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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서는 것 - 이것이 복음입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2-14 (금) 06:13 조회 : 18

죽음앞에선 인생의 모습을 네가지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뿐인 인생 즐기자는 쾌락주의, 짧은 인생 의미있게 살아보자는 금욕주의, 죽음이 두려움으로, 빨리 인생끝내자는 허무주의, 그리고 생각하고 고민해도 방법이 없으니 죽음을 잊어버리고 살자는 망각주의로 대별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대세가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을 극복할 방법이 없으니, 공부하고 취직하고 애 낳고 살다보면 절로 잊어버리겠지 하는 생각자체를 멀리하는 망각주의가 제일 많은 부류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잊고싶다고 잊혀지지 않는 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임을 보게 됩니다.

 

 

소망없는 인생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엡스키가 인생을 설명하는 예화가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사자에 쫓겨 도망을 가는데, 도망을 가다보니 낭떠러지가 나옵니다. 진퇴양난에서 어쩔수 없이 낭떠러지에 뛰어내리는데 그곳에는 입을 벌린 구렁이가 잡아 먹을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그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무의식중에 손을 뻗었는데, 낭떠러지 중간의 나뭇가지가 잡혀 그것을 붙들고 겨우 지탱하게 된 것입니다. 나그네는 이제 온 힘을 다해 그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데, 아차 바로 그때, 하얀쥐와 검은쥐가 차례대로 나와서 그 나뭇가지의 뿌리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이 점점 사라지기를 시작하는 운명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연히 그 바위틈사이에 꿀이 모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그네는 그 와중에도 한손에는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손가락을 내어밀어 그것을 찍어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단맛이 너무 좋아 행복해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설명합니다.

 

스스로 올라갈수도 내려갈수도 없는 운명의 처지가 인생입니다. 두 마리 쥐의 드나듦은 낮과 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죽을 운명이 눈앞에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 조그마한 인생의 단맛을 맛보기 위해서 그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취하기 위해 손을 내어뻗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행복하게 여기는 망각에 붙들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계있는 인생,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기에 절망한 채로 그저 눈에 띄는 작은 것에 행복을 발견하려고 몸부림치는 그 비참하고 초라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미래소망 없으면 현재는 무의미

 

도스토앱스키의 인생의 정의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살기 싫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는 것이죠. 102050년뒤에... 예외없이 누구라도... 죽음의 관문을 통과한 이후의 우리의 생명에 대한 전혀 답을 알지 못한다면 답답한 것입니다. 사상적으로 거장의 반열에 속하지만 그의 인생론은 너무나 답답한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를 말하지 못하는, 미래가 없는 현재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인생은 결코 잊고 싶다고 잊어버린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생의 모습에 완전한 소망을 주시는 분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모든 인생의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열린 무덤/부활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그 주님으로 인해, 죽음 그 너머에서 영원히 새로운 인생의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안에서 우리의 연약한 인생도 회복된 아름다운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