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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졌습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20-11-13 (금) 04:39 조회 : 132

눈이 밝아졌습니다.

 

다윗 왕이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석달동안이나 자신의 정성을 알아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에 머물던 다윗의 마음이 다시 간절해집니다. 통일왕국의 기반을 이루어가는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라진 마음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며, 축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시고, 그 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간절해 진 것입니다.

 

다윗처럼, 신앙생활은 이렇게 간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았고 복을 받았다고 하여도, 아무런 감동이나 마음의 울림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시고, 당신의 자녀를 좋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치유할 풍성한 선물이 가득한 분이심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복 주심을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시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그 마음의 기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합니다. 이전처럼 3만명의 인원과 초대형 오케스트라와 같은 음악대와 법궤를 옮기는 최고급 리무진 같은 새 수레 대신에, 말씀대로, 시키는 대로,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제사장의 어깨에 언약궤를 메고 걸음을 옮깁니다. 여섯 걸음을 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또 여섯 발자국을 옮긴 뒤 제사를 드립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도, 온갖 정성을 들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말씀대로, 법대로, 지킬 것을 지키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춤을 추다가 그만 에봇 원피스가 흘러내립니다. 그의 하체가 드러납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감사와 기쁨이 넘쳐 납니다. 석달 동안의 무거웠던 마음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예배는 그런 것입니다. 마음과 기분이 예배 드릴만 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운데 나아가면,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감과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맛보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춤추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미갈은 마음으로 업신여기고 조롱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남아있는 생각을 밖으로 쏟아냅니다. ‘이스라엘 왕이 어떻게 방탕한 자와 같이 염치없이 행할 수 있느냐?’ 이에 다윗이 말합니다. 나는 오직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나의 충성에 누가 딴소리하면 생각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했으면, 누가 뭐래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한 것이 아니니, 생색 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앞에서 행한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면 족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다윗은 참으로 귀한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미갈의 언행에 대해 다윗은 지나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시비하십니다. 하나님앞에 열심히 예배하는 자를 천하게 시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판단하심을 보게 됩니다. 예배를 폄훼한 미갈은 저주를 받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됩니다. 예배시간에 예배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고, 관조하듯 생각하며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배 드려야 될 그 시간에 예배드리지 않고, 예배를 훼방하는 자를 하나님은 죄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예배를 판단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배 시간이 너무 길어 지겹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설교자를 향해 평가를 내립니다.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나의 모습이 곧 주님을 대하는 모습이라는 것과 성경은 예배를 해치고 욕하는 분들, 참된 예배자를 업신여기는 이들, 결코 하나님앞에서 복스러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갈과 같은 죄의 유전자를 가진 탓입니다.

 

미갈의 근본 잘못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에게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주목하며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어찌 이렇게 체통을 지키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미갈의 눈에는 하늘 하나님의 왕권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땅에 속한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만 보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사울처럼 땅의 권세, 땅의 영광, 땅의 왕관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쓰고 있는 땅의 왕관이 아닌, 하늘 하나님의 존귀한 왕권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참된 믿음입니다. 이 믿음안에서 그는 땅의 왕관에 매이지 아니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참된 예배자의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인터넷 문화를 배웁니다. 더불어 세상문화의 신기한 것들도 연결 연결하여 학습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밝아진 저들의 눈으로 인해 예배에 실패하고, 설교자를 비교하며 판단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눈이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 냄새나는 뉴스거리에도 더 열광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예배자를 폄훼하거나 교회와 설교자를 판단합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 중고등부에 식기도를 아주 진지하게 길게 하시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음식이 식는다고 아이들은 난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한번도 이 일에 대해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혹여라도 하나님앞에 드리는 기도를 자신이 판단하거나 훼방할까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님이 조금 지나치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교회의 분위기를 보면서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부터 하나님앞에 드리는 예배와 작은 기도에 이르기까지 바짝 긴장하고 주의함으로 인해, 그것이 자연스레 그 교회의 영적분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목회자의 설교가 길거나 짧거나 비교하거나, 예배시간이 한 시간에 마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감히 판단하는 일까지도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삶의 최고 목표는 참되고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좋고 높음도 한순간에 지나는 먼지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유혹에 관계없이, 다윗처럼 한결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영광과 존귀가 머무는 복있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