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07_02.gif
총 게시물 176건, 최근 0 건

인생이 당해보고 경험해 봐야 그 결과를 안다는 것은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8-11-02 (금) 06:16 조회 : 5

인생이 당해보고 경험해 봐야 그 결과를 안다는 것은

 

늘 좋은 것도 열 번 이상을 보면 지루한 감을 가지게 됩니다. 집안에 가족들이 몇 달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집안에 살아있는 것이 좋아서 날아다니는 파리도 잡지를 않았습니다. 게다가 집안에 스스로 움직이는 어항의 물고기도 대화를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함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보면 귀찮아지고 지루해 집니다. 눈을 즐겁게 하며 보는 것은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억도 잘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들어도 들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들을 때 마다 새롭고 감동이 되고, 회개의 제목을 찾으며 기도하게 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시대는 말씀을 듣게 하지않고 자꾸만 보여주려 합니다. 설교학에서 그림언어라는 말을 사용해서 장황스레 설명할 것도 짧고 간결한 그림과 영상도구로 대체하려는 것을 봅니다. 필요를 따라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말씀자체의 감동을 조작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성령이 일하실 영역을 남겨들 때, 설교자와 청중 모두가 겸손히 사모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는 인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도 경험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교자가 감동받을 일들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청중에게는 그저 연예프로그램의 관람객처럼 즉각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해 내듯, 성령하나님의 개입하실 틈도 없이 사람의 기술로 시작해서 기술로 끝내 듯 하는 것을 봅니다. 입을 벌리고 울고 웃다보니 생각할 틈도 없이 예배가 끝이 납니다. 그렇게 감동을 받고 나면 아주 훌륭한 예배였다고 극찬을 합니다. 설교자는 스피커인데, 스피커가 너무 휼륭해서 성령 하나님이 드러나지를 못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회개의 무릎을 꿇게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을 기회조차 앗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 결과 감동은 하지만, 순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항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말씀이 항상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영혼이 살아 움직입니다.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앞에 두렵게 떨림으로 회개하며,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하여 날마다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아갑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결론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에게 들려지는 말씀이 하나님 당신이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하나님의 동행을 증거하는 축복을 부르는 나팔이 됩니다.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항상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땅에서 부요하고, 평강이 임하고, 존경=귀한 사람이 됩니다.

 

모태에서부터 예수를 믿었다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가 만나주시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말씀 그대로 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순종과 축복도 먼 이야기가 됩니다. 말씀 그대로 하지 않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취사선택식 순종은 곧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은 하난미의 역사를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12지파중에 열지파를 떼 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를 만들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자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라는 죄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게 됩니다,

 

인생이 당해보고 경험해 봐야 그 결과를 안다는 것은 불행하고 미성숙한 일입니다. 말씀도 성령도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살아보지 않았지만 주님의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훌륭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주의 교회 성도들의 삶에 이런 말씀사랑, 말씀순종의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