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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천국은 길다

글쓴이 : 홈피관리자 날짜 : 2021-10-20 (수) 11:32 조회 : 45

어느 집사님이 무척 똑똑한 자녀의 진로를 두고 상담을 했습니다. 법대로 가서 변호사가 되느냐? 아니면 의사가 되고자 하느냐의 문제로 기억이 됩니다. 의대 이름들을 쭉 대시는 것을 보면, 의대를 가더라도 좀 더 좋은데 가서 뭔가 의학계에 큰 빛을 남기고 싶은 욕심을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마음은 많이 의대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은 데 마지막으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로서 나의 대답은 지나치도록 분명하였던 것 같습니다. “집사님 이곳으로 오라해서 이곳에서 동네의사 만드십시오.” 이 말에 집사님의 안색이 약간 돌아서는 듯 했습니다. 겉으로 말은 안해도, ‘아니 목사님, 의사가 되려면 좀 유명한 의사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야되지 않나요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분명한 말은 없었지만, 이유 있을 법한 항변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쉼 없이 투자해 왔고, 자식 사랑이라면 다른 사람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이 고생한 한국부모의 마음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혹자는, ‘아니 목사라면 비록 안 되고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소망을 주고 꿈을 주는 말을 해야지 무슨 그런 말을 아니 동네의사라니라고그렇게 반응 법한 말입니다. 조금 더 재고 생각해보면, 어쩌면 말 만들기에 따라서는 저 교회는 꿈도 비젼도 없는 목사가 시무한다고도 할 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의 생각은 별로 흔들릴 것 없는 소신입니다. 제가 아는 신앙상식중의 하나는 우리 삶의 표준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식도 아니고, 부모의 배경이 한국이니 무조건 한국식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가지, 성경이 뭐라고 하는가? 좀 더 나아가 본다면 성경의 전체적인 본질들이 신앙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결론이 동네의사였던 것입니다. 물론, 성경의 어느 페이지에 이것을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소신이라고까지 말하게 되는가? 이쯤에서 동네의사 얘기에 대해 해명을 해야 될 법 합니다.

 

필자도 우리 한국 사람이 노벨상도 타고 대학입학시험에 만점 받았다고 들을 때, 참 기분이 좋고 어깨가 꽤 올라갑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인생이란 그리 길지 않으며, 회자되는 말에 의하면 김장김치 서른번 정도 담그다 보면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환갑에 이른다고 합니다. 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마치, 홍수에 쓸려가듯이 순식간에 지나는 것이라 하며, 세월을 아끼는 것이 참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짧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은 오직 선택과 집중의 원리입니다. 삶의 가치 기준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의 최고의 가치 기준은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영광은 나 같은 죄인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그토록 원하셨던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일이며, 소망없는 인생에게 소망주는 자로서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는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잘 못 들을 수도 있으나, 노벨상은 가능한한 주님을 믿는 우리는 양보하면 좋을 듯 합니다. 누구에게? ? 그렇습니까? 노벨상은 아무에게나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공부안하면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공부 외에는 낙이 없는, 예수도 모르고, 인생의 의미도 모르는 불신자들의 세계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일반 은총 차원의 노력의 댓가로 주신, 그들의 열심의 열매를 빌리거나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미안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나름의 성취욕과 이 땅 가운데서 이 세상이 주는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뭐하자는 것입니까?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동네의사가 되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굳이 그 직업을 한정하는 것도 아니고, 이 지역의 의대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님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분명히 알 것입니다. 좀더 설명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이 가장 영광스러운 때, 가장 기뻐할 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나의 야망이 아닌 주님의 비젼을 위해 내가 주님 앞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집사님의 자녀를 향한 나의 변명의 요지는, 모든 인생의 일들에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섭리가 있는 법인데, 지금 이곳 알칸사 리틀락에는 한국인 병원도 진료하는 한국인 의사도 없다. 오죽했으면 타주에 있는 의사더러 분점사무실이라도 내라 했을까! 그런데 이곳에서 자녀가 부모밑에서 새벽기도를 배우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의술로 힘없고 가난한 한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또 하나님이 축복하신 그 힘과 여력으로 가장 중요한 저들의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선교를 위해 힘쓸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노벨상 수십개 보다 더 가치로운 일을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짧고 유한한 인생에, 노벨상을 받는 유명한 의사가 되기 위해, 예배도 못드리고 선교도 봉사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차라리 포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차라리 덜 유명하고, 덜 벌게 되더라도 동네의사가 되어 영혼과 건강을 가까이에서 돌봐주며, 언제라도 병원 문닫고 선교를 떠날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자는 말입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인생은 짧고 천국은 영원히 긴 시간입니다. 노벨상 가지고는 천국에 상급을 쌓지 못합니다. 오직 허락하신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 자신의 아들까지 주시면서 그토록 원하셨던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들을 얼마나 구원하며 인생의 복된 사명을 감당했느냐 하는 것이중요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가진 야망을 주님 앞에서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야망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고 그 끝은 자기자랑이며 자기영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맹모삼천지교가 적용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식을 제대로 잘난 사람으로 키워보겠다는 야망이 지나쳐서, 성경에 말씀하시듯 나중에는 자식을 전혀 훈계할 수 없는 어리석은 부모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면 거기에다가 자식이 신앙을 떠나버린다면, 노벨상 할애비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됩니다. 미국에 먼저 온 친구목사로부터 핀잔주는 소리도 들었지만, 나는 우리교회 학생들이 비록 미국 땅에 살지만, 자라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용돈도 드리고, 나중에는 이 이민교회 안에서도 한국처럼 3, 4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자리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인생은 짧고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기에, 영원한 것을 취하기 위해, 또 영원하신 분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육체의 자랑과 이생의 야망을 힘써 구분하는 것은 분명히 지혜로운 삶의 건축자가 되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