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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회복, 세상의 회복 – 조국, 교회, 부흥 -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1-08-18 (수) 17:05 조회 : 103

예배의 회복, 세상의 회복 조국, 교회, 부흥 -

 

한국 방문중에, 서울 부산 대구 제주를 오가며 교회를 방문하고 말씀을 전하며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형편가운데 있다. 한국 방문을 지혜롭게 하려면 무엇보다 기도가 정말 많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연락 오는 대로, 시간 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보면, 모두가 귀하고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결국은 열매 없는 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혹은 짬 나는 대로 어머니집 근처에 있는 조용한 커피와 도서관을 겸한 곳에서, 먼저 말씀을 보고 한국의 일정 재점검,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불편함인 밤낮이 다른 두곳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 불필요한 일과 필요한 일, 꼭 해야할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을 정리하며 먼저 지혜를 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여도, 지나보면 속절없이 빨리 지나가는 시간중에 아쉬움만 남는 것을 본다. 그렇게 빨리 지나 버린 한국에서의 두 주간 동안, 지혜의 우매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보고 깨닫게 하셨다. 분주한 일정에서도 주님은 볼 것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면서, 계속 말씀하시는 음성을 보고 듣게 되었다. 금번 글 순서에서는 이렇게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경험한 일들과 몇가지 감상들을 전하고자 한다.

 

한국방문기

두주전, 미국에서 출국 비행기가 월요일 아침이어서, 한국에서 요구하는 72시간전 PCR 검사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는 14시간 동안 그동안 밀린 숙제같은 일들을 정리하며, 주는 밥 먹고 간식 먹고 하다보니, 잠시 제대로 눈 붙일 틈도 없이 인천에 도착하게 되었다. 편리해진 세상탓에 하늘 공중에서도 인터넷을 켜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편리하다고 인간에게 다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비행기에 내려서부터는 마치 전쟁 포로처럼(?) 쭉 길게 늘어서서 거의 두시간 가까이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방역에 아주 지나치게 열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보다 더 촘촘해진 입국심사의 과정들을 지났다. 이것 저것, 자가격리 앱을 다운 받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겨우 통과를 하였는데, 이제 연세드신 분들이 외국을 다녀오며 이런 과정을 지나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신고를 하고 나오면, 백신 격리 면제자에게 주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주소지 근처의 보건소에서 24시간안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숙소를 떠나면 위치추적을 당한다는 경고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다음날 말씀을 전할 강남에 있는 교회 근처 보건소에서 출국전에 받은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미국과 달리 굉장히 깊이 세게 쑤시는 데 상당히 아팠다. 짜증스런 마음이 찾아오는 순간, 화살기도로 은혜의 마음을 붙들었다. ‘그렇지. 소가 일을 하려면 코뚜레를 뚫어야 하듯이, 주의 종이 이제 한국사역을 할때도 이렇게 코뚜레를 뚫어서 주인의 통제를 잘 받아야지..’ 이런 나름의 기특한 생각도 했다. 생각이 그러다보니, 깊이 잘 뚫는 간호사를 향해서도 오히려 크게 감사하며 인사를 했다. 역시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안내문을 읽어 보니, 앞으로 6일 후에 다시 검사를, 출국 사흘전에 증상에 상관없이 다시 검사하고 증명서 소지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데, 순간 마음을 놓칠뻔 했다. 감사와 기쁨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이야 참으면 되지만, 다른 한가지가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조금 오해한 정보로 인해, 24시간 이내 검사결과가 나오기 까지 꼼짝하지 말라는데, 당장 내일 아침 11시에 설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확인도 없이 숙소를 이탈해도 문제, 음성이라는 확인 없이 설교를 한다 해도 피해를 줄 수 있고, 또 설교 약속에 대한 책임도 면할 수 없어서 무척 고통스럽게 기도했다. 담임목사님은 당사자인 나보다 더 여유롭게 오히려 큰 믿음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답해 주었다. 결국, 그 믿음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예배할 수 있도록 완전한 격리면제의 자유를 주시는데, 믿음없는 종은 고국에서의 첫날 밤을 밤새 자지 못하고 기도하며 지새우게 되었다. 결국, 설교하기 한시간 반 전에 음성확인 문자를 받게 하셨다. 깨닫는 바, 하나님의 일은 늘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더 많이 기도하게 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코로나와 조국교회

서울의 몇 교회에서 설교을 하였는데, 교회들은 사이즈를 떠나 무조건 19명만 참석하게 되어 있어서, 이천명이 모이는 교회에서도 필수요원만 참여하면서 혼자 할렐루야와 아멘을 반복하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성령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마음을 붙잡아 주셨지만, 예전처럼 마음껏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이 주의 교회에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방문한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를 일주일에 오전 오후 14번으로 나누어 단 한명이라도 더 예배에 올 수 있도록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목회자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영적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대구에서도, 부산과 창원에서도 방역의 강도와 느낌이 조금 다른 형태의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전하였다. 비록 예전의 그 흥왕하던 예배의 부흥을 맛보던 때와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 임하는 군사와 같은 예배에 대한 간절함과 긴장감들이 있었다. 참 좋았다. 어떤 형편,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들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별히 한국에서 예배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부산 세계로 교회에서의 예배와 말씀증거를 통해서는 가슴뭉클한 감동이 찾아왔다. 세계로 교회는 예배의 제한을 정면으로 대척하며, 지킬 것을 지키며 예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에게까지 나타나 있는 것을 보았다. 늦은 오후시간에도 아이들 조차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띄워 앉으며 예배를 드리는 데, 정말 감동이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예배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예배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 하는 것을 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데 가슴 뭉클한 감격과 하나님께서 저들의 사모하는 이 예배를 정말 기뻐 받으시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밀려오면서 눈물샘이 터지는 감격을 맛보기도 하였다.

 

마켓과 지하철, 음악콘서트 장에는 경제활동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원제한을 불필요하게 하지를 않는데, 교회는 누가 왔는지도 분명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가는 데도 교회를 물리적인 숫자로 제한하는 것을 대척하며 예배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저들의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때 성령께서 음성을 주셨다. ‘하나님 대한민국에 이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돌아보시사, 예배를 방해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이 정권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긍휼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시고, 마침내 하나님앞에 항복하는 복된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예레미야의 마음

한국에서 만난 어떤 이들은 과격하게 말을 한다. 교회를 대적하고 예배를 방해하는 이 정권의 결말이 궁금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공감하는 마음에 아주 컸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이럴 수가 있겠는가?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주시는데, 순간 회개의 마음을 함께 주셨다. ‘부족한 종아, 그렇게 하나님이 치시는 이 나라는 대체 누구의 나라이며, 누구의 조국이며, 누구의 땅이더냐?’하는 음성이었다. 결국 하나님이 치시고 고통을 주신다면 이를 달게 받을 나라가 바로 내 나라 내 조국 내 민족이기에 그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었다. 그 음성 앞에 곧장 기도의 제목을 바꾸며 아뢰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저들을 용서하시고 속히 돌이켜 주옵소서!’ 미워하는 마음이 이렇게 올라오던 나에게 주님은, 이들이 당할 고통이 내 나라 내 민족의 고통임을 알도록 하셔서, 오직 더욱 주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돌이키시는 은혜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회복, 예배

나라와 민족의 회복은 오직 예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성경의 열왕기의 역사를 보면, 나라와 민족, 개인과 가정의 흥망성쇠도 한가지 이유 뿐이다. 예배의 실패와 성공이다. 이것을 가로막고, 이것을 방해하면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한 것이 되고 만다. 모든 복이 하나님의 교회와 성전, 하늘의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 성전에 모든 복이 있다. 주의 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만나주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살고,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회복되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신앙생활은 반드시 교회생활과 예배생활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면 어디에서도 복을 받을 수 없다. 이 땅의 수많은 민족들이 잘살아 보기 위해 자신들의 신을 세우고 노력하며 빌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러시아도 예전에는 하나님을 믿던 나라였으며 다른 종교가 없었다. 그러나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으로 공산화가 되었고, 교회와 예배가 폐하여지며 하나님을 떠나자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 주려 죽는 피폐한 땅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을 우상화하고 있는 북한을 보라. 하나님을 떠난 민족이 얼마나 불쌍해지는가를 똑똑히 보게 된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어 잔인하게 처형되는 것을 보며, 백성들은 그 비참한 굶주림에 말을 잃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없었음에도 굶주려 죽는지 모른다. 영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고 예배가 무너지자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보라. 영국에서 집회를 하고자하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 시작해야 한다. 저들의 교회는 박물 명소가 되었는데, 돈을 벌기는커녕 교회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예배하지 않음으로 돈에 굶주려가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예배가 무너지면, 창세로부터 정하신 교제와 소통이 단절되었기에 답답한 인생을 살게 되고, 삶에 복이 없다. 그러나 예배에 승리하면 모든 것을 넉넉하게 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 마지막 종말시대를 살면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잘 듣고 알기 위해 예배를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과 목회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소통, 교통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능력이고 권세이다. 예배가운데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회에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