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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긍정하면, 능력이 됩니다.

글쓴이 : 담임목사 날짜 : 2019-03-08 (금) 22:48 조회 : 85

시험을 긍정하면, 능력이 됩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통과 함께 찾아옵니다. 기쁨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누구라도 가능하면 시험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참 성경은 우리에게 시험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진리입니다. 진리는 긍정함으로 힘을 나타냅니다. 시험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어 있다면 시험은 절대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덤 근처 꽃집을 가보면, 조화가 대부분입니다. 일년에 몇 번 오는 것이 힘들어서 한 번 꽃으면 자주 오지 않아도, 싱싱하게 보이는 조화가 좋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조화에는 벌과 나비가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살아 있어 보이지만, 실제 생명의 기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더러워지면 쓰레기가 됩니다. 마음을 다해 죽은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랑의 모양만 흉내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좋아보여도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인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생명의 주님과 접붙여져 살고 있기에, 시험올수록 산 신앙인은 삶을 첨삭하여 주님께 더욱 강력하게 붙어가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교회는 시험이 없습니다. 살아있기에 시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는 믿음을 사용해서, 시험이 찾아올 때 교회가 축복의 공동체로 개편되는 시간이라고 믿고 더욱 주님께 붙어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신 말씀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쁘게 받아서 하나님이 나와 교회를 쓰시려고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답고 손색없이 늙어가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당할 때 우리로 하여금 예전과는 다른 비상한 마음, 간절한 마음,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시던 장로님이 어느날부터 새벽전에 주님앞에 나아와 외쳐 부르짖기를 시작합니다. 통성기도 외에는 그에게 닥친 영육안의 흑암의 권세가 무너질 길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열두해 혈루병으로 앓았던 여인처럼,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는 심정으로 주의 전에 부르짖으며 구합니다. 몰래 옷자락만 잡아도, 모든 것을 복되게 하실 주님에 대한 확신이 은혜가운데 공급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좋은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주셔도 좋으신 분이요, 나를 괴롭혀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히 나에게 좋게 하시려고 이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임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저러다가 목회 끝장나겠구나.’라고 할만한 그런 상황도 만납니다. 그런데 그런 시험중에도 부르짖고 있는 이상, 하나님은 이미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모든 것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의 어려움에도 어떤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아주 잘했습니다. 너무 잘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도망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도저히 아무런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아서 나가 버린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귀찮은 마음, 억울한 마음에 맥을 놓아 버린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루머로 욕을 하고 시비를 걸어도 결국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 때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나를 욕한 그 사람을 욕하기 전에 의심 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순간 내가 방심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놀랍게 성숙되고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말한 사람을 끝까지 미워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길이 없게 됩니다.

 

목회하면서 가슴에 한이 맺힌 분들을 봅니다. 설교하면서 분으로 설교를 합니다. 그 좋은 메시지를 분을 품고 합니다. 결국 교회와 성도를, 주의 주신 동산화원을 망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음에도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가 없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분을 갖게 됩니까? 말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온전히 의지하고 믿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도 죽고 주변에도 큰 어려움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할 때, 늘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특별히 시험이 찾아올 때 더욱 그리 해야 합니다. 분내지 아니하고, 원망치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긍정함으로 시험이후에 더욱 큰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 참 성도요 참 목회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