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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시작할 일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20-11-13 (금) 04:42 조회 : 144

다시 새롭게 시작할 일

 

과거에는 말도 되지 않던 일들이, 급변하는 코로나 시기에 가만히 틈을 타고 들어와 논쟁의 중심부로 접근해 오는 것을 봅니다. 여자아이가 남자처럼 머리를 자르거나, 옷을 입으면 야단이 났었는데 이제는 치마입은 남자가 등장을 해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성() 을 따르지 않고, 부모 모두의 성을 취하여 소개하는 여성학자들의 발언들이 주목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지나갑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동성()간에 사랑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제는 이미 보통의 상식선을 넘어 법제화되기까지 했습니다.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온라인 성찬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성찬식을 하고 싶은 데, 어쩔 수 없어서 각 가정에서 빵과 포도주를 스스로 준비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가운데 함께 먹고 마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성실하고 진지한 목사님이어서 더 놀랐습니다. 조금 부드러운 말로 권고했지만, 보수적인 교단의 목회자에게 까지 이런 이야기가 진행 될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성도가, 한 음료와 떡을 떼며 하나됨을 맛보아 경험하는 것이 언약의 성찬일진데, 성찬을 어떻게 성도 각자가 집에서 장만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생각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일들이 진척되어 간다면, 나중에는 온라인 세례식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상으로 화상으로 얼굴 보고 모이는 그것도 교회라고 말하는 교계의 지도자가 있음을 보며, 주님의 장 탄식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증거하는 바는, 코로나를 깃점으로 더욱 극성스러운 종말현상들이 물밀 듯 찾아올 것이라는 예견들입니다.

 

예전에 뉴욕 맨하탄에는 성탄 이브날에 개들을 위한 개 세례식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목회자에게 개 장례식 주례를 부탁 한다는 가쉽성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정말 개목사(?)의 등장을 볼 수 있는 때가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헤밍웨이처럼 고양이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참된 성경의 원리안에서 들여다본다면 모두가 종말시대 어리석은 현상의 하나에 불과한 것 뿐입니다. 개목사 뿐 아니라, 이미 유럽에는 AI 목사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심리와 상황에 대한 설문조사해서 이를 취합하여 가장 적절한 본문을 가지고 설교말씀을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유튜브 설교를 통해 생명의 양식을 연장하는 중환자실의 연명환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가 호흡하듯 그 은혜를 곱십는 맛의 위대함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러한 복잡다변한 세상 가운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것이 있습니다. 한주간의 삶을 마무리하는 안식과 더불어 새로운 한주간을 출발하는 온전한 주일예배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인생의 모습은 심히 비참합니다. 사울왕을 보십시오. 그러나 실은 하나님의 버리심이 아니라, 인생이 하나님앞에 회개치 않는 완고함으로, 저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완고하여 회개치 않음으로 회복의 기회를 스스로 내다버린 것입니다. 왜 회개치 않았습니까? 예배가 실패하며 교만이 찾아오고, 교만함이 회개의 말씀을 장해하였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리는 데, 결국은 회개치 않음으로, 회개할 말씀이 들려지지 않음으로, 마침내 멸망을 향해 나아가 버림받게 된 것입니다.

 

주일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는 축복은, 말씀앞에 벌거벗은 듯 회개하는 예배자 그가 제일 먼저 누립니다. 영혼이 살아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되살아나고,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하여 마치 쓰레기통같았던 마음에 빛이 찾아오고, 먼지 가득했던 방의 창문을 열어 환기가 된 것처럼 호흡이 시원해지며, 변화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입에서 불평 원망이 가득하였는데, 새로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병사들의 힘찬 함성처럼, 영혼을 울리는 영광송이 그 입에서 터져나옵니다. 그렇게 은혜받은 영혼이 그 가정의 자녀와 아내와 남편을 살리는 축복의 메신저가 됩니다. 어두웠던 가정의 흑암을 환하게 걷어내는 등불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더불어 그가 속한 삶의 환경들을 역전시키는 은혜로 인해 그의 삶 주변은 날마다 잔치하는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왜 하필 주일의 예배가 중요합니까? 특별한 성령의 교통 때문입니다. 성수주일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시내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블루 프린트를 모세에게 그려주셨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가지고 내려와 하나님을 만나는 교제의 회막, 성막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날 교회이며 예배입니다. 이곳에서 주의 음성을 들을 때, 회개할 것이 생각납니다. 회개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회복과 축복이 드러납니다. 마침내 그곳에서 폭발적인 인생의 변화를 맛보게 됩니다. 오늘날 주의 정하신 날, 정한 장소에서 참된 예배자로 주의 음성을 들으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코로나 시기가 익숙해지면서, 성도들이 교회가 그립고 예배가 그리워 찾아 나옵니다. 참된 성령의 교통, 임재를 경험한 아름답고 존귀한 영혼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은 너무 감격해서 교회를 오면서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짙어진 가을의 변화속에 주의 전이 그렇게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보니 저런 노래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세상노래여서 탓할게 아니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참 복있는 성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와 예배를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힘써 모든 예배방해의 요소를 제압해 버리고, 마음껏 주의 성전에서 주님을 노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