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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 보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9-11-22 (금) 06:06 조회 : 15

배우는 것 보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사명 혹은 소명이라고 합니다. 목회자에게는 이것이 목회철학이 되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신앙생활의 방향이 됩니다.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행할 때 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 가지는 기쁨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병장수, 자녀출세, 노후염려가 없으면 살아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가지에 대한 자랑이 많을수록 성공한 인생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한가지가 없으면, 그 인생은 어리석은 바보가 됨을 경고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에게 말씀하신 네 영혼의 주인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잘됨이 형통과 강건함의 전제가 됨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그 자체가 바보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를 쫓던 많은 무리들의 마음에는 각자 원하는 소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원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본질적인 뜻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먹고 마시는 것과 또한 이를 유지연장할 수 있는 몸의 강건함에 마음을 두고 따랐던 것입니다. 제자가 아닌, 그저 무리(Just gathering)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기도 하며,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38년된 병자가 나음을 입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주님의 손이 기적의 역사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삶의 문제가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는 될지라도,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주님이 병을 낫게 해 주신 간증이 아무리 귀하여도, 어차피 나이 들면 모두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위암이라는 병을 고쳤다고, 다른 부위에는 종양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실제, 너무 건강하고 문제가 없음으로 주님 나라와 인생을 생각하기가 더 어려운 경우도 봅니다. 몸이 아프면, 그 아픔의 시간들을 통해서 죽음과 인생의 유한함을 생각합니다. 생명은 재천이라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아 알고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그 질병의 고난을 통과할 때였으며, 그때를 자기 인생 죄고의 간증 시간으로 삼는 것을 봅니다.

 

예전에 어느 집회에서 안경을 벗어던지고, 그 안경을 밟아 버리고 이제 눈이 좋아졌다고 외치는 부흥강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연세드신 어르신들에게 지팡이를 버리고 꼿곳하게 한번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 노안이 찾아오고, 눈이 침침하여지고, 또 허리가 굽어지는 것이 자연스런 노화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굳이, 안경을 벗어야 될 것이 목적일 필요도 없고, 지팡이 짚은 노인의 연로함이 추하고 안타까울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건강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던 그렇지 않던 예수믿고 천국 가는 것을 확신하며, 주님 주신 생명의 시간동안 주님 맡겨주신 교회와 복음을 위해 최선의 헌신과 충성을 다하며 사는 그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삶의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주님을 찾아왔지만, 주님의 뜻은 모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생명의 도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셨습니다. 호기심처럼 병 나음의 현상들이 있었지만, 주님은 그런 기회를 사용하여서라도, 죄인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자신의 본질을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현상에 집중하면 교회가 아름답게 주님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체가 좋은 교회임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불편한 정황들을 보게 됩니다. 현상이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목회나 신앙생활이 그것만을 주목해서 쫓아간다면 아쉬운 결과만 가져올 것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을 살펴보아도, 그물이 찢어질 듯한 기적의 체험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서 주님앞에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인생 베드로의 고백이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합니다. 한번 만선을 경험한 것으로, 계속해서 그것만 소망하여 산다면 그의 인생은 허무하고 공허하여 졌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주님을 만났는데, 겨우 건진 것이 고작 만선의 추억정도라면 참으로 아쉬운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무리에 불과한 인생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는 만선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붙들었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낚는 어부라는 현실에서 실제화되지 못한 비젼의 그 음성을 듣고 붙잡음으로, 그의 인생은 빈배인생에서 대박인생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이 되겠습니까?

 

본질을 쫓는 것은, 말씀 듣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탐독하여 깨닫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음성이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으심 가운데 귓가에 들려져야 합니다. 혹여, 아무런 호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 삶에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아무것도 모른 체 교회와서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가 잘 안되어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슬비가 젓듯이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현상의 기적이 아니라, 주님자신을 붙들고 믿었던 것이 최고의 복임을 깨달아 고백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속에 사명과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종말시대의 끝자락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날을 알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은 반드시 부지불식간에 우리앞에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땅을 떠나갈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날을 안다고 하여, 우리의 삶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면 되겠습니까? 하루 하루를 감사와 기쁨으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그저 주신 사명앞에 최선을 다해 따라갈 따름입니다. 삶에서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땅의 일들, 우리를 요동케 만드는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들, 이 모든 것에 대해 사명의 본질을 회복하며, 잠잠히 주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며 인내와 성실로 주의 영광을 구하는 것, 인생에게 주신 최고의 분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