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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제자의 삶 - 버리는 삶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1-01 (목) 05:23 조회 : 11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마태 6:1-4

참된 제자의 삶 - 버리는 삶 (마태 6:1-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신앙생활 처음 시작할 때, 우리에게 붙여지는 호칭이 있는데 그 호칭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속된 표현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 교인, 그것보다는 성도라는 말이 더 맞는 말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성도’라는 말은 참으로 복된 이름입니다. 그렇게 성도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도의 첫걸음은 예배로부터 시작

성도의 첫걸음, 신앙생활의 첫걸음은 바로 예배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를 통해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이스크에서 늘 가르치는 그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예배의 원리들, 그것이 바로 예배자가 가져야 될 삶의 제일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스크에서 강조하는 다섯 가지 삶의 원리들은, 때로는 율법같이 보일 때도 있고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배자로 살아가는 과정가운데 우리의 몸에 배여지고 익혀지고 우리 몸에서 나타나야 될 축복의 통로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예배가운데 기쁨을 얻고 예배가운데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예배가운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한때는, 오직 한 가지, 예배 잘 드리겠다는 한결같은 믿음과 한결같은 그런 각오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도 결국은 예배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은 영으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과 같이 그렇게 거하실수가 없는 분이시지요. 왜냐하면 우리하고는 격이 다르신 분이시기 때문에 같이 거하실수가 없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거하시기를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성전이고 예배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끄집어내신 것, 그것이 바로 출애굽입니다.

신앙은 방향

이것이 신앙의 방향입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살아가는 인생이 복 있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던 때에, 가나안을 향한 예배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향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내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느냐? 내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면서 가고 있느냐?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성전이 없는 곳에서 성전이 있는 곳으로, 말씀이 없는 곳에서 말씀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정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요, 예배자인 것입니다.

예배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복된 성도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백성을 예배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아니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기적의 사건입니다.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 내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그 기쁨과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우리는 천국까지 가는 것입니다

예배와 교회가 무너진 시대

오늘날 예배가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 무너지는 원인에 가장 중심에 뭐가 있냐 하면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고,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사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미국을 볼 때, 오늘날 미국이 왜 무너져 가고 있습니까? 바로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그것을 회복하자고 하는 것이 바로 예배 회복운동이고, 바로 나이스크 운동(Nyskc Movement)입니다.

예배자로서의 일꾼 된 삶

우리가 성도로서 부지런히 예배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로서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시고, 주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는 나에게 맞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들을 우리에게 맡겨주는 것입니다. 찬양대로, 교사로, 주방봉사, 차량공사, 청소하는 일로 그렇게 해서 같이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같이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일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꾼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뭐냐면 바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참여하는데 열심을 내는 사람이 훌륭한 일꾼입니다.

내가 어떤 구역에 속해있으면 그 구역 예배 들릴 때 구역 성경공부 할 때에 잘 참석하는, 어제 제가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몸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는 실패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클리버랜드에서 여기 결혼 축하하려고 오셔서 같이 예배하기위해서 오셨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백성으로서 가져야 될 자세입니다. 그게 신자의 태도이고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님의 교회에 몸이 예배에 나와 있는 것 몸으로 하나님 앞에 산 제사 드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전부인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없고 은혜 받은 적이 없고, 성령의 뜨거움 성령의 충만함 그건 현상적인 감성적인 그런 체험이 없을지라도 내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내가 예배자로서 예배자리에 와서 예배 자리에 와서 앉아있다고 하는 것이 성공적인 그리스도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오랫동안 예수 믿고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고상한 인품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앞에 나와서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하는 자리에 나와 있지 않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에 예배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성도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신앙의 모범된 선배들의 본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유로운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자유로워서 하나님 앞에 가는데 더욱 어려움이 있는 건지 모릅니다. 이 한국교회가 3,4,50년 전만에도 정말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의 선조들은 예수 믿는 데 아주 특심했습니다. 아주 열심을 다했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십리, 이십 리, 삼십 리, 아니 1마일 2마일 10마일을 걸어서 교회를 간 분들입니다. 눈이 와도 가고 비가와도 가고 날씨가 좋아도 가고 날씨가 나빠도 가고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데 정말 목숨을 걸었던 분들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를 거치고 공산주의 치하를 거치면서 그런 환경가운데서도 그들은 예배 하는데 아주 특심했던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정성 그 마음 그 중심 그 헌신 그들의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한국교회를 축복하셔서 한국이 크게 세계에서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제 한국이 복음이 전해진지 이제 한 120~130년. 여러분 1세기가 지났는데 이제 겨우 1세기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교회를 잊고 벌써 하나님을 잊고 벌써 예배를 잊고 말씀을 잊고 지금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하라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라. 내가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너의 삶이 어떠했는지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전에 어떤 존재로 있었는지, 네가 은혜받기 전, 교회 나오기 전, 성령받기 전에 네가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주님을 만나고 네가 성령 받고, 은혜 받고 네가 믿음가운데서 이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기억을 유혹으로 받고 네가 누리면서 살았던 그때 그것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가지를 동시에 기억해야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상황도 기억해야 되고, 예수 믿고 난 다음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려서도 안 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잊어버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는 기억하라, 기억하라. 얼마나 우리인생들이 부족하고 우리가 얼마나 미련하고 얼마나 우리가 잘 잊어버리고 얼마나 우리가 교만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어느 정도로 명령하셨냐하면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붙이고 다녀라 몸에 붙이고 다녀라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항상 하나님말씀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그 부적 가지고 다니듯이. 부적 아시죠? 부적. 그렇게 옷 끝에 이마에 안에 집에 들어가면 문설주에 곳곳에 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쉐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들아 들으라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일꾼으로서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담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데 그것을 우리가 '제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는 아무나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어떤 각오를 가져야되는지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각오. 그 각오가 없이는 제자의 삶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가 누굽니다 제자는 선생님으로 부터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다.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바로 제자지요. 쉽게 말하면 학생. 학습자. 그래서 그 제자의 의미 3가지를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배운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인 우리는 잘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참 하나님께서 인정받을만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목사님으로부터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잘 배워야합니다. 배우는 것을 잘 배워야 우리가 제자의 삶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잘 배운 후에 우리가 그것을 익혀야합니다. 익힌다는 건 무엇입니까. 그 배운 말씀대로 말씀이 육신 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배운 대로 열심히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내 안에서 잘 길들여진 다음에 우리가 나누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 성도들, 우리같이 주안에서 한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같이 그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그 각오들, 다 너희가 버려야 될 것은 버려야 된다. 취해야 될 것은 취해야 되고, 버려야 될 것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져야 된다, 네가 어떤, 어떤 것들을 버려야 된다. 그런 말씀들을 쭉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이제 그런 각오와 결심이 딱 선 상태에서 그 다음에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서의 제자의 삶

그 가운데 첫날 첫 번째는 빛과 소금. 소금과 빛의 말씀을 통해서 너희는 필요한 존재가 되라. 아무리 각오를 다지고 잘 배우고 익히고 그것을 아주 몸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소화되어도 그것이 교회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것이 필요한 존재로서 우리가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내 생각만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주관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습성이 남아있으면 우리는 그런 제자도의 길을 갈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필요한 사람되어야합니다. 구역에 필요하고 그 부서에 필요하고 그다음에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에게 필요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필요하고 교회에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 한인인 교회에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 우주범적인 교회에 필요한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역사 속 교회의 부흥을 보면, 그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 보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그런 소수의 헌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소수의 헌 신자들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난 것을 2000년 교회사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사를 보면, 루터 한사람 그 칼뱅 한사람, 그 한사람과 함께 동력했던 그 몇 사람들. 그 사람들로 인해서 독일 교회가 유럽교회가 세계교회가 변화를 맞는 것입니다. 그 몇 사람들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그 몇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그 몇 사람 하나님의 역사에 꼭 필요한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이 누가 하겠지’가 아니고 하나님 제가 그 일에 쓰이길 원합니다. 그 일에 저를 사용해주시옵소서. 나는 제가 그 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참 너무나 놀랍습니다. 가정에서는 안 그렇습니까. 가정에서도요 딱 한사람이 성공하면 그 가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성공하면 그 가문이 가정이 일어나는 겁니다. 옛날에도 보면 자녀가 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많은 자녀들이 다 성공하는 것 아니잖습니까. 그 가운데 한 두 사람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 두 사람 성공하면 그 가정이 가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성공한사람이 남은 사람들 다 돌보아야 하잖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가는 사람들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잘 돌봐줘야 합니다. 잘 섬겨줘야 합니다. 잘 이끌어줘야 합니다. 잘 보살펴줘야 할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제자로써 버리는 삶

우리가 제자도에 있어서 우리가 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 시간 내 물질 내 인생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내가 소중하다고 귀하다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하나님 이건 너무 귀한 겁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제가 얼마나 수고했는데 주님 요것만은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하면 주님이 '그게 그렇게 귀하냐? 그럼 너 그럼 그거 가지고 너는 땡이다‘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내가 지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배치될 때에 그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없습니다.아버지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도 굳이 그것이 좋다고 하는데 어떡하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여기 50불짜리 신발이 있고 100불짜리 신발이 있는데 아버지가 보기야 100불짜리 신발이 좋습니다. 아주 얘에게 맞고 가치도 따지면 말입니다. 근데 굳이 50불짜리신발이 좋다고 빡빡 우기는데 어떡하겠습니까. 그래, 후회하지 않을 거지? 너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지? 그래, 그럼 그거 신어라, 50불 손해 보는 거지. 그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도 자라면서 보면 제 고집 때문에 손해본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막내이기 때문에 특히 형님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조금 막내로서 투정도 부리고 고집도 좀 부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셨는데, 내 고집 때문에 그것을 누리지 못했던 기억이 좀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그 이후 그 나중도 다 보증하시고 책임지시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당장 내 손에 있는 것을 놓기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제자도를,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놔야합니다. 놓을 때, 탁 하고 놓을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이 신앙생활 할 때에 잘 놓는 사람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잘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다 채워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에,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순종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탁 있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가 어떤 곳입니까. 그 당시로 말하면 갈대아 우르는 미국의 뉴욕 같은 곳이었습니다. 뉴욕의 맨해튼, 세상의 중심, 모든 세상의 앞서가는 문화가 앞서가는 먹고 마시고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 정말 세계의 중심 아 그곳에 사는데 갑자기 알칸사로 가라는 것입니다. 미국 알칸사 리틀락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쉽게 오실 수 있겠습니까?

쉽게 아멘으로 순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 더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뉴욕 맨허튼에서 그 몇 천만 불짜리 맨션에서 딱 살다가 '얘야 아무래도 네가 좀 옮겨야겠다', '어디로갑니까', '저 알칸사 리틀락이라는곳이 있단다,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가거라.' 하실 때, 여러분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성경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이럴 때에 수많은 물음표가 아브라함의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복종의 시절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브람시절에는 복종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물음표가 있었지만, 떠났습니다. 뜻이 있으시겠지, 믿고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면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왜 그 세계에 중심에서 알칸사 리틀락으로 옮기셨는지, 저 LA에서, 저 애틀랜타에서, 저 뉴욕에서, 저 댈러스에서, 아니 저 멀리 한국 서울에서 왜 알칸사 리틀락으로 보내셨는지 그때 깨달은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순종의 삶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 시절에는 참 그 복종의 삶을 살 때는 실수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부인인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럴 생각이 듭니까? 내가 어떤 위험에 직면했을 때, 나 살겠다고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인 부인을 내 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그만큼 잔머리가 뛰어났던 사람, 그럴 만큼 정말 비겁했던 사람 그게 아브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브람을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 그가 은혜 받고 성령 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는 아브라함이 되서 열국의 아비가 되서 그가 일평생 사는 동안 순종으로 살아서 그가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 후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과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그렇게 그리고 너로 말미암아 모든 열방이 다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는, 참 놀라운,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라.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명예욕을 버려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필요한 존재로 쓰임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에 내 손에 있는 것을 아깝지만, 차마 이것을 놓기 어렵지만, 놨을 때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실 때 우리가 순종 아니 순종이 아니면 복종이라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신령한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누린다, 이것입니다. 이것을 누리게 될 때, 그때에 우리가 또 하나 넘어야할 산이 있는데, 그것을 바로 명예욕이라고 합니다. 그 명예욕을 우리가 넘지 않으면, 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세움을 입고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면 이것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존귀한자가 된다'고 표현합니다. 존귀한 자가 되는 것 입니다. 존귀한자가 되고나면 그담에 잊어버려야 하는 그런 자기 자신이 근원 본래모습을 잊어버리는 그런 위기가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 1

여기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 그리고 제자들, 오늘 특별히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저들은 지금 사람에게 보이려고 저렇게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제자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니 거꾸로 말해서 그렇게 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한다‘ 너무나도 쉽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개념적으로만 설명해서 제자들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2절부터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풀어주신 것입니다. 2절부터 쭉 설명하시는데 구제에 대한 얘기를 하십니다. 구제가 무엇입니까? 구제라고 하는 것은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진 사람이 구제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제하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구제하기가 힘듭니다. 그니까 구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하는 것은, 성공의 위치에 있다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구제 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소유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이 누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깨닫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러면서 너희가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는 것은 그것은 나팔 부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외식이라고 하는 말은 참 이 우리가 그리스도인하고 참 반대되는 말이라고 하는 이 외식이라고 하는 말이네요 위선자라는 말입니다. 이 뜻은 처세술에 능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어적인 이 더 안에 들어가서 보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면, 바로 연기하는 것입니다. 연기자들이 남의 인생을 다시 사는 삶을 보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연예인들의 가정이 조금 위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같이 남의 인생을, 자기인생이 아니고 가상인생을, 소설에 나와 있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다시 사는 사람. 실제 인 것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본 삶의 모습이 상당히 위태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자꾸 나타내는 것 입니다. 연기하는 것. 이 외식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면 그 연기하는 것 이 의미의 뜻이 원어 속에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서 구제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맘에도 없는데 맘에도 없는데 흉내만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구제할 때에는, 너희가 선한 일을 할 때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너희가 교회 일을 할 때에는, 너희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은밀하게 해라.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존전 앞에서 있다는 의식, 생각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유권을 내어드리는 삶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주님이 늘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이것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것,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데 마치 나에게 있는 것 같이 착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착각하면 죽는 것입니다. 절대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인생 소유권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내가 100년을 살든 천년을 살든 성경에 가장 오래 살았던 므두셀라와 같은 자이라도 인생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인생도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러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여러분 우리가 일찍 하나님나라 가는 것에 대해 너무 섭섭해 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인생에 사용권과 관리권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여기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의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도 그 소유권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의 소유권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용권과 관리권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키울 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어른을 노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네가 사용권만 있지, 네가 소유권이 있는 것 같이 너는 내 자식인데 너는 내 아들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떡해야합니까. 순종해야합니다. 복종해야합니다. 부모님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외식하는 자 2


우리가 구제할 때에 우리가 선한일 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우리가 음밀하게 음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갚아주신다, 아버지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자의 그런 그 이 어떤 사람이 제자인가를 얘기할 때에 배운 사람이 제자라고 하는 것이 딱 규정이 돼 있는 것 같이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고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잘 몸에 배서 다른 사람에게 잘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보신다고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약속을 하셔는데 왜 너는 그렇게 주장하느냐고 하는 것 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정말 하나님 앞에서 훈련받고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고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존귀한자로 그렇게 쓰임을 받는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모습들. 여러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섬기는데 특신 했습니까? 얼마나 그들이 주일을 지키고 정말 십일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정말 바리새인들의 삶은 대단한일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자기중심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하는 삶은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렇게 섬기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복된 교회입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겸손하게 섬길 줄 아는 사람들, 이 제자도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이 이미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네가 하는 일에 있어서 다 상을 주시고 축복을 주실 것을 다 약속을 해놓았다, 너의 의의를 자꾸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사람이 예배의 실패자 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가인의 예배가 왜 실패했습니까? 가인은 자기중심적인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 외식하는 자로 하나님 앞 에 슨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로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대로 순종하고 아니 순종이 안 되면 복종이라도 해서 그래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어야 되는데, 자기 열심, 자기중심으로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고, 품지 말아야 될 생각을 품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지 않았을 때에 가인의 낯빛이 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낯빛이 변하는 사람이 바로 외식하는 사람입니다. 외식하는 사람은 자신을 떠벌리는 사람 나팔을 부는 사람, 연기를 하는 사람, 처세술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낯빛이 변합니다.내가 헌금을 얼마나 했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내가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교회 앞에 헌신했는데 목사님께 충성했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낯빛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제자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갈 길이 멉니다. 제자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제자도를 넘어서 군사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도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제자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풍성히 맺고 나면 이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데 그것이 바로 군사입니다. 군사는 교회에서 직분으로 말하면 집사님 권사님 구역장 이런 분들이 군사입니다. 군사는 제자의 도를 넘어서야 하는 분들입니다. 무장해서 나가자 하면 그냥 돌격 앞으로! 그러면 가야되는 것입니다. 저는 못갑니다 하고서 뒤돌아서 가면 그건 안 됩니다. 우리가 군사를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에서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제자도를 통해서 제자로서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복음을 외치는 일이 제자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지상명령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가서 또 다른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 가르치고 그것을 잘 지키고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군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군사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군사를 넘어가면 사도의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은 참 전설 같은 얘기가 됐습니다. 이제 5, 6, 70년 전에 우리의 앞선 믿음의 조상들 정말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 분들은 이제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조만식 장로님의 그 아름다운 관계들, 이제 전부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한 예로 조만식 장로님이 그 교장선생님이 예배시간에 좀 늦지 않았습니까? 늦게 도착하셨습니다. 그 때 주기철 목사님은 ‘장로님 뒤에 서서 예배드리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순종했을까요, 아니요 복종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이 복종하셨어요. 주기철 목사님은 조만식 장로님의 젊은 제자였습니다. 그 제자가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됐습니다. 스승인 조만식 장로님이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장로님 예배시간에 늦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뒤에 서서 예배드리십시오. 아멘 했습니다. 예배 끝날 때까지 뒤에서 예배 드렸습니다. 얼마나 서 계셨을까요. 30분? 1시간? 그 당시 예배는 보통 2시간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두 시간을 서 계셨습니다. 조만식 선생님을 스승님을 뒤에서 딱 서서 겸손하게 그리고 예배 끝나자마자 목사님 앞에 무릎 꿇고 목사님께 잘못을 구했습니다. 제자인 목사님도 같이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렇게 서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부름 받고, 하나님 앞에 일꾼으로 쓰임 받고, 하나님 앞에 제자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께서 전 세계로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에게 받은 하나님 주신 것,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하고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이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진실과 성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잘 감당하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하늘에서의 상급을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그런 축복된 삶을 살게 될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