들어가고 깊은 예배를 통과하면서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상한 고품격의 인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무살 때 예수 믿었다면 서른 살이 되면 달라져야 하지 않습니까? 오십이 되었으면 더 달라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악질 같은 인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마귀 사촌을 닮아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거룩해 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거룩해지는 과정을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의 생활을 통해서 거룩을 만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경건과 거룩은 함께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는 나를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닮아가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고난이 찾아오면, '왜 내가 예수를 믿는데, 이런 일이 있을까?' 하면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믿었는데 갑자기 사업이 안되었습니까? 그것이 축복이라고 보십시오. 그 사업이 잘 되었다면, 당신은 주님을 떠날 수 있는 사람임을 하나님이 알아요. 어떤 사람은 해 주면 해 줄수록 교만해 지고 세속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물을 가져가시면서까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끊임없이 거룩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눈이 믿음의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기술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고난의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고운 가루를 만들어요. 환도 뼈를 부러뜨리시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잠시 떼어 놓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은 상황!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능력의 전혀 없음을 고백하고 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자리까지 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완전히 부수시고 다시 일으켜 주우시는 분입니다. 그 후에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빚어 가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변화된 사람을 보면, 그 독한 인생, 악한 그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유일한 기술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리더십을 훈련 받았다고 사람이 바뀝니까? 그것은 하나의 누더기 같은 옷을 덧입힌 것뿐이지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의지했던 자원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축복입니다. 요셉을 잃고, 얼마 후에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거둘 것이 없으니,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심은 것이 없으니, 거둘 것이 없었습니다. 거둘 것이 없으니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부지런하게 많이 뿌린다고 해도 위에서 비가 내려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거둘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정을 다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이웃 나라 애굽에는 식물이 풍성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식물을 많이 사가지고 왔습니다.

조금만 있어도 만족하는 인생

그런데 창세기 43:1-2절을 보면,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가져온 곡식은 다 먹었습니다. 그 때 야곱이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앙식을 조금 사오라.' 고 합니다. '조금만 더 사와라. 조금' 큰 기근의 상황 속에서 그 가족들 70여명이 먹으려면 아주 많은 것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사오라.'랍니다. 많이 있어야 이 기근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있어도 괜찮다는 거룩한 생각, 믿음의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언제나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뀌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있어도 만족할 수 있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많이 가진 것과 상관없이 만족한 상태가 진정한 복입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요셉의 초청으로 온 가족이 풍성한 땅, 애굽으로 초청 이민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의 세월은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고난의 세월을 통한 야곱의 믿음

오늘, 히브리서 11장 21절의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라고 기록하면서 야곱의 생애를 깊고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을 때의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십시오.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주신 권세는 자식을 축복하는 권세입니다. 그 때,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장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에브라임의 자손으로부터 여호수아와 데보라, 사무엘 같은 사람들이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큰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더 축복하실지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암에 거려서 죽어 가는데, 그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축복하겠다고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목사님이 찾아와서 여러분을 축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오지를 않아요. 여러분의 목사님이 죽어가면서 힘이 없는 상태에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 기도를 받겠습니까? 여러분은 축복 기도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축복 기도를 해야 할 아버지나 목사님에게 그 믿음이 없다면 기도해 줄 수도 없어요. 그런데 야곱을 보면, 죽기 전에 자식을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야곱

21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이 마지막 힘을 다해서 지팡이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몸이 약하지만, 지팡이를 의지해서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요즈음 연세 드신 노인들을 보면, 조금만 아파도 교회에 못 간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못 오겠다고 합니다. 늙었다고 교회에 못 와요? 더욱더 교회에 와서 기도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이 세상은 예배를 소홀이 여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서 예배 시간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에서는 몇 시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여러분이 병원에서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여러분은 예배드리고 싶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로 오면서 지팡이에 온 몸을 싫고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예배를 기다리고 계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라

이 한절 안에 야곱의 일생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자꾸 좋은 쪽으로, 착한 쪽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왜, 고난이 왔다고 해서 삐닥하게 갑니까? 경건의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십시오. 왜, 돈이 없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벌려고 갑니까? 악질로 변하기 전까지는 돈을 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을 부자 되게 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에 백 만불씩 써 보십시오. 지겨워요. 뭐해서 백 만불을 쓸 수 있습니까? 십 만불을 매일 같이 쓰라고 해 보십시오. 쓸데가 없어요. 뭘 사먹으려고 하루에 천불이라도 쓸 수 있습니까? 매일 같이 옷을 바꿔 입으면 행복합니까? 백수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것처럼 힘든 일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발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난이 찾아오면 교회 쪽으로 넘어지십시오. 새벽 기도로 넘어지십시오. 우리가 예배 회복이 뭐에요? 우리가 들것에 실려서 예수님 앞에 내려놓는 자리까지 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것이 회복의 결과요, 회복을 위한 헌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