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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없는 신(新) 사사시대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8-11-02 (금) 06:26 조회 : 19

부끄러움이 없는 신() 사사시대

 

베트남이 모국인 EM 소속 집사님의 부친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순서지 한쪽 작은 면에 한 사람의 80평생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월남이 패망할 때, 비행기 조종을 하던 분이셨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피난을 왔다. 한명도 남겨두지 않기위해 목숨을 다해 건너 온 것이다. 어르신은 이곳에서 자녀 여섯을 더 낳아 8남매를 두었는데, 모두들 장성하여 전문직에서 일하는 성공한 자녀들이 되었다. 손자손녀들이 열아홉명이나 되었으니, 한쪽 좌석을 차지한 자녀손들이 가득하여 보기에 참 좋았다. 복있는 노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추모하며 글을 써서 낭독을 하는데, 아버지의 삶에 대해 두 가지를 언급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삶은 꿈을 이루어가는 삶이었으며, ‘자식들에게 더 낳은 삶을 물려 주기 위해 희생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눈물 흘리는 자녀를 보면서 같이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한국 부모세대들을 생각하며, 동양인들만이 가지는 독특한 가족중심, 아버지의 책무에 대한 문화의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직 혈혈단신 두 노부부가 언어와 환경이 낯선 이국땅에서 가문을 세워가며 고생하고 수고한 것은, 비단 같은 한국인이 아니어도 감동적인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순서지의 단 한 페이지도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평생의 삶이라고 할 때, 가슴 서늘한 느낌도 찾아왔다. 그것도 자신이 그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녀손들이 그 부모의 삶에 대해 글을 쓰고 추모한다고 할 때,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에게도 복 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최근 한국은 지도층에서부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 하다. 불신자라 하여도 소신있는 삶을 살 때는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지만,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적인 인생은 도무지 복이 없음을 본다. 최근 헌법재판관 청문회 기사를 보게 되었다. 헌법재판관이 될 사람이 앞뒤 말의 기준이 너무나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았다. 동성애와 동성혼, 군대에서조차도 인정해야 된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가 근거를 들어 말하는 것이 어이없이 실소하게 했다. 동성애 찬성을 설명하면서 한국 땅에 왼손잡이가 10% 되니, 그렇게 보면 안되겠느냐는 것이다. 법의 심판에 대한 최종결정권자가 되는 사람으로서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비유자체보다 그런 정도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가진 생각의 목표가 있다고 할 때 얼마든지 법의 내용을 호도해서라도 자기 목적을 이룰 사람이 아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지 않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소신의 잣대를 가지고 말하면, 전문영역에서는 신뢰를 받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핑계와 변명과 말장난으로 땜질하듯이 하는 말들을 보면서 조국의 미래는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의 영혼에 대한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될 정도였으면 무엇이 부족하다고, 저 연로한 때에 자신의 살아온 삶을 부정하듯하며 권력을 취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터인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장례식에서 자식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봤더라면, 저렇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군대에서의 동성애 허용이라는 말에, 정말 우리 조국이 신사사시대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구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민의 땅에 살면서 더 간절하게 느헤미야처럼 다니엘처럼 한결조국을 위해 눈물 흘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