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제게 지난 21년 동안을 한 교회에서 꾸준히 목회하도록 하셨고, 이민 목회의 거친 풍랑속에서도 잠잠히 주안에서 평안을 지켜내게 하셨습니다. 이십년 넘는 세월의 시간들이 한 순간처럼 지나간 것 같습니다. 너무 소심하고 유약해서, 조금 마음 상한 일만 있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몸을 부르르 떨다가 잠을 청하기도 했던 그런 저에게 이 역사는 엄청난 일입니다. 가끔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떻게 한 교회에서 21년간 부족한 종이 목회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가? 생각할수록 열매의 경중을 떠나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막힌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은혜, 절대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니, 결국은 주님의 교회를 향한 마음, 교회 마룻바닥 냄새를 사랑했던 그 작은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셨음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생각만해도, 지금도 뭉클한 눈물이 올라옵니다. 엄청난 세월을 목회하신 선배님들에 비하면 작은 티끌같은 일이겠지만, 작은 아이의 마음을 가진 못난 종에게는 21년 세월은 기적같은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그 기적의 중심에 부족하지만 주의 몸된 교회를 향한 사랑이 있음을 봅니다.
교회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주님 발에 향유를 부으며 여성에게는 가장 귀한 것으로 간주되는 머리카락으로 주님 몸의 가장 지저분한 곳, 발을 닦았던 여인이 떠올려집니다. 이것이 지금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몸은 교회입니다. 발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가장 지저분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 주님의 교회의 가장 필요한 부분을 채우는 헌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담임목사에게는 다른 성도들이 보지 못하는 눈과 감각기관이 하나씩 더 있습니다. 떨어진 작은 휴지조각부터, 주일 아침이 되기전에 의자의 오와 열이 정리된 것, 에어컨이 불필요하게 작동되지는 않는지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알아차릴 수 절대 감각, 등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마음을 가진 것, 그 자체를 주님이 긍휼히 보아 주셔서, 목회에 은헤 내려 주신 것 같습니다.
목사 뿐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복되게 하시고, 그런 이들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여 주심을 봅니다. 작은 도시에서의 이민교회 일들 가운데 성도들로 인해 넘치는 은혜의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중에 제일 감사한 것은, 담임목사 닮은 성도들이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중심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로 잘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밖에 나가서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에서 제일 큰 교회입니다. 숫자는 묻지 말라면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한인인구가 2천명 뿐이니 숫자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도시 가운데 강이 흐르는데, 그 강의 남쪽에 교회가 위치하고 있기에, 알칸사의 강남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그들을 나무라며 탓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만한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 않아서 문제이지, 내가 신앙생활 하는 교회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너무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세월 가운데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심을 깨닫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몇 번의 죽음 같은 위기에서도 결국은 건져 주셨습니다. 제 마음에 있는 오직 주의 몸된 교회만 생각하는 어린 마음을 이쁘게 봐 주신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며, 목회적으로 헛발짓(?)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 아가고자 애쓴 것을 좋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성도들도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민 교회에서 ‘새벽기도, 주일성수,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회가 저 스스로에게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강사 목사님은 제게 “예수님이 짐을 주고 힘들게 하려고 오셨겠나? 쉽고 가볍게 한다고 했는데, 교인들에게 고행을 시키면 어쩌노?”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을 좋아해 주셨습니다. 예배하는 것, 교회 사랑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 외에 뭐가 더 주님 좋아하실 것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사랑의 목회는 부족한 종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가장 쉽지만, 가장 복된 목회학의 원리였습니다. 그렇게 21년을 달려온 것입니다. 때로 많은 시험과 고난, 아픔과 고통도 있었습니다. 힘든 나머지, 목회를 그만두고 일곱명의 충성꾼과 산에 들어가 공동체를 세우면서, 복잡한 목회환경을 떠나 주와 함께 오직 말씀과 기도와 전도만 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습니다. 10년을 성경공부 하고서도 변한 것이 없다며 교회를 떠나겠다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고통스런 목회현장의 일들 앞에서, 가족과 어려움을 나누게 되면 오히려 가족이 아는 것 그 자체가 고통스런 또 하나의 짐을 더 지게 될 것 같아서, 쉬쉬하며 혼자 동네를 차로 몇바퀴나 돌고 돌았는지 모릅니다.
지나 보면, 이것 또한 귀한 추억의 장이 되지만, 당시의 캄캄했던 그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우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아내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나 목사 안하고, 평신도하면 안될까? 좋은 목사님을 도와 멋진 교회를 세우고 싶어.’ 어릴 때부터 목회자 사모 되라고 반지끼워 키운 믿음 좋은 아내에게서 돌아온 답이 아주 간단명료했습니다. ‘안할 것도 아 닌 데, 할 바에는 주신 사명대로 하세요.’ 속을 모르는 답이 오히려 정답 이 되고, 하나님의 음성이 되었던 것을 봅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어린아이 같은 종을 오직 주님이 붙들어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나온 21년동안, 성도들과 더불어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목회를 하며 지나온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도 복을 받았고, 교회와 성도들도 복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15년의 시간은 어떻게 지날까? 특별한 답은 없어 보입니다. 그저 주의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해 보입니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