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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회복의 사명 -기본적인 헌신과 충성, 교회와 예배-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0-10-15 (목) 01:41 조회 : 170

세상회복의 사명 -기본적인 헌신과 충성, 교회와 예배-

 

세상을 회복시키는 사명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한 사명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구원의 감격과 더불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슴 뜨거운 비젼을 함께 주셨다. 그러므로 사명을 복되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명령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모습 속에 예수님 닮은 사명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위해 살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이들을 핍박하고 해를 입히는 자로 살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다 내어주는 모범을 따라 살았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겸손과 눈물로 자신을 죽이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삶을 살리는 사명의 길을 간 것이다.

 

이처럼 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감격속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사명의 완전한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시면서 더욱 명확하게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셨다. 명령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이 사명은 성령을 따라 이 땅, 세상을 회복시키라는 말씀이다. 열방을 다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우는 일이다. 복음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이 사명을 주신 배경을 생각하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예비하신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시편1226절 말씀은 교회와 예배를 사랑하는 이들은 반드시 암송해야 될 말씀이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이 예루살렘이 도대체 어디기에 이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고 사랑하면 형통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시의 부제에서 힌트를 얻는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렇게 되어 있다. 앞선 121편에도 같은 부제가 붙어 있다. 12절을 읽어보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데 도움이 찾아온다고 말씀하신다. 이 산이 도대체 무슨 산인가? 시온산이다. 시온이라는 말과 예루살렘은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사도행전 18절을 찾아보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엄청나게 중요한 지상명령을 언급하는 말씀이다. 성령받고 권능받고 증인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대 전도와 선교의 사명앞에 이보다 더 중요한 한 구절말씀을 지나치면 안된다. 14절의 말씀이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이 등장한다. 예루살렘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 최근에 어떤 분쟁이 있던 그런 지명 자체, 그런 지역적인 예루살렘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는 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저들이 예루살렘 어디를 떠나지 말라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디로 갔는가? 마가의 다락방으로 갔다.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가? 성령이 임하기까지, 성령이 임하기까지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침내 성령이 임했다. 성령이 임한 것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했던 그 장소가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또 그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받은 베드로가 삶의 변화를 나타내게 되었다. 변화된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데 삼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났다. 그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받고 변화된 사람들이 교회를 세웠다.


마가의 다락방이 무엇인가? 이곳에서 그들은 말씀을 받았다. 성령을 받았다. 말씀과 성령안에서 사람이 변화되었다. 오늘날 성령받고 말씀받고 삶이 변화되는 곳이 어디인가? 기도원인가? 멋진 치유센타인가? 기도원도 될 수 있고, 수양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기본이 분명해야 되는데, 이곳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다. 마가의 다락방, 말씀받고 성령받고, 인생이 변화를 맞이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소는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그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을 떠나지 마라, 주의 성전을 떠나지 마라, 그럴 때 너희가 성령받고 권능받고 증인된 삶을 산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이상한 신앙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명을 위해 기본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할 곳이 어디인가?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일들 보다도더 귀하게 쓰임받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지가 어디인가? 하나님의 교회이다.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출발할 때, 세상앞에 온전한 사명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 구하고 준비할 것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읽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지금 내가 섬기는 교회를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이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아멘! 이 아멘이 분명할 때, 비로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맛보며 주의 사명앞에 힘있게 쓰임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가? 구제 선교 교육 많은 일들이 주요 사역이지만, 무엇보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죄인들을 죄 없으신 주님의 보혈로 용서하시고, 만나주시기 위하여 세운 천국을 맛보아 경험하는 천국의 분점같은 곳이 교회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먼저 교회를 사랑하고, 먼저 교회의 평안을 구하고, 먼저 교회를 중심해서 일들을 해야 한다.

 

그렇게 예배에 성공한 성도, 예배가 회복된 성도, 그래서 성령충만한 성도,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복음전도의 사명을 깨달아 알며, 헌신하며 세상을 변혁케하는 열매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명앞에 순전한 참 성도들을 보면, 저들은 예배와 교회사랑이 회복된 이들임을 보게 된다. 또한 하나님과 교회와 예배를 그렇게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면, 항상 주님이 말씀하신 이웃사랑의 실천인 구제와 선교의 일들 앞에 최선의 열심과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예배회복은 사명의 회복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교회와 예배가 회복되어 전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주의 복음전도의 사명앞에, 영혼구원의 소원앞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사명앞에,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시는 주의 명령앞에, 결코 이를 무시하고 살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배가 회복되어 선교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전도하는 교회로 사명감당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참되고 온전한 성도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세상을 복음과 사랑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깨우기 전에

세상을 깨우러 나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선(母船)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쪽배를 저어 바다 한가운데 나아갔기 때문이다. 삶의 회복, 세상의 회복은 그의 영혼의 회복없이는 구름같은 이야기이다. 우리 삶의 모선이 어디인가? 칼빈이 어머니라고 말한 교회와 예배이다. 교회와 예배생활이 분명할 때, 신앙생활이 온전하다 말하고, 신앙생활이 온전한 사람이 주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신 사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견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면서, 성경은 읽고 배운다고 말하면서, 꼭 교회에 갈필요가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속옷차림으로 침대에 편안히 누워, 전화기에서 쉽게 찾는 자기 기호에 맞는 설교를 듣는 것으로 예배드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울의 대형교회 주변의 커피숍에 주일 11시가 되면 성경을 펴두고 홀로 예배족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봉사와 헌금 등 모든 의무에서 자유함을 누린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예전에는 기도의 손을 모았는데, 이제는 구글님에게 물어보면 되니, 기도할 이유들도 찾기 어렵다. 교회가지 않아도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꼭 교회갈 필요가 있는가?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더욱 쎄게 말한다. ‘꼭 교회 갈 필요가 있는가?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면, 그 모임이 교회아닌가?’ 그런 말들이 교회를 향해 가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사단의 음성으로 작동한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정신이나 영혼이 홀로 움직일 수가 있는가? 귀신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 교회를 향해 나아가서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이르러 자신을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이 예배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장소로서의 교회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다. 선교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교육은 교회를 사랑하는 예배자를 훈련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를 형통케 하시고, 예배자를 만나주시며 그를 축복하신다. 열왕기의 역사들이 이를 증거 한다. 시편의 많은 시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한 왕들의 역사는 참으로 번성했다. 반면, 번성한 나라를 부모에게 물려받아도 우상을 숭배하고 예배를 실패한 이들의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 개인과 가정과 가문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깨우기 전에 잠든 영혼을 깨워야 한다. 교회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예배에 깨어 있어야 한다. 마음에 참된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예배로 인해, 영혼육이 깨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한 사랑으로 그 마음을 확정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자가 되기 원하는가? 먼저 새벽을 깨워라. 코로나가 가장 잠잠하고 안전할 때가 새벽이 아닌가! 눈만 뜨면 먼저 교회를 향해 나아가야한다. 틈만 나면 교회가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교회로 모여야 한다. 그렇게 교회를 중심하여 살아갈 때, 그에게 은혜의 힘과 능력이 공급되고 마침내 세상을 이기는 참된 제자, 거룩한 성도가 될 것이다. 그러한 성도들의 헌신가운데 세상은 변화되고, 주의 영광은 온 세계위에 찬란하게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