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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은총을 베풀리라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1-03 (토) 05:17 조회 : 20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삼하 9장 1-8

내가 은총을 베풀리라 (삼하 9장 1-8)

성경에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것을 회복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다시 회복하라고 말씀합니다. 회복이라는 말에는 무언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그 회복의 시간은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이 땅에서 우리가 온전히 회복함으로 천국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천국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만 가면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하는 가르침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많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복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바른 회복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진정한 회복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첫 사람이 하나님께 받았던 축복이 세 가지였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범죄 했을 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첫 번째가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진 생명기업입니다. 이 생명 기업은 하나님이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감격입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의 그 상태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동산에서 거니시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연합되었던 관계가 완전히 깨어져 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토지 기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머물던 땅은 너무도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의 결과로 그들은 그 곳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하는 땅에서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려서 밭을 일구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살면서 이미 그 모든 축복들을 맛보았고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이라고 말씀하실 때, 회복은 이 세 가지 모두를 다시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회복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이외 는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사건 이후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예배의 두 가지 모습과 그 결과를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는 성공적인 예배, 다른 하나는 실패한 예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서만이 기업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 - 하나님과 만남의 회복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그릇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의 제물을 거절하셨습니다. 그가 거절 받은 이유가 예배의 결과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가인은 동생을 시기하고 들에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찾으실 때, 하마터면 하나님의 얼굴을 칠 뻔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면, 가인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다시 예배를 드렸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인에게 나타난 현상은 얼굴빛이 달라 진 것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나님께 반응했습니다. 결국 가인은 그 뒤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낯을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이후로 그의 후손들은 노아 시대가 되었을 때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회복의 길이요, 방법인 예배를 무시했고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그의 동생 아벨은 마음과 뜻과 정성이 모두 담겨진 예배의 태도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인격을 담아 드렸어요. 그리고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증거를 갖게 됩니다.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함께 하고 계시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배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과 같아요. 완전히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가 되어 짐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가 있는 곳에 계십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곳에서 회복되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예배가 성공되어지면 여러분의 삶은 회복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없어요. 우리가 예배는 잘 못 드리면서 다른 것을 잘 한다면 그것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는 회복을 위한 유일한 도구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생명을 얻게 되고, 토지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됩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볼 수 있는 회복의 사상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날 때, 우리는 그분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회복자로 오셔서 온전한 예배를 위한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온전히 성립되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회복의 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십자가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나를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쪼개어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 사건을 우리는 매 예배 시간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인생은 더욱더 견고해 집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이 시작됩니다. 선택의 상황 속에서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천국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됩니다. 내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풀려야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그 순간까지 이 육신의 생활은 아주 중요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회복된 사람의 고백이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남이 회복된 사람, 므비보셋

성경을 보면, 회복된 사람들의 현상에 대해서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자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의 손자요, 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의 형편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뚝발이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죽고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에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입니다. 요나단과 다윗과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처럼 여기는 관계였습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 날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수없는 창을 다윗을 향하여 던졌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기 아들 요나단이 다음의 왕권을 잇게 되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다윗이 더욱더 크고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미워했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생각하고 달랐어요. 요나단의 생각에는 자기가 아니라,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왕권을 주려고 하는데, 아들은 받으려 하지 않아요. 그것을 사울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왕권을 자기 생각으로 아들에게 넘겨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이후로,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도망하게 됩니다. 그 때, 다윗과 요나단과의 마지막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을 합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임을 내가 안다. 그런데 네가 왕이 되었을 때, 나를 생각해서 내 집안을 돌봐 달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언약을 맺고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고, 후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쟁에서 죽게 됩니다. 

그들이 모두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 친구 요나단과의 언약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물어서 사울의 자손 가운데 살아 있는 자를 찾으라고 합니다. 그 때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집안에 남아 있는 자에게 은총을 베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바가 므비보셋을 소개하기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는데 그가 절뚝발이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소개할 때, 그냥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좋잖아요? 시바라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아들에 의해서 도망할 때, 시바라는 사람이 자기 주인의 연약함을 이용해서 거짓으로 재산을 가로채려 했던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자기 주인 므비보셋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다윗이 그에게 주었던 재산을 가로 채려고 했던 일이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그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전혀 주인을 주인으로 모시지를 않아요. 참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소개하는데, '그 사람은 절뚝발이입니다. 그 사람은 다 좋은데..........'하면서 소개를 합니까? 

므비보셋은 절둑발이였습니다. 므비보셋이 언제 절뚝발이가 되었습니까? 전쟁터에서 그의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함께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울의 집안은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의 집안에 한 유모가 어린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넘어져서 그 므비보셋의 두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므비보셋은 다윗이 왕이 되어질때, 기울어져 가는 집안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숨어 지내야 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므비보셋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해서 쫓겨 도망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잘못해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마치 죄인의 모습으로 도망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존재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왕권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땅도 없어요. 사람을 노릇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소망도 없어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모습임을 알 수 있어요. 그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므비보셋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도적질 한 사람이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죄를 짓고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은 완전히 잃어버린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인지 모르고 우리가 므비보셋과 같은 존재인지 모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르게 갈 수가 없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로움과 자기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로 평생을 갇혀서 살아갑니다. 끊임없는 방황의 연속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므비보셋과 같이 태어나서 자기 행위와 상관없이 영적인 절뚝발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우리의 출발지점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면, 매우 기분 나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인할 수 없어요. 우리는 태어나면서 철저하게 죄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까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일까요? 교육학에서 말하기를, 사람이 태어나면서 선하다는 것과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난 것을 믿어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러한 존재라고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까지 인생은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교육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오늘도 좋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교육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요. 므비보셋은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 유모의 품에 안겨서 도망하다가 넘어져서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은총과 은혜를 입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너무도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요 3장) 우리가 왜,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우리가 왜 예수의 피로 거듭나야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까? 우리가 다시 태어남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는 죄악 가운데서 므비보셋과 같은 죽은 개와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세 번 태어납니다. 첫 번째는 어머니 뱃속에서, 두 번째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세 번째는 사명을 향하여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 사명은 회복 자이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우리가 회복 자가 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도망하면서 절뚝발이가 된 후에, 마길의 집 깊은 곳에 들어가서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았어요. 그런데 다윗이 므비보셋의 아버지인 요나단과 했던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어서 므비보셋을 찾는 순간 므비보셋의 인생은 아무런 빛도 하나 없었던 죽음 가운데서 완전한 회복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그 어두움에서 나와서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억하심과 그 은혜로 부르심은 전적인 그분의 부르심입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그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우리도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리게 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 같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현상적으로 볼 때 '내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자기 힘으로 걸어 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당신이 스스로 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을 택하여 부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여기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올 수가 없어요. 이것만 생각하면 너무도 기가 막히고 놀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감격밖에 없어요. 이것이 놀라운 감사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찾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여기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어요. 그분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므비보셋을 찾아내셨고 부르신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숨어 있던 우리를 찾아내신 것입니다. 므비보셋과 우리들은 그분께 찾아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찾아진 존재라는 증거가 헌신된 예배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다가 찾아진 존재가 되어서 지금 주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윗 왕 앞에, 하나님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회복되려고 할 때, 내 인생의 회복 자를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므비보셋이 다른 사람을 찾아나갔다면, 그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므비보셋같은 존재라고 할 때, 우리가 누구에게 회복을 보장 받아야 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회복 자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갈 때부터 이미 그 여인의 몸의 회복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일생동안 괴롭혀 왔던 모든 병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여인이 주님께로 나아갈 때 주님은 그 여인을 부르셨고 기다리고 계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서 4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일어나 본적이 없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앉은뱅이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 사람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그 순간 그 앉은뱅이였던 사람은 그것을 믿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뛰고 걸으면서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찬양과 감사는 회복된 사람의 노래입니다. 말하고 또 말하는 노래입니다. 

삼하 9장 6절을 보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손자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와서 엎드려 절하니,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당신의 종에 불과합니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종에 불과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의 신분, 그의 소유, 그의 처소가 밑바닥 수준입니다. 숨어살던 그의 처소, 그의 소유가 무엇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여러분, 그런데 므비보셋이 자기를 소개하기를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말했어요. 종이 누구입니까? 종은 자기 소유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는 사람이 종입니다. 자기의 소유권을 반납한 사람이 종입니다. 그때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말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가로되,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풀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부르실 때, 그분 앞에 나아가면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말을 생각해 보면, 그분은 므비보셋과 같은 우리에게 충분한 은총을 베풀 수 있는 권세와 능력과 힘이 있는 분입니다. 은총과 은혜라고 하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흐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부르실 때, 감동을 주실 때, 그저 주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교회에 나오고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능력의 그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시간입니다. 예배에서 인생의 승부를 내려고 해 보십시오. 왜요? 하나님을 만나는 그 예배가 회복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 곧 성령의 역사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그릇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아요. 거기에는 가난한 마음이 있어요. 종의 마음이 있어요. 내 형편을 진솔하게 내어 놓고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종 된 마음이 절대적입니다.

예배를 통한 회복(은총) - 기업, 교제, 토지

예배는 신앙생활의 종합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로 묶으면 예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 안에는 모든 회복의 도구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배는 회복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도록 해 보십시오. 이것만 잘되면 그 나머지는 아주 쉬워집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그저 그분 앞에 엎드려 보십시오. 그러면 쉬워집니다. 다윗이 그를 불러서 말합니다. '내가 은총을 베풀리라.' 그 은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토지 기업의 회복

다윗왕이 므비보셋에게 말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다 주겠다는 것은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회복됩니까? 토지 기업입니다. 땅의 기업,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이미 주셨던 기업이 회복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작정하시고 결정하시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 은총 속에는 신분의 회복과 삶을 보장받는 은혜가 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보니, 잃어버렸던 밭을 도로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땅, 하나님이 주셨던 그 땅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이것이 형통입니다. 복입니다.

교제 기업의 회복

8절,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왕과 함께 겸상하면서 왕과 교제하는 관계로 그의 위치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먹는다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관계를 잘 맺어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인맥을 맺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므비보셋은 그 시간 이후로 부터 다윗왕의 식탁에서 왕과 왕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입니다. 그 말을 생각해 보면, 왕자중의 한 사람과 같이 존귀히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제를 말할 때, RELATIONSHIP 이라는 단어는 너무 일반 적이고 기초적인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조금더 진보되어지고 깊이 있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FELLOWSHIP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리가 하나 되었다고 할 때는 COMMUNION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됨'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께 교제는 커뮤니온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 기업의 회복

8절,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와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3절을 보십시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그의 과거 인생은 죽은 개와 같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죽은 개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모든 잃어버린 것을 다 찾았습니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너무도 잃어버려진 존재로 오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은총을 받고 뭐라고 고백합니까? "왕께서 죽은 개와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므비보셋에게 있어서 왕과 함께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은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심각한 열등감에 빠져 있을 때, '바보. 병O'이라고 하면 자기와 연결을 시켜서 화를 내고 싸우려고 덤벼 들어요. '절뚝발이'라고 말하면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회복되어진 므비보셋을 보십시오. 자기 스스로, 그 은혜를 고백하는 표현을 보십시오. 어제까지 그는 자기가 절뚝발이라는 것, 자기 아버지가 미웠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변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으로는 절뚝발이였으나, 그는 더 이상 절뚝발이가 아니었습니다. 자아가 회복되었습니다. 생각이 회복되었습니다. 환경이 회복되었습니다. 

다윗 앞에 나아갔던 그가 상상할 수 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토지와 관계와 생명이 회복된 것입니다. 땅의 것을 먼저 회복시켜 주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와 예배자의 회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회복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화가 날 일이 없어요. 이제 더 이상 어두운 초가집 속에 숨어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는 회복의 노래뿐입니다. 찬양과 감사와 기쁨과 소망뿐입니다. 므비보셋이 다시 생명 보장을 다시 받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분의 은총을 받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우리가 가장 잘 해야 할 일, 가장 큰 관심은 그분 앞에 나아가서 나를 내어 놓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예배를 빼 놓고 다른 것을 잘한다고 잘 난 척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회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까? 이 시간에 아멘으로 반응하고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의 과거에 묶이지 마십시오. 주님이 부르실 때, 그분 앞에 나아가면 모든 것이 회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안 되는 것 같아도, 분명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깔려 있으면, 늦은 비가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 수 없어요. 주님의 때에 적당하게 내려 주시는 비를 기다려 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에 목숨을 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