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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회복이 있습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0-27 (토) 06:58 조회 : 24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룻4:13-15

하나님과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회복이 있습니다 (룻4:13-15)

본문은 오직 홀로된 시모 나오미를 섬기면서 그 시모의 하나님과 백성들께로 나아온 믿음의 좋은 소식에 생명을 걸었던 사람,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 계신 곳으로, 교회가 없는 곳에서 교회로 나아와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경험하는 룻기의 구체적인 축복의 결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룻 4:13-15)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요, 하나님 말씀의 규례와 계명을 순종하는 보아스는 엘리멜렉을 대신하여 나오미와 룻을 돌보며 그의 기업을 되찾아 줍니다. 보아스와 룻은 온 베들레헴 사람들의 축복가운데 성대한 결혼을 거행하고서 ‘오벳’이라는 아들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수 밖에 없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면서, 베들레헴의 여인들이 소리를 높여 베들레헴의 장로들이 축복한 바와 같이 되어진 일들의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나오미와 룻을 회복하신 일에 대해 축복합니다.

진정한 축복은 열매를 보는 것인데,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찬송의 소리는 마라와 같은 쓴 맛 나는 나오미와 룻의 삶이 완전히 새로워 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완전히 무너진 한 가정의 회복을 통해, 그 회복된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회복하는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의 능력을 확인하게 합니다.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계획에 동참하고 쓰임받는 복된 인생의 놀라운 축복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회복의 본질은,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의 은혜

13절 말씀을 보면,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므로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 장면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인데, 본문의 가장 중요한 표현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셨다"는 표현입니다. 룻과 보아스가 아들을 얻었다는 자체보다 회복된 축복의 열매에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성경의 증거입니다. 

특별히 성읍 장로들이 보아스를 축복하며 기도한 기도의 내용에 대한 너무나 구체적이고 세밀한 하나님의 기도응답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로들의 축복 기도와 룻을 향한 보아스의 세밀한 보호와 룻과 나오미의 형편을 돌아보시는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저들의 인생에 허락하시기위해 직접 저들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분이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일하시는 하나님,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모든 것을 마무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이 3가지를 기억할 때, 우리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떤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작과 나중이 되시며, 살아 역사하시며,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내가 뭘 했다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일이라는 고백을 드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복의 축복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Attitude)의 문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의지적으로 ‘여호와께서.... 하셨다’는 주어와 술어가 늘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축복과 실패는 그 사람이 가지는 삶의 자세(Attitude),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으면, 쉽게 소망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면, 우리의 생각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우리 안에 능력과 기쁨, 그리고 감사와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되게 알아가야 하며,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비록 그들 가운데는 물질이 풍성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경우도 있는데, 이 사람들의 교만과 오만함이란 너무나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장로와 집사라는 이름은 그저 명예직에 불과한 것이고, 어느 한구석에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선히 인도하셨다는 고백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를 쉽게 재판하면서, 교회를 주식회사 정도로 착각하는 경우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런 기도가 필요합니까? 결국, 하나님이 빠져버린 스스로의 성공을 말하는 저들의 영혼은 심히 피폐하고 공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과 가문과 주변의 관계의 모든 부분들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프선수중에 폴 에어징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7년 PGA(미국 프로골프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도 PGA 챔피언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림프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진단 이후에,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밤새 악몽, 항암 치료를 하면서 심한 구토를 하면서, 거의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가운데, 고통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재기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병을 극복하고 2000년 하와이에서 열린 PGA 대회에서 6년 만에 다시 우승하게 됩니다. 

그때, 모든 건강과 삶의 전부가 새롭게 은혜가운데 회복된 후 그의 고백이 이러했습니다. “저는 PGA 투어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우승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우승의 행복은 항상 일시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었을 때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문제와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은 '6피트 홀(six feet hole)'에 대한 대답을 발견했습니다.” 에이징거가 말한 '6피트 홀'은 직역하면, '180센티의 구멍'을 뜻하는데 사람의 키를 6피트로 보고 '하나님 없는 공허한 인생 '을 골프와 관련해서 '6피트 홀’'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6피트 홀'의 답은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6피트 홀의 공허한 인생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우리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에 물질적인 것을 아무리 채워 넣어도 그 영혼은 채워지지 않고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과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안에서 회복된 사람이어야 하며, 그의 삶의 가장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주어와 술어를 고백할 수 있는 태도가 된 사람인 것입니다.

회복자의 신앙과 삶에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존재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는 삶에 진정한 회복이 있고, 참된 행복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회복자의 신앙과 삶에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이렇듯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사단에 의해서 세상은 어둡게 되고, 사람은 멸망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그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이루시려고 아들을 보내어 직접 죽이기까지 사랑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드러내십니다. 모든 인생의 역사는 그 선하신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 잘 통제되어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최종 선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저들과 같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순전한 고백을 드릴 수 있다면, 룻과 나오미처럼 저주스러운 삶이 끝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형통하는 일만 남게 될 것입니다. 삶의 여정가운 데, 때로는 우리 눈에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가 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여전히 가정과 사업과 자녀들에 대한 미해결로 남은 문제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마지막 승리를 확신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 이루실 것이다.’는 참된 신앙의 고백만 있다면, 언제나 참된 승리와 행복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약속합니다.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믿고 섬기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에게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삶을 붙잡고, 인도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맡기며,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마라가 나오미의 삶으로 회복

14절과 15절애 나오미와 룻의 구체적인 회복의 모습들이, 배들레헴 여인들의 구체적인 축복의 찬송으로 드러납니다. 마라와 같은 쓴 맛나는 인생살이라고 스스로를 인생을 규정했던 나오미를 축복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찬송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이 룻기에서 가장 최고로 행복한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안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이 회복되어 축복의 열매를 취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복되고 행복한 모습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지금까지 자신의 복을 찾아 떠났던 사람입니다. 행복을 위해 하나님도 버리고, 약속의 땅을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오미라고 불러도 스스로 마라라고 할 만큼, 영육간에 형편없이 초라하고 피폐해진 것입니다. 모압생활 10년동안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강산은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10년 세월에 사람만 변하는 것입니다. 몰라보게 좋아질 수도, 완전히 망한 사람처럼 나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삶은 스스로의 고백처럼 쓴 맛나는 인생이었습니다. 주님과 그의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아! 참 쓰다”라는 고백입니다. 나오미가 거룩한 땅을 떠난지,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한번 시험 들면 10년은 간다고도 말합니다. 실제로 주변의 신실하신 분들중에 10년을 한결같이 주님안에 있었던 분들, 그런 분들이 세상 야망도 없는 사람 같이 보여도 사실은 얼굴빛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빛 되신 하나님, 새벽별 같은 주님, 백합화 같은 주님을 바라보고 사니까,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이 변해 가는 것입니다.

장로의 임직을 위해 투표할 조건으로 무흠7년을 말합니다. 단순한 숫자 7년이 아니라, 한 교회를 섬기고 리더하고자 할 때, 최소한 10년 정도는 무흠하게 교회를 섬겨야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앞장서서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할 때도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별로 방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주님안에서 삶을 살았다는 흔적이 그리스도인의 얼굴에 중요한 겉 표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는 쉽게 함부로 교회를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방황의 끝에는 열매가 없다.

10년 모압의 이민생활은 나오미의 삶을 영육간에 피폐하고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조금의 미래를 측량할 수 없는 불행을 짐 진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빈 마음으로, 마라와 같은 쓴 마음으로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교회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행복이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비록 빈손이었지만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그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은 시작되었고, 룻이 보리이삭을 주울 때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를 만나게 되어지고, 그 보아스를 통해,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잇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역전의 회복을 맛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연은 없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은 대단한 것 같아보여도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날 때, 행복도 함께 떠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비록 빈손이지만 하나님 앞으로, 교회안으로 나아와 십자가를 붙들 때, 주님의 눈앞에 발견되어질 때 언제라도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인들의 축복

모압 여인이었던 룻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고백과 전인격을 드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물질적인 이익보다는 율법에 대해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마침내 두 사람이 율법의 요구대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주시사 아들을 낳습니다. 아들을 낳자 베들레헴의 여인들이 나오미를 찾아와 축복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베들레헴 여인들의 무엇을 축복합니까? 불과 얼마전만 하여도, 이는 나오미가 아니냐?라고 할 만큼 영육간의 피폐함에 놀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술에 놀랄만한 기적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세 가지의 의미 있는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아래 드러난, 온전한 회복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네게 기업무를 자를 없게 아니하셨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그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가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기업을 이어갈 자 : 관계, 토지, 생명의 회복 

여인들은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보아스는 엘리멕렉의 기업과 혈통을 이어줄 자라는 말입니다. 축복의 찬송가운데 나타나는 ‘기업무를 자’는 보아스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태어난 아기로서 기업을 이어갈 자로 해석됩니다. 본래 나오미는 먼 이방 땅에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으므로 멸망한 가문입나다. 그러나, 룻이라는 자부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끝까지 따라와서는 이렇게 "기업을 이어갈 자"를 태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회복의 과정이 있음을 봅니다. 그 순서는 관계의 회복, 기업의 회복, 생명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과의 온전하고 합당한 관계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 우상과의 관계, 세상의 관계가 정리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질 때, 다음으로 하나님은 토지와 물질의 기업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복된 재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앞에서 축복된 관계와 물질 기업이 회복된 사람에게 생명의 회복을 허락하신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을 섬기고 물질도 풍성한 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완전한 축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생명있음으로 나타나는 생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완전한 회복은 반드시 관계, 토지로 상징되는 물질과 생명의 회복을 통한 생기넘치는 삶이 포함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중에 유명한 자 - 하나님의 교회에서 인정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축복합니다. 이 고백은 11절에 장로들이 보아스에게 한 축복과 동일한 축복입니다. 보아스와 그를 통해서 얻은 아들 또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라면, 오늘날 교회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인정받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축복인 것입니다. 진정한 유명함은 오직 교회, 하나님 나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쓰임 받을 때입니다.

이 축복은 자녀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아기의 후손이 다윗에게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인정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행13:22).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 유명한 자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축복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앞에서 믿음의 삶으로 인정받아야 함

하나님께 인정받는 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앞에서 믿음의 삶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바뀌고, 가문과 자손의 운명까지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성경에 믿음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람이 아벨입니다. 비록 아벨은 가인의 손에 죽음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셋을 허락하심으로 자손의 복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히 11장 4절에서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앞에서 의로운 자라 인정을 받았다고 증거 합니다. 사람의 인정도 귀한데,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갚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셋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아벨의 가문은 믿음으로 유명한 후손들을 배출합니다. 창세기 4장 25, 26절에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 비로소 그 땅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합니다. 아벨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이 자손에게 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아벨과 셋의 가문에서 믿음의 영우들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형통과 순종의 사람 이삭, 선민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문을 여는 야곱,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 최고의 법률가 솔로몬, 죽음을 각오하고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 등, 믿음의 영웅들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앞으로 나아오는 자,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예배의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의 삶을 대대손손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 되고, 가문이 잘되고, 영육간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회복자, 노년의 봉양자

15절에서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라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네 생명의 회복자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이 아이가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끊긴 대를 이어주는 생명의 회복자가 될 뿐만 아니라, 늙은 나오미를 봉양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던 나오미에게 생기를 되찾게 해준 아들로서, 죽음과 같은 삶의 고통에서 소망과 기쁨을 회복시켜준 아들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아이는 나오미 개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와 관련된 사역도 감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베레스의 족보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이 아이가 절망적인 이스라엘의 상태를 회복할 회복자이며, 이스라엘을 보살피는 봉양자가 될 것이라는 말로도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아들보다 귀한 자부

본문은 또한 나오미를 축복하면서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나오미를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섬겼던 자부 룻을 통해 태어난 아기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룻의 현숙한 모습을 설명합니다. 이미 보아스는 룻에게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알고 있다"(3:11)고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은 룻과 같이 가정을 세우는 여인을 의미합니다. 룻은 무너진 절망의 가정을 완전히 회복시켰습니다. 어려울 때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나오미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기업무를 자를 만나서 결혼함으로 나오미에게 손자를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이 손자를 통해 나오미의 기업은 대대 무궁토록 번성하는 명문가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잠14:1).” 룻과 같이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이 세워져서, 집안에 다툼이 없고, 주의 은혜로 번성하는 가정이 되는 것만큼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그를 보고 ‘이가 나오미냐(룻1:19).’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됨을 봅니다. 사람들이 서로 그 기업의 축복들을 보며, 그 축복의 증거들을 보면서, 그 축복의 사람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어하며, 입을 열어 그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