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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사랑함이 은혜의 시작과 끝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04-06 (토) 04:33 조회 : 177

교회를 사랑함이 은혜의 시작과 끝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부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드린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주일 하루만 주님앞에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숨쉬며 살아가는 모든 시간들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십일조처럼 삶의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자기 의지대로 살겠노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전 존재를 주님앞에 드릴 것을 말씀합니다.

 

인생은 늘 자기 꾀에 실족합니다. 하나님은 재물과 당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는데, 굳이 할 수 있다고 고집하고 항변하며 살다가 마침내 고통중에 크게 후회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과 재물뿐이겠습니까? 사업 취미 오락 사람만나는 것 등 모두가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질서가 곧 인생의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삶의 최우선이 하나님이시고, 그 믿음의 고백위에 은혜와 축복을 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삶의 전부를 주님앞에 드릴 때 책임져주시리라 약속합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분명할 때, 그 주인은 종된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주인이 종을 불러서 왔는데, 종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한 일도 없는 것 같아서 그만 가봐야 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주인은 더 이상 그 종을 책임질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일이 되던 안 되던 상관없이 주인이 불렀으면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그러면 주인은 그 종을 무한 신뢰하며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목회자 가운데, 주인이 불러서 왔고 일을 맡겼음에도 자기생각대로 마구잡이 처신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교회와 노회에 어려움을 끼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목회자여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결국 자기를 기준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데, 주님이 책임질 이유가 없는 안타까운 결과만을 가져옵니다. 하나님께 삶의 전부를 내어 드리고 섬길 때,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보장해 주실텐데 그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신묘막측한 방법이 하나님쪽에서는 은혜이고, 우리쪽에서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이 만나는 구체적인 현장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 신앙의 시작과 끝을 보기 원하십니다. 세례식에서부터 구원의 서정을 지나 성도의 마지막 천국환송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지나며 주와 동행하는 흔적들도 교회를 통해 나타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교회를 향한 헌신과 충성을 통해 그의 신앙의 상급도 확정됩니다.

이민사회의 복잡다변한 모습들이 있어도, 복있는 성도의 삶은 이 교회가 평생 내가 섬길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남을 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간에도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만 언제라도 헤어질 수도 있는 관계, 깊이 사랑하지 않고도 그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는 관계, 그런 관계들은 각자의 인생에 불행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항상 처음 만난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어려움이 있어도 이 사람은 내 운명이다, 평생 생명 바쳐 사랑할 사람이다.’ 그 믿음의 약속을 지켜가는 삶속에 은혜와 복이 있음을 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내가 사랑하고 섬기는 내 교회는 바로 이 교회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섬기며 충성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작은 허물과 연약함에 결코 교회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 만나면 끝이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 만나면 끝이 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운명을 만났는데 인생이 왜 변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와 목회, 성도를 운명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나 성도에게는 공통적으로 간절함이 있음을 봅니다. 그 간절함은 사모함입니다. 모든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하시고 주린 영혼에게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내면에 흐르고 있음을 봅니다. 이렇게 간절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교회를 운명처럼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폭발적인 은혜와 삶의 위대한 변화를 허락하심을 목도합니다.

 

교회를 향한 순전한 믿음위에 은혜와 복을 허락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아름답고 정한 그릇위에 은혜와 복을 담아 주십니다. 광야인생길에 힘들고 지친 인생을 온전하게 세우는 사막의 샘물이 공급됩니다. 하늘로부터 허락하시는 만나를 먹게 됩니다. 반석에서 터져나오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이 교회는 내 운명이다! 이처럼 영화로운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섬기시는 교회가 바로 그 하나의 운명적인 교회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죽도록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은혜의 시종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