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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내 것 아닙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20-08-21 (금) 12:11 조회 : 30


 내 것, 내 것 아닙니다.

 

다윗의 삶을 묵상할 때, 첫 출발점에서 만나는 인물이 사울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인물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앞에 범죄하고 부족함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아주 극명합니다. 끝이 달랐습니다. 버림받음의 저주와 붙드심의 은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아들 셋과 같은 날 죽음을 당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간음죄와 자식들의 근친상간과 반란등으로 어찌보면 사울보다 더 복잡한 삶을 살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마음에 합한 자로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충성했다가 나중에는 배신과 배반으로 점철되는 인생은 불행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충성은 한결같은 것이고, 한결같은 충성꾼의 삶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풍성하고 복되어집니다.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인생연한이 더해갈수록 좋은 복을 누리셔야 합니다. 그러나 참 좋은 인생의 끝 마무리는, 갑작스런 한순간의 기적같은 일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시작이 좋아야 하고, 방향이 일정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무엘에 의해 기름이 부어질 때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됩니다. 그런데 이어 증거되는 말씀에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이 감동될 때, 사울 왕에게서는 오히려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점유하며 번뇌케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사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까지 하면서, 아주 준수한 인물로 이스라엘 초대왕에 피택된 인물이었습니다. 시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윗에게로 왕권이 넘어가면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버리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시작이 좋았지만, 방향이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울이 왕이 될때 성령이 임한 것은 왕으로서의 사명과 직무수행을 위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말씀을 버리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사사로이 남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에게로 그 능력을 전가시키고 사울에게서는 그 능력을 거두어 버립니다. 성령이 떠나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상실되었고, 사울은 스스로 수고하며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핍절한 인생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 다윗에게 임한 성령은, 계속해서 더 힘있게 일하십니다. 거친 광야를 지나면서도 한결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고 노래하는 복된 인생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가십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믿음생활입니다. 믿고 사는 것입니다. 자신과 세상을 믿고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한분 하나님을 믿고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뜻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씀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히 보여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보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에 붙잡힌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처럼 중간에 버림받고 끝이 좋지 못한 이유는 교만의 열매입니다. 사울의 교만은 열두지파중에 가장 연약한 베냐민 지파의 힘없는 기스집안 출신을 왕으로 삼으로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데서 시작됩니다. 머리에 씌워진 왕관이 너무 좋아서 그 왕관을 씌워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왕의 자리를 지키고자 정적으로 보이는 다윗을 죽이는 데 인생을 허비하게 됩니다. 말씀과 은혜를 잊어버린 교만한 인생은 허망한 것에 집중하며, 열매없는 인생으로 삶이 점철됩니다.


교만을 꺽지 않고는 하나님안에서 성공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돈 많은 사람이 교만하지 않은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가난하다고 모두 겸손한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난하면 자존심이라는 고집이 또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굴은 잠언 30장에서 부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부하여서 하나님을 모른다할까, 가난하여 도적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는 말을 고백합니다.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듯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지식, 건강, 재능, 물질 등에 대해 그 어느 것도 자기 것이 아님을 날마다 고백하며 스스로 잘라내야 합니다.

 

이처럼 말씀의 분별력을 상실하면 분별력을 상실하고 교만하여, 마침내 하나님앞에 충성꾼으로 서지를 못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세상에 둠으로써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칭찬과 평판과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됩니다. 어쩌면, 사람을 실망시킬 각오를 하면서 무모할 정도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갈 용기가 있을 때만이 진정한 충성이 가능합니다.

 

사울의 인생에는 세가지 부분, ‘말씀, 겸손, 충성이 모두 함량미달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이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있으리라 여기며 착각하고 교만했습니다. 그 결과 여전히 왕관을 쓰고 왕노릇도 하고 있었지만, 실제는 하나님 없이 악한 영의 지배에 붙들려 번뇌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불순종은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내가 주의 일 하지 못하면 주님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을 바라보는 목사는 답답하고 간도 나빠지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말짱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은 인간자신에게서 축복과 불행일 나눌 따름이지, 결코, 하나님쪽에서는 손해보실 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쪽에서는 항상 더 좋은 재목이 준비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저 쓰임받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울을 보면서, 안타까운 주변의 사울을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저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왜 가난하고, 병들고, 힘들 때만, 신앙이 좋아지고 기도가 깊어지는가? 큰 의문입니다. 좋을 때, 더욱 겸손함으로 헌신과 충성을 다하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삼성장군임에도 예배당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던 표순배 장군을 기억합니다. 군목이 중령 계급에 불과하여도 계급에 상관없는 주의 종으로 대우하며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의 계급처럼, 직분, 세상지식, 부의 유무등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큰 부자임에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 자랑거리 간증이 없는 사람이 없음을 봅니다. 그런데 부자성도가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주님 주신 물질로 남몰래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봅니다. 재산 물려주는 것으로 골치아플 일도 없이, 마음에 하늘의 평강과 은혜가 가득할 것입니다.

 

짧고 유한한 인생입니다. 말씀과 성령에 붙들려,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와 동행하며 충성되이 이 땅의 삶을 지나가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내것이 내것 아님을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 될 때, 우리는 교만하여 죽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