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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안으로 피하십시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8-12-11 (화) 11:01 조회 : 33


최근 교단의 어른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격과 삶의 훌륭하심과 말씀의 풍성한 은혜로 인해 본 교회에서는 두 해를 연거푸 부흥성회 강사로 모셨던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좋아서 이제는 먼 타국에서도 목사님의 장례식을 영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과 아시는 분들의 얼굴도 드러나고, 집례하시는 목사님도 친근하게 영상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어른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비통한 슬픔과 천국에 대한 소망의 믿음안에서 드러내는 기쁨과 감격이 잘 어우러진 복된 장례식이었습니다.

 

장례식을 통해 유한하고 제한된 인생의 한계와 이를 넘어서는 부활의 산소망들이 사순절 기간을 지나가는 지금 더욱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그 영상의 시작과 끝, 여든 둘의 인생연한을 지나시면서 살아오신 삶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한시간의 장례예배가운데 온전하게 묻어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영광스런 장례예배였습니다.

 

교회에서 살고, 교회를 통해 천국

장례식의 은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교회에서 태어나셔서, 교회와 더불어 자라고 살으시고, 교회와 더불어 헌신하셨다가 교회의 환송을 받으며 천국에 입성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 고인의 삶은 교회를 빼 놓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유독 고인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성실하게 감당하려는 모든 이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고자 고생과 수고를 다하고자 했던 이들, 그들의 삶은 항상 어느 때든지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회를 섬기면서 충성하며 지내왔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배생활과 교회생활을 같이 말해야 온전합니다. 현 시대는 꼭 교회를 향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자신이 원함에 맞추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설교들을 선택해서 듣고, 필요하면 전화기를 이용해 헌금을 송금할 수 있는 그런 예배도 생각하자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의 예배, 교회를 향해 몸이 나아가는 예배는 점점 그 문이 좁아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벨직 신앙고백 28항에 말하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새롭게 새겨봅니다. 물론, 한 거룩한 보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임을 인지하면서도 과연 믿음의 선배들과 사도들이 증거하며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로컬처치, 지역교회와 달리 볼수 없다는 것을 현실 신앙세계에서는 더욱 더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회복-예배와 교회

죄많은 인생의 회복은 어디서 가장 권위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 예배생활이 온전치 못한 사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그 신실하심을 중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들입니다. 가끔 보면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는 낙심한 영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비록 그들 가운데는 물질이 풍성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경우도 있는데, 이 사람들의 교만과 오만함이란 너무나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장로와 집사라는 이름은 그저 명예직에 불과한 것이고, 어느 한구석에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선히 인도하셨다는 고백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 섬기는 교회가 분명하지 않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자를 쉽게 재판하면서, 교회를 주식회사 정도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각한 교만입니다. 불신자와 같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잘못된 앎을 스스로의 무지를 덮는 지식으로 포장하며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빠져버린 스스로의 성공을 말하는 저들의 영혼은 심히 피폐하고 공허할 수 밖에 없음을 봅니다. 룻기서에 보면 엘리멜렉의 가족이 흉년을 피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땅, 예배가 없는 곳으로 먹고살기위해 이민을 갑니다.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결론은 하나님은 영광이시라는 엘리멜렉의 이름은 이땅에서 지워져 버립니다. 기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아내 나오미의 이름은 스스로를 쓴맛이라는 뜻의 마라라고 호칭할 만큼 쓴맛나는 인생여정을 지나갑니다. 영육간에 형편없이 초라하고 피폐해진 것입니다.

 

주님안에서 교회안에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강산은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주님없는 10년 세월에 사람만 쓴맛나게 변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한번 시험 들면 10년은 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변의 신실하신 분들중에 10년을 한결같이 주님안에 있었던 분들, 빛 되신 하나님, 새벽별 같은 주님, 백합화 같은 주님을 바라보고 사신 분들은 자연스럽게 그 얼굴이 좋게 아름답게 변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 떠난지 10년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 젖어있는 모습과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이 마치 마귀의 형상과 세상냄새를 진동케 하는 것을 봅니다. 이민 교회의 다양함이 있을지라도, 장로의 임직을 위해 투표할 조건으로 대개 무흠7년을 말합니다. 단순한 숫자 7년이 아니라, 한 교회를 섬기고 리더하고자 할 때, 최소한 10년 정도는 무흠하게 교회를 섬겨야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앞장서서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할 때도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별로 방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성도는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주님안에서 교회안에서 삶을 살았다는 흔적이 그의 얼굴에 중요한 겉표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는 쉽게 함부로 교회를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은 대단한 것 같아보여도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날 때, 행복도 함께 떠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비록 빈손이지만 하나님 앞으로, 교회안으로 나아와 십자가를 붙들 때, 쉼없이 주님의 눈앞에 발견되어질 때, 언제라도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