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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은혜, 신앙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21-08-21 (토) 06:17 조회 : 98

사람들은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대부분 거짓말입니다. 보여주어도 거의 안 믿습니다. 또 다른 강도의 자극적인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믿음은 보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 경험적인 사실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적 사실에 끈을 대고, 질질 끌려가서는 결코 믿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 대단한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습니까? 어떤 표적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암병을 고치고도 잠시 믿어주는 척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는 것을 보고 열 가지 재앙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물 위를 걸어가면 유령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아는 선에서 판단하기에 아주 익숙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엇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이시라고 판단하고 믿을만한 능력이 애초에 없습니다. 죄가 그렇게 사람들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가지는 죄성을 생각하지 못하면 믿음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죄는 무지입니다. 표적을 보면 놀라고 신기해하고 또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표적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찾기 보다, 자꾸만 더한 표적을 요구함으로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을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피조물인 태양을 알고 싶어해도, 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가까이 갈 수 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더 알려 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불 타 없어집니다. 태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지으신 많은 것들과 하나님 자체는 더욱 그러합니다. 피조물의 이성으로는 결코 창조주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스스로 창조주를 이성적으로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작은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표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는 것으로 믿은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임한 은혜를 그저 겸손함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어떻게 주님을 찾아갈 수 있습니까? 죄인 마태가 어떻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쫓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찾아온 주님을 그저 믿음으로 수용하며 자신을 주님께 붙여 쫓아가게 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만나는 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들을 가리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삶을 이해하고 믿음의 방식으로 인생을 경영하고자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삶의 모든 자리 곳곳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먼저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말씀앞에 온전히, 주의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며, 예배에 결코 실패하지 않을, 한마디로 신앙생활의 온전함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선순위가 분명할 때, 주께서 목적이 분명한 인생,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합니다. 탄생과 함께 항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목적지는 확실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모두 상대적이고, 각자 자기 마음에 품은 대로 인생을 항해하다가 그냥 죽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참된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파도를 딛고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고 맞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반해, 구원받은 모든 신자들의 한결같은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그 목적지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배에 불어 닥치는 삶의 파고를 견딜 수 없고, 참고 견디어 자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이른다 할지라도, 그 인생의 항해는 허무하고 공허한 것이 죌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씻지 못한 인생의 마지막은, 아무리 화려한 세상의 족적을 남겼다 할 지라도 그저 향불의 연기속에 사진 한 장 남길 뿐인 인생에 불과한, 아주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될 따름입니다.

 

설교를 위해 방문했던 어느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청년 한명을 축복하기 위해 불러냅니다. 시카고로 유학을 떠나는 청년인데, 목사님이 질문합니다. 가서 어떻게 해야 되지? ,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가서 뭘 해야 되지? , 성실하게 공부하겠습니다. 세 번째 묻습니다. 뭘 해야되지? , 신앙생활 잘 해야 됩니다. 전도생활 해야 됩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청년을 무릎꿇게 한 후에 축복기도를 하십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이 유학을 가는 데,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은 하지 않는 것이 되레 이상한 것입니다. 학생의 기본은 공부이고, 기본이 된 학생은 열심히 성실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본이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기본을 다시 말할 필요가 없고, 인생이 공부 외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은혜를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데서 모든 것을 시작하라는 축복의 메시지였습니다.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지 않은 채, 공부만 잘하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면 아주 크게 자신의 잘남을 자랑할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인생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겠지만, 결국 그 끝은 무엇입니까? 성공한 것이 많고 클수록 허무와 공허에 떨어질 따름입니다. 아니면, 스스로 자신이 가진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죽음앞에 초연한 듯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답도 세상에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죄인으로 은혜를 덧입은 인생임을 알기에, 그는 자신의 살아온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목적지가 분명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삶도 죽음도 모두가 주의 영광이 되기만을 바라기에, 항상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놓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 짜 내어 복잡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마음을 간결하게 주님으로만 충만하게, 근심과 염려는 물리치고 얽히고 설킨 문제들은 기도로, 그래서 마침내, 복잡한 인생 마디마디에 때마다 일마다 도우시는 주의 은혜로 감사와 찬송의 열매만이 가득한 복된 인생을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