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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01-04 (금) 07:11 조회 : 22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는데 뚝배기의 존재는 장맛을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장맛에 방해가 되면 뚝배기가 아무리 예쁘고 반짝이는 것이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포도주 부대가 너무 낡아서 귀한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면 결국은 버리움을 받게 될 뿐입니다. 가죽부대는 낡으면 부스러집니다.

 

대개 가죽은 2-30년 쓰면 잘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얼굴 피부가죽은 평생을 사용해도 멀쩡합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동안에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당신의 생명을 나누고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새포도주는 새 부대를 필요로함을 말씀하시면서, 이제 신약교회가 예수의 생명을 담은 참된 부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약교회에 예수 생명이 가득 찬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는 예수님, 예수생명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 생명을 노래하고 전하는 곳이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성전이 무너지리라 한 것은 그들이 예수생명을 담아내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3세에 성전에 처음 가셨을 때부터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집을 어떻게 무너뜨리게 됩니까? 하나님께 바친 성전이라 해놓고 그 아버지의 아들을 거부하는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김이 없이 무너짐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성전세를 달라할 때도 아들은 면세라고 하시면서 덕을 위하여 내신 것임을 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진 영광이 아무리 찬란해보여도 예수님을 거절하는 교회는 존재의미가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월이 가면 허물어질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당신의 생명으로 충만한 영원한 집을 세우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약속대로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예수의 영,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들을 향해 유대인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새 포도주되신 주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생명의 새 부대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옛 것이 낡아서 새 것을 대신하고, 옛언약이 새언약으로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진리는 항상 새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입니다. 생명을 간직한 가르침이기에 쇠퇴하거나 낡아지지 않습니다. 수천년이 된 교훈이 오늘날에도 항상 새롭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참된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누구나 복음이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압니다. 교회사를 보면 이 가르침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의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항상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포도주의 붉은 빛은 피를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피는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에 참여함이요, 예수님의 피에 참여함은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 포도주되신 예수를 담는 가죽부대로서 예수님의 생명을 잘 받고 보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담은 가죽부대는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부스러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생명으로 모신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생명은 영원한데, 부대는 낡아져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화되고 고착화됩니다. 그 결과는 포도주의 생명력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낡은 부대가 되어 포도주를 담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과연 나와 주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을 담을 새 부대로서 늘 새롭게 준비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