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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한결같이 의식하는 것입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04-06 (토) 04:34 조회 : 154

신앙은 한결같이 의식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빠름을 직감합니다. 세월의 흐름앞에 후회없는 인생의 길은 무엇일까? 성경은 깨어 경성하라고 합니다. 의식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살아가는 날들을 계수할 지혜를 구하며 살아라는 말입니다. 시간과 함께 따라오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천하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삶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군대가는 청년들을 향해 어른들이 말합니다. ‘다 사람사는 곳이야, 다 하게 돼 있어.’ 곧 익숙해질 것이고 편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아기가 생후 100일 잔치를 하듯이, 신병전입 100일에 휴가를 보내며 축하합니다. 이제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생존하게 되었음을 격려하는 의미입니다. 거기서 몇개월 더 지나면 이젠 완전히 늘어질 수 있는 계급장을 붙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가 실은 위기의 변곡점이 됩니다. 군생활을 적당히 풀어가며 허송세월 할 수도 있고, 반면 몸의 익숙함을 거슬러 유익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그런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혹여 전자를 선택할 경우, 몸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남은 군생활은 오직 국방부 시계만 쳐다보는 후회투성이 인생이 될 따름입니다.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에 합당한 삶, 맡겨주신 직분에 충성하고자 하는 첫 사랑의 마음이 식어질 때, 무위도식하듯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갑니다. 직분을 처음 받았을 때는, 가문의 영광이기에 죽도록 충성하리라 맹세하지만, 어느 덧 다 잊어버리고 눈에 불을 켠 듯 세상일에만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익숙해진 것을 신앙이 좋아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저 자신의 경험칙에 근거한 신앙경구로 위로를 삼으며, 영적게으름의 끝을 달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 없는 모습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결코 의식없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직분자이면서도 예배에 빠지고, 예배시간에 졸고, 예배에 늦고, 찬양대원임에도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교사이면서도 공과공부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기본상식으로 가르치는 그런 신앙이라면 의식없이 사는 것입니다. 장차 크게 회개할 제목들만 쌓는 것입니다. 의식이 없으면 눈에 빛이 없습니다. 몸은 늘 바쁘고 분주한 데, 하님을 향한 의식이 없으니 마치 어물전 생선처럼 눈빛이 맑고 깨끗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앞에 받을 상에 대한 기대나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깨어 의식하지 못하면,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을 좋은 것으로 의식하지 못하면 결국은 형식으로 굳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는 점차 의식이 없어집니다. 브레인의 활동이 점차 정지되어 가면서 비어갑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죽은 상태를 가리켜 의식이 없다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의식하지 않으면 머릿속은 점차 공허한 생각으로 점차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머리가 비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 머릿속을 마귀가 찾아갈 것입니다. 내 아내가 좋은지 모르는 남자는 머리가 비어가는 것입니다. 내 교회가 좋은 교회인줄 의식하지 못하면, 그 빈 머릿속에 마귀가 찾아와 꽈리를 틀고 정주할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생활에 한결같이 그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의식이 없는 것은 생각 없는 동물처럼 허망해 집니다. 엄마와 아기 사슴이 지나가는 데, 사자가 아기사슴을 잡아먹습니다. 엄마사슴은 도망갑니다. 이것이 죄인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연의 세계에서의 약육강식은 질서이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살인죄나 사기죄나 도둑죄가 없습니다.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자식이 죽는데도 살겠다고 도망치는 사슴은 허망한 것입니다. 코끼리 수명은 70이고 평균은 40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코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니, 하루에 소용되는 엄청난 음식을 먹지를 못합니다. 점점 도태되어갑니다. 그런 코끼리를 두고 코끼리 무리들은 그냥 제 갈 길로 가버립니다. 사자 다섯 마리가 이를 보고 기다립니다. 죽을 때만 기다립니다. 쉬고 싶어서 동굴앞에 누웠는데, 일어서려고 하는 데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사자가 가슴을 뜯고 목을 뜯어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내어 둡니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질서이지만, 허망해 보입니다.

 

인생이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함에도, 익숙하고 편한 것만 쫓으며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할 때 짐승처럼 살다가 허망하게 매듭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성도는 늘 깨어 경성함으로 의식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의식하지 못하면 그대로 전통이 되고 고착화가 되고 죽음같이 허망해집니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데 좋은 줄 모르고 사는 아이들, 좋은 데 좋은 줄 모르고 사는 부부들, 좋은 데 좋은 줄 모르고 신앙생활을 그저 습관에 맡기며 사는 그리스도인들, 결국 원망과 불평만 남게 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한결같이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식하며 깨어있어야 변화를 이루고 열매를 맺으며, 마침내 하나님앞에서 복있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