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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없는 교회가 어디 있으랴!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11-22 (금) 05:49 조회 : 11

교회를 생각하는 관점이 그의 신앙과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도합니다. 교회 가서 기도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분들을 만나면 은혜가 됩니다. 혼자 성경 읽는 것 보다, 교회 가서 말씀 듣는 것이 더 마음에 힘이 된다는 분들을 보면 기대와 소망이 넘칩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삶이 그렇습니다. 영적이라는 것이 땅에서는 육신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신앙생활도, 이 땅에서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마다, 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들에는 온전히 몸을 드린 아름다운 성도들의 간증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이민 생활의 갈등 때문에 아내되는 분이 가출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되신 분은 모든 일들을 다 제쳐놓고 그 아내를 찾기위해 온 미주의 도시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중부의 어느 도시를 찾아갔는데, 주일이 되어 예배처소를 찾다가 초막같은 허름한 작은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배하며 주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분노와 원통함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마음을 다 내려놓을 만한 큰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찾으려고 들고 온 돈과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돈이 씨앗이 되어 새롭게 교회를 짓고 완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훗날 본인이 그 교회의 장로가 되어 다시 한번 더 교회를 완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삶의 원통함과 분노와 상처들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예배할 때,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회복을 원하십니까? 주의 몸된 교회를 전심으로 사랑하며 삶을 경영해 보십시오. 주님의 마음과 뜻이 머무는 교회안에서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예전 한국에도 그러한 간증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순복음 교회를 짓기 전, 서대문에서 천막교회로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 여섯 번 천막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병든자, 가난한 자, 사업에 실패한 실업자들 그들을 향해 폐병으로 설교중에 피를 토하면서 되지도 않은 그런 일 다 내려놓고 예배부터 드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설교말씀에 사람들이 무리와 같이 몰려들었는데, 실제로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없는 중에 은혜받아 헌금하며, 마치 성막을 건축하려고 예물을 드릴 때에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 그만 가져오라고 말한 것처럼, 그렇게 자원하여 드렸다합니다.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뭐가 남아서 드렸겠습니까? 구약성경의 성막을 짓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은금 패물을 가지고 왔지만, 광야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이 부족해서 넉넉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너무 자원하여 드림으로 남아 여유로을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부어졌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인간이 만든 그 천막속에 거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성막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상상하기 어려운 은혜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강남의 어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짓기위해 성회를 하는데, 은혜를 받고 기도의 손을 모으는데 손에 반지가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들고 온 것 뭐 하러 다시 들고가나?’ 그 음성에 순종해서 풀어서 주님께 내어 드렸다고 합니다. 집에 금수저 은수저가 있는데, ‘그냥두면 녹 쓰는데 교회 기둥하나 세우지?’ 그런 음성도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금수저 은수저가 녹슬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워낙 은혜가 넘치다 보니, 땅에 쌓아둔 재물에는 좀과 동록이 해한다는 말을 성령께서 붙들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 근처에 땅을 가진 분이 있었는데, 자꾸만 차들이 들어와서 밟고 지나가길래 화가 조금 난 모양입니다. 그때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자네 땅을 차가 자꾸 밟고 지나가는데, 거기 교회 지으면 못 밟을텐데.’ 그런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음성에 순종해서 주님앞에 헌신한 그 흔적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지어지고 은혜의 대를 이어가며 주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큰 방주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가급적 교회를 간소화시키고, 주일 성수의 탈 자유화를 통해서까지도 교회를 선전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건축과 관련된 위의 간증들은 거의 시대를 못 읽는 꼴통(?)목사의 생각으로 치부됩니다. 적당히 교회와 목사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한마디를 하면 꽤 괜찮은 교회와 목사로 생각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지금 이시대에 무슨 교회짓는 이야기를 하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자신의 일보다는 교회를 더 우선하며 사랑했던 그런 믿음의 선배들에 의해 지금 이 세대가 이만큼 자라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가 못났다 하여도, 그 부모없이 세상이 생명의 빛을 볼 수도 없었고, 스스로 기저귀 갈아가며 자라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 가운데서 신앙의 기초를 배웠기에 지금 옳고 그름에 대해 목소리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기가 너무 탁월하고 훌륭하기에 못 배운 부모나, 자신의 생각에 못 미치는 교회를 원망하고 무시한다면, 이것은 거의 오랑캐(?)신앙만큼 비천한 것이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쉬운 정보습득 능력으로 신앙의 지식은 많아졌지만, 손과 발을 움직여 순종하지는 못하는 가분수 신앙들이 많습니다. 세련된 것을 찾고 구하지만, 그럴수록 신앙은 천박해짐을 기억해야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강대상위에 런닝머신을 설치하고는 최고 좋아하는 풋볼 선수의 번호표를 붙이고 설교합니다. 사람들이 열광합니다. 타락입니다. 사람들에게 무대의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죄로 시작되는 영혼의 깊은 절망을 회개의 눈물로 쏟아낼 능력은 부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감동을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지만 하나님앞에서는 구별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영성은 교회와 예배의 온전함에서 시작되며 깊어지고 넓어지고 끝이 납니다. 눈에 보이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가운데, 온전한 회복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배 가운데 들려지는 주의 음성에 손과 발과 온 몸을 드려 헌신하며 순복할 때, 하나님의 귀한 역사는 불타오르듯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교회는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두손들어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