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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8-05-08 (화) 10:49 조회 : 86

예배자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성경전체는 예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하고 전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의 예배는 점점 더 간편, 축소, 간결, 폐지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예컨데 예배시간의 길이는 그만큼 거룩한 훈련이 되는 과정에서 타협할 수 없는 것임에도, 점차 기도는 짧게 찬양은 빠르게 설교는 간결하고 쉽게 요약해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이 되어갑니다. 더 나아가 수요예배나 금요예배의 폐지는 지역마다 더 가속도가 붙는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지않는 예배

예배가 왜 이렇게 변해가는가? 비상한 상황을 제외하고 가장 솔직한 답을 한다면, 한마디로 부담주지 않는 예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실용적으로 제도화된 프로그램속에서 손해보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사이즈의 예배를 선택하고 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서. 교회를 옯기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성을 충족시키는 적절한 수준의 신앙행태를 취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진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형편과 사정을 넘어서서 오직 믿음으로 자신의 것을 몽땅 다 내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저들은 교회를 세워왔고, 그들이 눈물뿌려 세운 교회의 터 위에서 당연한 것처럼 젊은 세대들은 그 복의 수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다음 세대에 대한 교회와 예배의 거룩한 책임에서 많이 멀어져 있습니다. 세상일처럼 주님 섬기는 것도 처세술로 섬기지는 않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결국, 언젠가는 다음세대에 전달할 신앙의 유산이 없음에 안타까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예배의 케쥬얼화, 신앙의 인스턴트화

예배는 너무 케쥬얼화 되어 버렸습니다. 한 시간 미만의 짧은 단막극을 보여주듯이, 말씀을 듣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음성이 전달되기도 전에, 이미 당신이 받을 감동은 이것이라며 다듬어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음식물을 입어 넣고 앂고 앂어서 그 맛을 느끼고 음식을 앂는 과정에서 뇌파가 적당히 함께 운동을 하면서 좋은 것을 느껴야 하는데, 마치 목에 삽관을 하고 그냥 배부르도록 음식을 집어넣는 것처럼, 규정된 감동을 전달하기에 분주한 듯 합니다. 예배의 순서와 진행들도 깔끔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마치, 누구나 보고 듣고 감동하기에 딱 좋은, 인터넷 카톡으로 무작위로 전달되어지는 좋은 이야기의 한편을 듣고 난 듯 합니다. 그런 감동은 세상이 더 잘 만들어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감동과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예배가 케쥬얼화되고보니 신앙은 인스턴트화 되어졌습니다. 삶의 문제들을 앞에 두고 느긋하게 주의 전에 앉아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급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그에 합당한 삶의 패턴들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혼을 터치되지 못하는 겉만 적시는 예배이기에, 삶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즉문 즉답의 형태를 요구할 따름입니다. 달리 신앙적인 고민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히, 신앙은 하나의 악세사리가 되어지고, 삶은 문제는 자기방식대로 풀어갈 따름이 됩니다. 교인의 타이틀을 걸어두지만 그냥 형식일 뿐입니다.

 

신앙의 자유와 방종

예배가 드려지는 시간에 교회안 체육관에서는 한창 농구게임이 진행됩니다. 애들이 예배에 들어오지 않아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농구를 하고 샤워실에 들어가도록 두는 것이 은혜로운 것인지, 땀범벅이된 그들을 데려다가 예배시간에 앉히는 것은 전혀 은혜스럽지 못한 것인지, 답이 궁금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너무 가까워져서 친밀하다 못해 격의와 예의가 함께 사라지고, 마치 함께 커피마시고 온라인 채팅하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들이 은혜로 변질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들은 그 마음속에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위한 몸부림보다는, 신앙으로부터의 방종한 자유를 찾기를 더욱 갈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배를 강조합니다. 예배를 위한 우리의 구원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렇게 예배가 왕성했기에, 거기서 참되고 충성된 일꾼들이 나오고 예배는 더욱 풍성해지면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 잘하는 사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람은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예배하는 그 사람 때문에 교회 공동체 모두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자들이 점점 보기 어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