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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의 세상을 잘 살려면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21-08-21 (토) 06:06 조회 : 85

()의 세상을 잘 살려면

 

아무리 큰 말()이라 하더라도 재갈 하나로 좌우할 수 있듯이, 인생의 흥망성쇠도 작은 세치 혀에 의해서 좌우됨을 성경은 교훈합니다. 성경의 시대나 지금이나 믿음의 성숙함을 소유한 이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입술이 절제되고 근신된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늘 기도하며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 달라(141:3)고 소원하며, 세치 혀를 악한 것과 입술의 궤사한 말들에서 금할 것(34:13), 혀로 범죄치 않기 위해 악인이 자신의 앞에 있을 때에는 차라리 자기 입에 재갈을 먹일 정도로(39:1) 근신하며 주의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온전한 신앙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입술의 범죄에 대해 진지하고 치밀하게 그 성찰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혀의 권세, 말의 권세를 인정할 때 그것이 자신에게 큰 복이 됨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치 혀로 행하는 말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스스로 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쉽고 가까운 생활의 언어들로부터 말과 혀의 권세를 인정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잠언 132절에 사람은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린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 한마디에 복이 나간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어른들은 말이 많고 헤픈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할 것을 늘 당부합니다. 한마디로, 말에 부주의한 사람은 혀의 권세를 알지 못하기에 복된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몸된 교회에 대한 말들은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3계명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라는 본래의 이름자체를 부르지 않았고, 다른 별칭으로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고 3계명이 무조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고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것 때문입니다. 경망스럽고 허탄함과 무익함으로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절대 농담거리 혹은 장난거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사용할 특권이 있지만,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고 정당하지 않는 것에 사용할 때는 하나님 앞에 중대한 범죄행위로 취급하여 반드시 죄를 묻겠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는 언어를 사용함이 중대한 범죄가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경망스럽게 사용하여 입술로 범죄하는 것은 은혜를 배반하는 일이며 결코 용납이 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이에 대해 를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를 말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우리는 그 이름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술이 취해서 신앙적인 논쟁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횡설수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술판의 안주거리가 되어질 때 결코, 옳은 것이 되지못함을 말합니다. 특별히, 세상모임에 가서 별로 은혜가 되지 않는 자리이면 교회얘기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마디로 성도는 생활의 아주 사소한 것, 작은 일부터 영적긴장감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인터넷에 기독교와 관련 깊은 매체가운데 이 시대의 교회와 목회자를 비판하거나 교회 사건사고를 다루고 사용함에 있어서, 세상이 쓰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기독이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인데, 세상에서 이를 비하하는 말로 개독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목사에 대해서는 먹사등 신자의 입에서 세상이 신자와 교회를 비판하는 말을 같이 사용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꽤 많은 성도들, 특별히 정의감(?)이 가득한 이들이 쉽게 주저없이 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그 특별한 정의감을 칭찬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그 표현이 거칠어 질 때 본질적인 내용의 의도가 훼손됨을 봅니다. 언어는 생각속에 잠재된 삶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데, 거친 신앙의 언어는 그 말의 본질을 훼손할 뿐 아니라 그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앞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말로 인해 입술의 복록을 누리게 된다면, 언론매체들의 무차별적인 교회와 하나님을 향한 거친 언어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열매를 찾으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언어로 인한 목회적인 실수와 실패를 많이 보게 됩니다. 각종 회의를 하거나 시험든 성도의 거친 언행을 상대하다 보니 마귀가 틈을 노리고 찾아든 것을 이겨내지 못한 것입니다. 절제되지 못한 감정선이 언어를 통해 폭발하도록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인 제직회의나 당회를 할 때에 자기 생각에 반하면 이성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를 또 악용하여 녹취한 것을 흘리는 식으로 상황을 어렵게 합니다. 결국, 그 모든 말의 결과는 고스란히 목회자가 책임져야 하고, 책임을 지더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종의 말의 그 천박함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그 열매를 찾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에 실수가 없을 수 없는 유약함이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주의함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늘 영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시험 들게 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언어생활 가운데 믿는 자의 향기가 드러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품격을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기에, 말씀을 듣고 다시 자신의 입술의 말에 복음을 담아 전하게 되는 것이 성도의 삶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말 많은 세상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입술에 성령의 재갈을 물림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아니하고, 어려운 세상을 오히려 믿는 자에게 허락하신 입술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