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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축복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05-18 (금) 11:11 조회 : 346
설교자 : David Jeon
본문말씀 : 룻4:11-12

회복의 축복 (룻4:11-12)

본문은 보아스와 결혼하면서 이방 모압 여인 룻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쇠락한 교회로 상징되는 나오미가 보아스를 만나면서 새롭게 열려지는 하늘문의 놀라운 축복의 선포가 기록된 것입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사서 돌려주고,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혈통이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맹세하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증인 장로들이 이에 대해 세가지 완전한 회복의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장로들 중의 대표자가 이와 같은 축복을 빌었을 것이며, 다른 장로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따라서 반복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된 축복은 뒤에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4:11-12).

교회의 어른은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함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보아스의 결정에 대해 축복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정황에서 이들을 축복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성문에 모인 백성들과 장로들은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원로와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어른들의 입에서 단순한 기업무르기의 게대결혼도 아니고, 어떻게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려는가? ‘보아스, 당신같은 유력한 사람이 조국을 버리고 떠났다 온 사람들의 집안에게....’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그 축복의 대상이 이방여인 이라거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환경적인 요인보다 더 우선적인 명령임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가정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권한을 주셨음을 증거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였듯이, 우리는 얼마든지 아버지가 자식을 축복하듯,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복을 빌어주고 저주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9절에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강조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원수를 위해서도 축복하라는 말은, 축복할만한 상황과 조건이 되지 못함에도 입술을 열어서 축복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복을 빌어줄 때, 그 복이 상대방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복을 축복하는 당사자에게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제로 우리 입술에서 축복과 저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을 우리가 누릴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종으로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고 축복하였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용서와 축복을 베풀지 않았다면, 아마도 요셉의 가문은 피비린내가 났을 것이지만, 축복하는 가운데 가문과 가정이 살아나고 회복하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오니 용서해 주시라는 최고의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원로들입니다. 원로들일 수록, 어른일수록, 교회에서 앞선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꼬투리를 잡기보다는 칭찬하고 인정하고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른이 가진 경험으로 볼 때,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고서 입이 툭 튀어 나온, ‘툭 튀 인생’ 혹은 ‘투덜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고 많은 모이 중에서 하필 독이 든 씨앗을 찾아서 낼름 낼름 먹는 어리석은 새처럼, 많은 좋은 것이 있음에도 구태여 맛없는 음식을 찾아내서 다른 사람의 기운을 빼기도 하 고,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의 씨앗만 찾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른 행세를 하는 교회치고 조용한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의 어른이고, 원로일수록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과 형편에서 입을 뗄만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결코 다른 사람의 꼬투리 잡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꼬투리 잡으며 남을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이 아니라, 축복의 사람, 은혜를 선포하고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 사랑하고 복을 빌어주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남을 축복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집,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축복

장로들의 축복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가장 먼저 룻을 향한 축복, 그리고 보아스를 향한 축복,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아스의 후손을 향한 축복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룻을 향한 축복은 11절에서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라고 하면서, 아스라엘의 집,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헬은 이스라엘 야곱의 사랑받는 아내였습니다. 특별히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14년간의 종살이 끝에 얻은 아내입니다. 야곱의 순전한 사랑을 받은 라헬은 깊은 사랑은 받았지만 오래도록 장수하지 못하고 일찍 죽음을 맞이합니다. 반면에 레아는 라헬의 언니로서 자식도 많이 낳고 오래 동안 장수도 하였지만 야곱에게 그렇게 큰 사랑을 받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들레헴의 장로들이 레아와 라헬을 언급하는 것은, 보아스의 깊은 사랑도 받고 장수도 하고 자식도 많이 낳는 복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행하는 축복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들의 이 축복은 그냥 단순한 부귀장수의 복을 말하지만은 않습니다. 만약에 그것만 바란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인 열국의 어머니 사라와 같게 하라든지, 순종의 사람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같게 해달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장로들이 구태여 라헬과 레아를 축복의 사람으로 언급한 이유는, 저들의 축복이 의미있게 되는 것은, 레아와 라헬의 축복된 이름앞에 있는 축복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집, 하나님 나라, 교회를 세우는 그런 진정한 복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라는 이삭 한 사람을 낳았습니다.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 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레아와 라헬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을 세우는 12지파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단지 한 가정만을 이루고 마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가 이 축복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복되게 하는 축복의 비젼이 필요

지혜로운 장로들의 축복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가정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때, 여러 가지 건강과 사업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의 우선 순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가는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위해 기도할 때, 단지 한 가정 안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인물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식들을 축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부는 서로 서로 합력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복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청년들가운데는 꿈과 비젼이 이미 정리되고 꺽어져 버린 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저 착하게만 살기 원해요, 아들 딸 낳고 사랑하는 아내와 오손 도손 사는 게 소원이에요. 할 수 있으면 조그마한 카페테리아를 오픈해서 먹고 사는 일에 걱정없이, 주일이면 교회가서 예배드리고 그렇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어요. 별다른 욕심없어요.’ 너무 일찍 달관한 이런 청년들을 보면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주일 날 교회가는 것도, 가족끼리 사랑하면서 오순도순 사는 것도 다 좋은데, 그것은 미니멈에 해당하는 것이다. 네 말대로 한다면 선교는 누가 언제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세우고, 가문을 영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일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반드시 중요하진 않지만, 우리가 주님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걸고 산다고 할 때,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받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하나님께 영광’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주심으로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가슴 뜨겁게 교회를 세울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50, 60대 되신 분들은 꿈과 비젼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어 ABC도 모르고 와도 미국와도 잘먹고 잘 산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가 공부시키고 도와주었는데 겨우 한다는 말이,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냐?’ 라고 마땅한 질책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주제-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 삶의 아주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젊고 젊은 20-30대 청년, 싱싱한 40대임에는 특별히 교회를 향한 충성과 섬김의 은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야 할런지, 어떻게 충성해야 할런지, 그저 좋은 게 좋고 도무지 비젼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엇해야 합니까? 잠을 자지 말고 모포 들고 교회와서 40일 작정기도를 하던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해야 합니다.

교회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가정의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부부가 서로 행복하고, 주일날 한 번 교회 다녀오는 것만 하는 미니멈 인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집, 교회, 복음을 위해서 도전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귀와 장수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세우는 축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이전에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목사님라고 하면 의례히 개척교회를 서너개는 한 것으로 드러나고, 제대로 된 장로님이라고 하면 교회 짓는 다고 평생을 수고하고 당연히 집 팔아서 교회 짓는 줄 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자손들이 복을 받고 그 가문이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룬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책임지기 싫어하는 장로, 바퀴달린 장로와 좋은 임지를 찾아 다니는 철새 목사들로 인해, 형편들은 나아진 듯 보이나 믿음의 명문가문은 찾아볼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의 복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룻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녀인 오벳을 낳아서, 다윗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면서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같이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자녀와 가정과 가문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받는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을 아멘으로 크게 화답할 때, 분명히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유력하고 유명하게 되는 축복.

두 번째로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보아스에 대해서 11절에서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라고 축복을 선포합니다. ‘에브랏’이라는 말은 ‘에브라다’라는 말로서 베들레헴의 별칭입니다. 당시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두 곳이 있었는데, 스불론에 있던 베들레헴과 구별하기 위해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중에는 유명해 진다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거북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흔히 그분들이 하는 말들은, 성경자체가 세상 명예를 멀리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중에 어느 한사람 유명한 사람이 있느냐? 다 무지하고 천한 사람들이 아니었냐는 논리입니다.

이 말씀은 관점의 출발이 틀린 말들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유명하여 지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거나 혹은 자신의 삶의 형편을 위로 삼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은 한량없이 연약하고 부족하여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스스로 잘난 척하여 유명해진 경우를 축복으로 칭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 다윗의 삶을 볼 때도 스스로 조작하듯이 유명해진 경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안에 머무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의 빛, 성령의 빛,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받아라

본문의 유명하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선포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빛, 성령의 빛,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유명하게 될지라’라는 피동적인 의미의 유명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60장 1절부터 3절에 말씀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달리 말하면, 우리 자신에게는 빛나고 드러낼 만한 빛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드러낼 빛도, 빛으로 인해 유명해질 것도 없고, 빛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저 빛 되신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 그 빛으로 나아올 때, 빛이 우리위에 임함으로, 우리가 여호와의 빛을 받아서 온 세상에 환하게 반사하듯이 비추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한 주의 권속들로 인해서 어두운 땅, 세상이 밝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하게 되는 것이요,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가운데, 스스로 유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명하게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사야 51장 2절에는 창 12장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온 아브라함의 삶에 대한 총 결론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사 51:2)

이사야 51장 2절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나이 75세에 받은 하나님의 유명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의 약속이, 창성한 복의 축복으로 성취되었음을 증거 합니다. 결코, 인생은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후회와 탄식함으로 지나는 혈혈단신의 삶이 본질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창조하신 본질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여 창성한 복의 자리, 유명한 자리에 세워지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창성케되는 유명함의 길에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유명해 지지 않았습니다. 우상제작자의 아들이었으나, 빛 되신 하나님이 그를 빛 가운데 불러주시고, 말씀의 빛 성령의 빛으로 채워주셨을 때, 그의 삶은 하나님이 채워주신 축복의 빛으로 비로소 빛나게 된 것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부르시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모압 땅을 뒤로하고 오직 말씀하나 부여잡고 이스라엘 하나님앞으로 나아온 나오미와 룻처럼 그렇게 나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창성한 복으로 채우시고 유명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안에 머물므로 유명하게 됨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멸시하거나 경시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부족하여도 하나님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빛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유명해질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유명하게 하신 여러분이 살아가심으로, 또한 그들이 살아가는 땅이 유명해질 줄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꾸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며 창성한 복으로 유명해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해, 그 땅이 복을 받는 것을 증거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안에 꼭 머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안에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알칸사 주지사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실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를 키우기 위해서 여러 번 이혼과 결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클린턴이지만 어릴 때부터부터 교회생활에 열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리틀락에서 제일 큰 교회가 그가 이곳에서 출석하던 교회입니다. 그에게 육신의 아버지는 없었어도, 빛되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는 그 자리에 나아오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유명하게 키우시고 세계적인 유력한 자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보아스가 베들레헴 베브랏 땅에서 유력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축복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정말 유력하고 유명한 인물이 될 사람이 보아스를 통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유력하게 되고 유명하게 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들레헴 목동 출신인 다윗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우뚝 세운 성군이었으며, 그 계보를 통해 왕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곳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철저하게 순복함으로 말씀과 성령의 빛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5편 4절이 이것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의 뜰에 나아와 살게 하신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고 유명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빛 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그늘아래서 유력하고 유명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레스의 집과 같은 축복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세 번째로 룻을 통해 태어날 후사들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의 축복의 내용들을 보면 약간 축복의 내용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름의 사람들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위로와 축복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여호와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4:12)."

장로들의 축복의 내용에 등장하는 다말이 누구입니까?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인데, 본래 유다의 첫째 아들인 엘의 아내가 됩니다. 그런데 엘은 하나님앞에 악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렇게 되자, 계대결혼의 원리를 따라 다말은 엘의 동생이자 둘째 아들 오난과 혼인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오난은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이름으로 후사를 이어야 했지만, 그는 자기의 씨가 자가 후손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 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그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오난의 이러한 행위도, 하나님앞에 악한 일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그도 엘처럼 죽여 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아버지 유다는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아들인 셀라가 있었지만, 이 아들도 죽을까 싶어서 그는 계속 기다리라고만 했지, 다른 조치들을 취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말은 후손을 세우기 위해 창녀로 분장을 하고서는 시아버지 유다에게로 접근해서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들들의 이름이 바로 베레스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왜 그 많고 많은 사람중에서 베레스의 집과 같게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까? 이것은 베레스의 이름을 통한 위로와 축복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레스는 정상적인 결혼관계가 아닌, 계대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적자와 같은 위치가 아니기에 흠도 있고 비정상적이며 수치스러움에서 출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출발한 베레스이지만 그의 집안과 가문은 어떠했습니까? 번성하였고, 이 베레스가 바로 보아스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무엇을 축복하는 것입니까? 삶의 정황에 부족하고 흠과 결이 많은 시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의 선포를 믿어라는 것입니다. 출신과 배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느냐 아니냐?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흠과 결이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인생역전의 회복을 누림.

룻의 후손도 어떻습니까? 출신 배경만을 따져본다면 베레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만큼 흠과 결이 있는 존재입니다. 룻의 후손도, 다말처럼 끊어질 대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진 것입니다. 부족한 이방여인의 가게에서 시작이 되었고, 룻의 후손도 계대 결혼의 방식을 통해서 태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룻의 집안도 베레스의 집처럼 번성하여 많은 후손을 거느릴 수 있는 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흠과 결이 있어도, 다말처럼 룻처럼 어렵고 보잘 것 없고, 어떤 면에서는 부끄러울 것이 더 많은 배경에서 시작하였어도, 하나님 안에 나아오는 자,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안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 스스로의 노력의 열매가 아닌, 하나님의 강권적인 축복으로 풍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그런 말들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안에도 골품제도가 존재한다는 자조적인 말들이었습니다. 집안에 목사가 열명이면 성골, 장로가 열명이면 진골, 해당사항없이 처음 예수를 믿고 열심하나로 버티는 F1세대는 육두품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들은 육두품에 속한다는 사람들이 기원한 말들이었습니다. 일가 친척가운데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있는 신학생들을 보면, 은연중에 사례나 진로에 상당히 도움을 주면서 여유롭게 신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어떤 신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도 불신 집안의 형제가 찾아와서 훼방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에 큰 짐을 가지고 지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신학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들이었지만, 가끔은 그러한 일들로 인해서 마음의 어려움을 토하는 것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반드시 진골 성골 출신들이 목회를 복되게 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의 도움과 원조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신앙도 목회도 하나님앞에서 열심히 말씀과 성령의 빛을 비추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명문가문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한 모압의 이방여인이었으며, 거의 알거지와 같은 신세로 이삭줍던 여인이었으며, 의지할 바라고는 홀 시어머밖에 없었던, 계대결혼의 우선순위에서 한번 밀린 경험도 있는 사람이 룻이었습니다. 고향땅으로 돌아가서 모압의 우상들을 섬기다가 인생을 끝낼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의 몸을 통해서 자식을 본다고 한들 그렇게 큰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육두품보다 더 못한 인물이 룻입니다.

그러나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 죽어 장사지낸 바 되는 그곳에 함께 장사될 것이라는 어쩌든지 하나님의 교회가 있는 곳으로 결단하고 따라 붙었을 때, 그의 인생은 도저히 룻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는 찬란한 기적 같은 인생역전의 회복을 체험하면서,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맺음말

베들레헴 장로들의 룻과 보아스와 그의 후손들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축복을 선포하였습니다. 룻을 위해서는 부귀와 장수의 복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영광스런 축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보아스에게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가운데 룻과 혼인함으로서 유력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도록 축복하였습니다. 룻의 후손에 대해서는, 끊어질 뻔했던 후손이 베레스의 집과 같이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매인 바 됨으로서, 번성하기를 축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적으로 보면 완전히 끊어져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한 사람의 가정이 하나님과 인생의 공동작업에 의해서 축복받는 명문의 명문가문을 세워가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와 사랑과 축복을 베푸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환경을 핑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짝 붙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섭리의 손길을 통해, 어찌보면 이방인을 원수처럼 대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축복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