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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3-10-28 (토) 08:20 조회 : 82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안팎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무엇보다 마음의 소원이 바뀌게 됩니다. 주님의 기쁨 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예수님이 싫어하시면 내가 아무리 좋아도 포기하는 선택지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제일 큰 기쁨이 되고, 예수님 믿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 됩니다. 세상의 천날보다, 주의 성전인 교회에서의 하루가 더 행복합니다. 주의 일에 헌신하면 할수록 즐겁고 행복함을 고백합니다. 행복한 예수쟁이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성령안에서 새 사람, 새 인생을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니, 예수의 영이 그 속에 들어와서 그의 삶을 지배하게 되니, 자연스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의 선명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동안 예수를 믿고 살아도, 아직도 예수님께 더 받아 내야 될 뭔가가 있는 빚쟁이 같은 마음이 여전하다면,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과 삶을 두고 기도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보다 세상이 좋고, 찬송보다 세상의 노래가 더 은혜가 된다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밥먹는 데는 2시간도 모자라는데, 예배는 1시간만 넘어가도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된다고 할 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고 싶은 사람에게 제일 부담스러운 것이 아마도 새벽기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새벽기도를 두고서도 입장이 나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누가 이 새벽기도를 만들었노? 하며 아주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새벽 기도 안하면 못사는 사람도 있는 것을 봅니다. 전자라면, 자신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입장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예수 이름의 그 권세와 능력을 제대로 맛보고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오고 가는 세대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능력의 근원 샘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에 힘을 얻고 살아갑니다. 영원한 소망. 영원한 기쁨이 되는 이름이 예수, 그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능히 이겨내는 능력이 됩니다. 주후 155년경, 서머나의 폴리갑 감독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님을 믿고 배교를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에 화형을 당하기까지 그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먹고사는 작은 문제에도, 신앙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런 인생도 스스로의 믿음 없음을 당당히 항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는 오히려 생명과 믿음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 정체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 이름의 능력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죽음을 넘어서서 자신을 드려, 헌신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조선 땅에 온 북장로교 선교사인 월터 잔슨(Walter V. Johnson)은 조선 선교를 위해 배를 타고 오다가 일본 고베에서 부인을 잃게 되었는데, 그런 후에도 홀몸으로 조선에 입국해서 조선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도 입국한 지 몇 달만에 서른의 나이에 천연두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아내도 없이, 홀로 그는 왜 조선땅으로 갔을까요? 예수의 이름을 믿었고, 그것도 진실로 믿었을 때, 그 이름의 능력이 그를 조선 땅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조선의 복음을 위해 선교의 위대한 피를 흘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을 말하고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이름은 신비한 것입니다. 생명을 던져서라도 헌신하게 만드는 그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 그 이름의 능력입니다.

 

 

또한, 예수의 이름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사람 참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무시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본질은 과연 예수를 제대로 믿었느냐를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신앙 생활 가운데서 어려운 문제만 닥치면, ‘예수 믿는데, 왜 이렇게 안되냐?’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문제입니다. 예수 이름을 제대로 믿고 배우므로, 그 능력을 맛볼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 아래에서 한 인생과 그 가정과 자녀와 삶의 전 영역이 변화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길은 예수 그 이름을 믿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예전에 한국의 어떤 가정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식투자에 실패하여 몇억의 빚을 졌는데, 너무 힘들어서 두 딸과 아내를 목 조여 살해한 사건입니다. 남자가 유서를 남겼습니다. 애들과 아내에게 미안하고, 자신은 지옥에서 그 벌을 다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를 못하고 결국 잡혔습니다. 명문대학교 엘리트 출신이었습니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죽이고 죽을 생각을 했나? 죽기살기로 살아야, 게다가 죽기살기로 예수를 믿었으면 그렇게 안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저들이 유서를 쓰는 동안, 평생 믿었던 그 예수, 그 신앙의 힘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그 길을 가면, 그 길이 자꾸 그쪽으로 열리게 됩니다. 마귀의 웰컴입니다. 그러나 힘이 들지만, 하나님쪽으로 생각하고 길을 가면, 어렵고 좁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 데 적당히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외에는 다른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죽기 살기로 예수를 붙잡으면 반드시 살게 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데로, 반드시 순종하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형통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 예수 그 이름만이 능력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안에서 매일 매일 변할 수 있습니다. 카멜레온 같은 것이 아닌,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구한말 선교사님들의 모토가 있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바꾼다. 사람을 바꾸면 민족이 바뀐다.’ 선교의 열풍이 불었고, 마침내 복음이 사람을 바꾸었습니다. 3.1 운동 독립선언문을 주동한 3분의 1이 예수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구미 상모교회 새벽기도 종소리가 민족을 깨웠습니다. 예수 이름의 그 능력이 개인, 가정, 가문, 자손, 교회, 나라와 민족을 바꾸는 능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