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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나, 아무거나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1-10-20 (수) 11:39 조회 : 51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최고의 집중 교육을 하셨습니다. 33년 공생애를 다시 한번 더 명확하게 정리해 주시고는 그들에게 숙제를 남겨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덧입어, 마침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듣던 이들은 주류가 예루살렘 대도시의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갈릴리 시골 사람들이었는데, 저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한번도 가보지 않는 땅끝을 향해 가라는 말씀은 경험으로 감각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을 그들에게 땅끝이란 이해와 설득이 되지 않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었으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이 오백명가량이 되었다는데, 정작 그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은 일백이십명에 불과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면 믿겠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보여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어지도록 은혜를 주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보여주면 믿겠다는 그 언행심사, 그 자체가 이미 은혜를 담기에는 부족한 함량임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암이 나아도, 몇 달 다닌 후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만큼 다녀주었으면, 할만큼 한 것 아닙니까? 마치 대가를 보상하듯이 교회를 다녀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제목만 응답해 주시면 신앙생활을 잘 할 것입니다. 마치 딜하듯이 하나님앞에 기도후에, 응답이 되어도 얼마가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본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은혜가 임해야 됩니다. 주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들으면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말씀만 잘 들어도 그 말씀속에 문제를 해결할 길을 늘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신비한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자 하고, 순종하며 나아기만 하여도, 구체적인 인도하심과 마침내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넉넉하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 위대한 사명도, 그 말씀속에 이미 행할 능력들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성령을 기다려라.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능력을 가지고서, 마침내 상상하고 꿈꿀 수 없었던 그 나라를 볼 것이다.”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령이 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하늘의 날씨만 바라보며, 그날 그날 벌어서 살던 인생이, 평생을 그물질하며 살았어도 어떤 날은 밤이 늦도록 수고해도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던, 그렇게 살아가던 인생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임하면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어 예수님의 복음의 담대한 증인이 되었고, 마침내 그를 통해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땅끝을 향해 복음이 전진하는 첫 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이 성취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일점일획의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 주님은 어떤 시대 어떤 사람이라도 사용하셔서 마침내 당신의 일들을 복되게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런데 왜 살아나지 못하는 일들이 이렇게 많은 것입니까? 제대로, 바르게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귀를 유익하게 할 것만 가려 듣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 역사가 나타나지 못합니다. 듣는 것 같아도 듣는 흉내만 낼 따름이고, 실제는 자기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는데, 왜 그런 역사가 남의 집안에는 불일 듯 일어나는데, 우리 집안에는 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까? 제대로 듣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믿는다.’는 말은, 자신의 삶을 걸고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믿는다는 것은, ‘그저 믿어준다는 것 혹은 교회 가준다는 것의 수준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과 호 불호를 따라 선택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순종하고픈 것만 순종하기에 아무런 믿음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요즘 같은 시대에 다시 성경을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 예수를 제대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식당 이름 중에 아무데나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가 아무거나입니다. 밥만 먹고배만 부르면 되지, 뭘 그렇게 찾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손쉽고 간단해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적극 동의가 되는 부분입니다. 먹는 것이 행복의 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은 결코 먹는 것에 목숨걸고 살 이유는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좋은 식당과 메뉴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먹는 것은 그렇게 아무데나, 아무거나할 수 있지만, 신앙생활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어디서나 설교 들으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한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해야 됩니다. 아무 교회에서, 아무 말씀이나 한 번 들으면 주일 지킨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마침내 그런 선택적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저들의 삶은 단 한번도 주님의 사명 때문에 가슴 뜨거워본 적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원화된 사회안에서, 선택적인 믿음과 순종을 많이 요구받습니다. 2세들은 더 어려운 환경들 가운데 놓여질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우리는 주님의 사명을 위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들을 때에, 아무리 주님의 대 사명이 크고 어렵다할지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지혜의 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씀의 성취를 통해 가슴 두근거리는 은혜의 날들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