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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현실을 이기는 힘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1-08-18 (수) 16:59 조회 : 110

세상의 현실을 이기는 힘 -현실, 은혜, 회복-

 

코로나 목회와 현실

성도들은 세상의 현실에 대해 목회자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하늘 위 무형교회 성도들을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단돈 1불을 벌기 위해서 생명의 위협도 감수하는 그런 현실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이민 목회자들에게는 정말 합당치 않은 말이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사막 광야를 리더하며 나아가야 하듯이, 현실의 목회자도 사막광야같은 이민생활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 하고 선문답 하듯, 학원등록 학생들 강좌 개설하듯이, 그런 목회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성도들은 쉽게 말을 내어 뱉는다. ‘목사님의 설교는 현실적이지 않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눈앞에 있는데, 신앙이 왠 말인가? 일단 먹고 살아야 교회도 올 것 아닌가? 목사님, 왜 이러세요.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합니다. 내 버려 두세요. 이렇게 살다 죽을래요(?) 등등이 대표적인 말들이다. 그런데 실상은 먹고 살겠다고 주님과 교회를 등지고 세상에 전념하든 사람들을 보면, 먹고 살지도 못하고 패망의 지름길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의 길을 벗어난 삶의 방향들에 대해, 불을 보듯 분명한 결론을 말해 보지만, 자신의 영혼을 맡겨야 하는 목회자의 권고가, 흘러가는 세상 드라마보다 영향력이 없어 보인다.

 

인근 도시에 참 사랑이 많으신 목사님이 계신다. 백신 접종을 하기 전, 코로나가 아주 득세하던 때에도, 음식을 만들어 문고리 심방을 하면서 백신이 나오면 모든 상황들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그 기대감속에서 주일날 대면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돌아 보기 위해 열심히 심방을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이런 목회자 부부의 심정도 모른 채, 코로나 시기에 집을 방문한다며 타박을 받기도 하고, 에티켓도 모르는 목사가 있는 교회는 안나가겠다는 말을 하기도 해서, 마음 약한 목사님 부부의 마음이 절벽같아 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목사님은 꾹 참고 주님의 이름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신을 맞은 이후에도 성도들의 움직임이 요지부동일 뿐 아니라, 예배가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동안의 온라인 예배의 그 편리함이 몸을 땅바닥에 붙여 버리고 만 것이다. 몸이 땅에 붙어 있으니, 영혼도 절로 육신에 갇혀 버린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형편에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그 도시에는 도넛샵 비즈니스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직간접적으로 성도들의 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위기감을 토로한다. 영업 특성상 자정부터 일을 하고서 오전에 문을 닫고 오후 예배라도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비록 졸리는 형편 가운데서도, 오후에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몸의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그나마 받는 은혜가 있어서, 힘든 이민생활을 지탱해 왔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정부터 정오까지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교회가 오픈되어 예배드릴 시간이 되어도, 코로나때에 드리던 온라인 예배의 추억이 몸을 땅바닥에 주저 앉혀버리더라는 것이다. 성도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육신의 힘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영으로서 육을 극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목회자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면서, 그럼에도 살기위해서는 교회를 나오셔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몸의 편안함에서 탈출

최근 인근 대도시 교회의 목사님의 전언을 들어보면, 위에 언급한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교회마다 불어닥쳐 상당한 위기감을 가진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 가지는 온라인 예배가 가져온 육신의 편안함을 통해, 교회와 예배를 통해 맛볼 수 있는 영적 평안함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익숙해진 몸의 편안함이 주를 위한 봉사와 헌신을 가로막는 요소가 되어, 작은 교회를 탈출하여 대형 교회로의 편안한 이동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더라는 사실이었다. 들으면서 하는 느낌을 가졌다. 마지막 종말시대에 참 신앙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교회, 대형교회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성도들 가운데 1년반동안의 그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잠수하여도 표시나지 않는, 큰 잠수정같은 교회를 향해 나아 간다고 할 때, 과연 이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할지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자기의 영혼에 합당하게 주신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교회 목회자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대략적인 기준이 되는 매끈한 설교와 화려한 이력의 레코드가 없어도,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위해 진심어린 기도와 목자의 리더쉽을 가진 목회자라면, 굳이 교회를 떠날 이유가 있을까 생각된다.

 

은혜를 아는 참 예배자

목사님과의 오랜 시간 대화가운데 작은 결론을 맺으며 마무리를 했다. 다시 목회를 잘 돌아보고, 아무리 험한 세상의 어려움들이 찾아와도 요동하지 않을 신앙, 삶의 문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여도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마땅한 예배자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함께 공감하게 되었다. 약하여 요동치는 성도들을 탓하기 전에, 강하고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잘 양육하지 못한 우리 자신이 회개의 공통제목을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방법론으로 안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이야기였다.

 

그 본질이 무엇인가? 특별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예배이다. 예배에 온전한 회복만이 교회가 강성하여지고, 성도들은 그 주님의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참되게 살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신앙의 종합이다. 그래서 예배가 잘못되면 인생의 목적, 교회의 목적 자체가 의미 없어지게 될 따름이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생명력이 있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예배가 침체되는 순간 교회는 침체되고 나라와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은혜의 통로가 무너져 내리게 됨으로, 마치 뿌리가 뽑혀진 나무처럼 성도들은 떠도는 부초(浮草)같은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영혼을 주님앞에 뿌리내리고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은 예배를 다시 세우는 것 외에 길이 없다. 실제로 예배가 소중히 여겨지고, 예배가 바로 드려지는 곳에는 교회가 살아나는 것 뿐 아니라 나라와 가정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영혼이 막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 은혜의 통로, 축복의 도구가 예배이다. 예배를 빼놓고 신앙을 말할 수 없고, 살아 있는 예배가 없이 전도가 있을 수 없고 선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와 가정, 성도의 영적부흥과 신앙의 성숙은 예배를 제하고는 논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시 전쟁준비

결국,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신앙의 현실들앞에서 픽픽 쓰러져가는 영혼들을 보노라면, 평화시에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쓴 열매가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데,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인데 많은 부분 지나치게 성도들의 형편에 초점을 맞추어 이벤트식 목회를 하다보니, 신앙의 내성들이 약해져서 죽고사는 문제도 아닌 먹고 사는 문제와 지나친 건강의 염려증 등으로 아주 손쉽게 사단의 밥이 되어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현실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뜻보다, 성도들의 필요와 형편을 채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과연 얼마나 주일성수의 신앙, 새벽기도의 강력한 영성, 철저한 십일조 생활등에 대해 얼마나 강조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하였던가? 주일날에도 목회자와 당회원들이 함께 골프 투어를 하고, 이를 두고 뭐라고 하면 찻집에 앉아 커피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하지 않았던가? 기가 막힐 일이다.

 

결국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고, 예배는 경시되어 버렸다. 예배의 경시는,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를 포함한 너무나 귀한 기도의 시간들을 잊어버리게 하였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마스크 너머로 따스한 입김에 점점 더 힘찬 찬양의 소리도 잊혀져 간다. 코로나로 인해 학습된 기기문명의 세계는, 성경과 다양한 기독교 문화활동을 생각없는 손가락 운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예배시 세상의 오락과 영상을 보던 같은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온다고 할 때, 한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을 같이 뱉어내는 참으로 신앙교육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일이 됨을 본다. 이에 덧붙여 말씀시간도 너무 축소되어 간다. 30-40분 이상 설교하는 예가 잘 없는, 아주 드문 것으로 파악된다.

 

회복의 방향

예배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던 순교자들의 예배 정신 위에 교회는 세워져왔다. 시대적인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은 방법으로 수세기 수천년을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좋은 예배를 찾으신다. 어떤 급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예배를 찾는 것은 성도만이 아니라 예배의 주관자요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가장 원하시는 일이다.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예배가 되면 교회가 살아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가 살아나면 세상이 바뀌고 변화된다. 교회가 세상의 대안이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교회를 살리는 예배를 회복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예배가 새로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나야 한다. 이러한 언설은 또다른 질문으로 돌아온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모두가 공감하지만, 과연 어떻게(how to)?”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주저 말고 기억하며 소리치며 붙잡아야 한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붙드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4;24-26)는 말씀이다. 말씀의 신실한 선포와 성령의 임재가운데 예배의 회복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성경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 그때 그 성경의 말씀에 응답하신 그대로, 코로나 시대를 지나 변종의 시대를 지나고 더한 것이 온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런 교회 그런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회복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