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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17-10-04 (수) 12:34 조회 : 93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심방후유증이라고 할까? 목회여정에 들어선지 스무해가 훨 지났지만 심방후에는 늘 비슷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육신의 피곤함은 갑절로 몰려옵니다. 영광 육은 하나이며, 과연 영혼의 잘됨이 육신의 강건함으로 드러남은 참된 진리임이 분명합니다. 심방중에 여러 가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없는 백지수표를 꺼내서 원하는 액수만큼 써 드리고 싶은 분을 만납니다. 어떤 날은 대신 아파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허약한 몸에 지병으로 고통하는 분을 만납니다.

 

그중에 제일 힘든 경우는 받은 은혜를 다 까먹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 입니다.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이상스런 말을 하면, 알밤(?)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잘 참고 끝까지 버티기를 하다가 돌아옵니다. 이민의 삶에 지쳐 원망과 한숨이 가득할때는, 뭐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어도 그런 때는 그저 덩그러니 바라만 보다 옵니다. 큰 벽을 보고 오는 것 같습니다. 이해를 시킨다고 다 이해될 수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암튼, 이런 저런 과정을 지나고 돌아오면, 지치듯 삽질하고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방후 육신은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축 쳐지게 됩니다. 과연 복된 성도의 삶은 무엇인가? 그렇게 말씀을 좋아하고 예배를 사랑하며 은혜를 간증하던 그 입술은 대체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나? 어찌하여 이렇게 완강하여졌단 말인가? 영적인 깨달음이 늦어서 그렇다 하여도, 이성을 가지고 생각만 할 수 있어도 과연 하나님앞에서 그의 존재를 부정하듯 할 수 있단 말인가?

 

몸부림을 치다보면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충분히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목사인 너도 예외가 아니지 않느냐는 말씀을 주십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종아, 이제 조금 알겠니?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니, 너는 나의 은혜의 빛이 그에게 임하기까지 그저 순복함으로 그를 포기하지 말고 함께 잘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이것이 너도 살고 그도 살고 교회가 사는 길이다.’ 가만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은혜를 깨달아 알지 못하면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준에 따른 어른의 기대감으로 그를 바라보았기에, 낙심과 한숨 그리고 염려와 지침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목사가 자기 마음대로 제조해서 나누어 줄 수 있는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강권하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신자의 삶이란,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이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포기하고 지고 항복해야 합니다. 한쪽에서 그렇게 해야지 함께(together)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사람들의 결혼처럼 상호 이해하며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주님은 옳으시고 나는 틀렸노라고 말할 수 있는 곳 까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마침내 주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고백이 달라집니다. ‘주님 힘들지만 잘 안되는 것도 은혜이군요. 주님 병든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실패한 것도 은혜입니다. 모든 것 주의 은혜로 살고 죽습니다. 주님께 다 맡깁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이 은혜와 이 고백을 놓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제 영혼도 가정도 목회도 제 생명도 제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의 은혜로 살아가고 가정을 이루고, 주의 은혜로 오늘도 영혼을 찾아가고 돌보며 애쓸 따름입니다. 그래서 심방은 계속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