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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오염에서 영적회복으로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1-10-20 (수) 11:37 조회 : 48

긴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영적인 오염 상태(?)에 빠져 헤매이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영상설교에 익숙하다 보니, 여러 가지 폐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이들 가운데는 미국의 토요일 저녁에 한국의 주일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주일을 지켰노라말하는 이상한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영상에 너무 빠진 나머지, 운명(?)처럼 자신의 영혼에 맞닥뜨리는 말씀으로 설교를 들어야 하는데, 자신의 형편에 따라 들을 말씀을 자신의 호 불호를 따라 선택을 해서 듣다보니 말씀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들도 없어 지는 것을 봅니다.

 

그 결과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한 감정의 부분들을 잠시 긁어 줄 수 있는 가벼운 도구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결국, 영적건강이 나빠지고 작은 문제에도 쉽게 쉽게 넘어지는 물렁이 신자로 전락한 것을 봅니다. 진취적이지 못하고 유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변모해 가는 것입니다. 풍랑많은 인생임에도 삶의 고난과 역경에 힘있게 맞서는 야성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우리 신앙의 본질, 신앙의 살아있는 야성이 무엇인가를 질문해 봅니다. 어렵고 힘들면, 부르짖어 기도하고 찬양하며 고난의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하는데, 그런 영적인 야성보다는 현실적인 필요에 순응함에 빠른 걸음들을 보입니다.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말씀을 받아먹으면 그 속에 꿈과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될 터인데, 그러한 길을 보여주는 사람도, 이를 따라가는 사람도 보기가 무척 어려운 현실입니다. 말씀 안에 받은 꿈과 소망 때문에, 단 하루도 꿈없이 잠들지 않고 꿈없이 깨지 않는 복된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 터인데, 영혼에 들은 바가 없으니 기대감도 없고, 기대감이 없으니 기도도 없는 영적부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현상입니다.

 

혹자에게, 당신은 풍랑많은 인생의 밤에 그 풍랑을 밟고 찾아오실 주님 안에서 인생의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는가? 물어보면 대개 공통의 답을 말합니다. ‘나에게 영적인 것을 말하지 마세요, 살아 있음의 순간 순간이 고통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잔뜩 고통과 절망에 짓눌린 채로 아프다고 말하기에 급급하고, 그 아픔에 대한 위로만을 찾아 피하기에 열심일뿐, 그 고통의 풍랑을 허용하시고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뜻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디어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더욱 재촉하는 일들이 오늘날 인터넷 문명 속에서 동냥젖에 의지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모유를 사고파는 동냥젖이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소화 흡수에 좋은 모유를 인터넷에서 구입해 먹이는 일들이 엄마들에게서 성행한다는 것인데,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바이러스 감염 등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어서 면역력이 취약한 신생아들에게는 한층 더 위험한 것들입니다. 신앙의 세계도 동일합니다, 말씀의 진지한 배움없이 인터넷 사이트등에서 마구잡이로 설교를 선택하거나 다운 받아 듣는 설교동냥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인데, 영적건강에 전혀 유익하지 못함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성경은 영이 육을 지배함을 증거합니다. 영적감각을 회복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보다, 예배와 말씀의 감격이 회복되어야 하며 영적인 부분이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해결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고통을 피하는 조건으로 타협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찬송을 하여도 빠져들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영혼의 울림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잠오지 않는 밤에 수면제로 좋다는 이상한 간증자의 삶을 살아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지식이 30%, 감정의 영향이 7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아는 데로 배운대로 살아가기보다, 감정과 기분대로 살아가는 존재에 더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기분 나빠서 못한다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기분이나 감정의 요인보다는 말씀에 대한 앎과 신앙의 고백 그리고 거룩한 결단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가고싶어서 가는 길이 아니라, 가야하니까 가는 것이 옳으니까, 그래서 결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적인 본질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인생은 잎은 무성하고 열매도 잔뜩 달려있지만 쓸모없는 것들로만 가득찬 돌배나무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열매없는 지루한 신앙생활의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이때 지나치게 문제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인생이 끝날 것 같지만, 죽고 사는 것 흥망성쇠는 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죽을 것인가? 삶을 포기할 것인가? 사업의 문제 있을 때 마다, 접고 창업만 할 것인가?’ 아니지 않습니까? 개미들에게는 파인애플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가 됩니다. 믿음의 분량이 문제 앞에 호들갑 떨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의 담대한 은혜를 누리게 되고 세상의 문제 앞에 호들갑떨지 않게 되는 원리를 빨리 발견해야 합니다.

 

회복을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세상을 향한 자신의 눈 - 고집스런 불신앙의 관점의 늪에 빠져드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예리한 영적감각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의 지식(Knowing God)과 성령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맡기는 기도의 영성은, 문제 속에서 자신을 떼어내어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를 다루게 합니다. 그것을 섭리적 해석혹은 하나님의 손과 눈으로 문제를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비로소 자신의 삶의 문제를 아름답고 향기나게 주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빚어가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아는 자에게 성령을 의지하는 자에게 이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풍랑 많은 인생의 고통의 문제 앞에서 기분따라 감정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 안에서 축복의 열매를 맛보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