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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탄의 기억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8-12-22 (토) 05:28 조회 : 71

성탄절을 기다리며, 수 십 년전 한국에서 경험했던 성탄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12월이 시작되면, 교회마다 월동준비와 더불어 성탄장식을 했습니다. 김장을 해서 언 땅을 깨어 김치독을 묻고, 히터가 없던 시절이기에 연탄 연통 난로를 여러개 창문 가까운 쪽에 설치합니다. 성탄장식은 아주 단순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조립품 나무가 아니라, 실제 나무를 가져와서 장식을 합니다. 크고 화려한 장식이 아닙니다. 주로 반짝이 줄을 감고는 맨 꼭대기에는 금박지 별을 달아 매고, 손가락 두세개 되는 크기의 굵은 등을 감아 돌리면 끝입니다. 강단에는 축 성탄, 기쁘다 구주 오셨네글씨를 써 붙입니다. 어떤 해에는 강단 앞에서부터 본당 전체에 반짝이 줄과 등을 달아서, 너무 과한 열심도 내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기관별로 성극연습을 시작합니다. 가장 어린 아이는 예수님 생신 축하 메시지를 또박 또박 암송합니다. 실수도 하고 밑에서 읽어주고 하여도 어느 누구하나 즐겁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중고등부 아이들은 뭔가 의미있는 성극을 해보려고 엄청 노력을 합니다. 때로는 소재들이 너무 희화화되어서 한참을 웃다가 그해의 스타를 하나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연습하는 중에, 삐치고 토라지고 달래고 그러면서 성탄의 시즌을 지납니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연습한다고 찜통에 라면을 끓여옵니다. 식사량이 왕성함에 비해 라면이 부족해서 국수를 넣어서 잔뜩 끓여나오는데, 연습에 열중하다보면 나중에는 식어서 그냥 밥처럼 숟가락으로 퍼먹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성탄카드도 열심히 만들어 봅니다. 시즌이 되면, 미술부 형님들이 만든 카드를 학교앞에서 판매합니다. 좀 괜찮아보이지만, 비싸다는 생각도 들고 성탄이 가까워질수록 할인된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사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누나를 따라 풀로 그림을 그리고 반짝이를 뿌려서 조금 유치한 카드를 만듭니다. 늘 내용은 한결같이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축 성탄 기쁘다 구주오셨네입니다. 그리고 친구에게만 카드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선생님들과 어른들에게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우표도 붙이고 우체국까지 걸어가야하는 시간임에도 성탄의 은혜는 무한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탄이브가 되면, 교회마다 모여서, 성탄축하행사를 합니다. 고급스런 악기나 마이크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냥 생목으로 소리를 냅니다. 막이라고 하면, 철사줄 굵게 매어가지고 천을 달아 둔 것입니다. 막돌이를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서로 하려고 난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담없는 직분은 여전히 인기가 좋습니다. 열심히 행사를 다 한 후에는 기관별로 각기 흩어져서 새벽송을 기다리며 선물교환과 이런 저런 즐거운 놀이와 게임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선물안에는 벌칙도 아주 특이한 것이 많아서, 누구를 좋아한다를 외친다든지, 밖에 나가서 찬물에 발담그고 있으라든지, 별의 별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습니다.

 

 

게다가 이브날에 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추운줄도 모르고 강아지처럼 그 추운 새벽에 뛰쳐나가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새벽송 팀이 출발합니다. 집앞에 가서 찬양을 하고, 쵸코파이와 준비한 선물을 픽업하고, 어떤 가정에서는 야식으로 떡국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새벽송팀중에는 가정별로 수거한 선물을 담는 산타 할아버지 배역이 있어서 쌀 자루에 선물을 매고 다닙니다. 그렇게 새벽송을 돌다보면, 이웃교회와 마주쳐서 선물교환도 하고, 그 새벽에도 길에서 청소와 배달일을 하는 분들 보면 선뜻 받은 선물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해는 선물을 잘 모아두었다가 고아원에 기증을 하기도 했던 철든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성탄의 밤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성탄절 예배시간에 깊은 안식에 빠지다가 큰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기억들입니다. 물론 그 즈음에 발표되는 대학입시라는 것이 아주 몹쓸복병이 되기도 합니다. 역시 사탄마귀는 성도의 즐거운 꼴을 못본다고 탄식을 합니다. 혹여, 입시에 낙방하거나 재수를 결심한 형님들은 성탄절 밤에 후배들과 함께 부산행 완행열차에 올라탑니다. 재수의 결의를 위해 해운대, 태종대를 향해 밤 기차를 타고 갑니다. 그곳이 성지도 아님에도, 선배 때문에 후배 때문에 꼭 매년 그곳을 순례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막광야같은 이민의 땅, 그 작은 도시 한켠에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참 좋습니다. 그들중에 목사, 신학교수, 선생님, 교육전문가 등 휼륭한 선후배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에 등장하는 이름들마냥,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며 추억합니다. 자가용도, 전화기도, 컴퓨터 게임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은혜의 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교회에서는 어린아기들로부터,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을 카피해서 발표회 연습중입니다. 갈수록 성탄발표회의 열기는 예전만 자꾸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지만, 그럼에도 이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음을 알기에 다른 것을 못해도, 성탄에 예수님 생일 축하는 꼭 준비하도록 합니다. 물론, 영원자존하신 예수님에게 무슨 생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기위해 이땅에 오신 육신의 탄생을 기념하고 이를 몸으로 교육하면서 교회로 모이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아이 생일에도 난리법석에 야단을 떠는데 주님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소란스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근심중에 기도합니다. 오늘날은 교회에 모이는 성탄절 예배도 찾아보기가 어렵고,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해피 할러데이를 외치며 가정중심의 휴가 시즌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 시대에 허락된 그 좋은 성탄의 추억과 전통을 어떻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을까? 인생 세파의 여정을 지난다할지라도 마음 따뜻하게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탄의 추억을 어떻게 잘 전수할 수 있을까? 아주 깊은 고민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