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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보다 의미를 찾는 행복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2-10-14 (금) 05:44 조회 : 57

소유보다 의미를 찾는 행복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 다 잘되게 하시고, 복을 받아 누리게 하시며, 범사에 형통케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도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대신해서, 내가 대신 더 많이 복을 빌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더 간절하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목사로서 당연한 기도의 이 일들이 상당히 이상하게 다가오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의중 때문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칭찬받는 그리스도인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를 묵상하다보면, 나의 기도가당시 저들이 들었던 메시지의 내용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해, 그 어떤 말들 보다 오직 잘 인내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라고 단순 명료하게 선포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유업을 얻도록 구하며 기도하라고 힘주어 강권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민 땅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이들을 향해서, 돈잘 벌고 성공출세, 만사형통하라는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저들의 형편과 전혀 다른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론, 돈 벌고 부자될 수 있다는 것도 소망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누리는 복이란 것은 소망의대상으로 존재하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고 유한한 것입니다. 새 차를 사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외장과 내장이 다 썩어 들어가 폐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새 집을 사서 누워보면 좋고 안락함을얻습니다. 그러나 곧 몸의 익숙함들이 효용가치를 바닥으로 던져버리지 않았습니까? 푸른 잔듸밭에 수영장있는 멋진 하우스를 얻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장은 메워 텃밭으로 잔듸는 언제나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과 같이 세상의 모든 영화로는 것들도 결국 모든 것이 썩고, 더러워지고, 쇠하는것에 불과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먹고 살기위해 죽도록 고생하며 산다는 이민자들에게는 무엇이 들려져야 하고 전해져야 합니까? 무엇을 들어야 영원한 참 소망에 가슴 두근거리는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민 교회 목회자로서 저들을 위해 밤낮으로 빌고 바랄 것은 무엇일까요?

 

해 아래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해 위에 있는 소망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 주의 말씀과 성령안에서, 의미있는 인생의 답, 삶의 의미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다다익선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질수록 더 가지려 합니다. 힘을 달라고 해서 힘을 얻으면 또 더 큰 힘을 요구하며 결코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선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생에게, 세상 욕심을 따라 가는 것 만큼 부질없는 것이 없음을, 의미 없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개 돼지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의미를 알고 의미를 찾고, 의미를 느낄 줄 아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작고 초라해 보여도, 의미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좋아보여도, 의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의미를 치환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감동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감동이 있고의미가 분명하면, 크고 작은 소유의 문제는 하찮은 것이 되어, 삶의 생기와 기쁨을 얻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개척교회를 목회하시느라 고생이 무진장하신 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코로나 시기의 어려움중에도항상 행복이 넘칩니다. 만날 때 마다 간증이 흘러넘칩니다. 실제 간증거리가 많아서 그렇게 하심 보다, 삶의 눈길 가는 방향이 다르니까, 발견하는 간증 스토리도 신묘 막측할 정도로 아주 무진장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간증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한 성도가 목사님, 저희와 목회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적어 전해준 그 한마디 말에, 목사님 표현으로 아이들 교실 하나도 채우지 못할 그 정도 숫자의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겠노라는 행복한 선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의미와 감동이 그분을 행복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약하여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강할까요? 자식 때문입니다. 자식이 자신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에, 그 의미와 감동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힘있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성도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의미만 분명하면 어디서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네팔 산맥의 외로운 골짜기 마을에서도, 평생을 남미 오지의 정글마을에서도, 행복을 노래하면 살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그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주 안에서 발견하며 사는 것이 회복이며, 행복입니다.

 

어려운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부지런히 눈에 씌인 세상의 비늘을 예수 보혈로 씻어내고, 주님 주시는 영감을 따라 매일 매일 매순간 순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단 하루를 살아도 주님안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복된 인생을 살아 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